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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플에 잠시 매달려 있는 사이에 예상치 못한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스텝 1 시험의 성적표를 받았는데 놀랍게도 99점을 맞은 것이다. 나는 아직도 99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확실히 개념이 와 닿지 않는다. 다만 그 의미가 미국 의사시험 응시자 중에서 상위 1%이라거나 시험 문항의 99%를 맞추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만이 분명할 뿐이다. 미국의사시험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점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What does the 2-digit score mean?

The 2-digit score is not a percentile. The 2-digit score is derived from the 3-digit score. It is used in score reporting to meet requirements of some medical licensing authorities that the passing score be reported as 75. The 2-digit score is derived in such a way that a score of 75 always corresponds to the minimum passing score.

하여간 두 자리로 표현되는 점수 중에서는 가장 높은 점수에 해당하다 보니 나의 지난 8개월의 노력에 충분히 보상을 받고도 남음직한 결과였다. 시험이 상대평가임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이상하게도 고득점자가 매우 많아진 상황이라 이런 점수가 대단한 것은 아니었으나 당시로서는 꽤 눈길을 끌만한 점수여서 많은 사람들이 나의 고득점의 비결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내가 무척 머리가 좋을 것이라고 짐작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점수는 전적으로 8개월 동안 열심히 수십 권의 책을 독파한 시간투자의 결과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나도 내가 머리가 더 좋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살았지만 생각해보면 누구인들 이런 정도로 시간 투자를 하면 이게 성취하지 못할 목표일까.

이 시험점수는 미국병원에 레지던트 지원을 하는 의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미국의대 졸업생에 비해서 외국의대 졸업자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고, 우리는 미국 시민권이 없으니 비자를 스폰서 받아야 한다는 핸디캡을 거의 다 가지고 있는데다가, 영어도 그들보다 잘 못하며, 대개의 경우 내세울만한 연구실적도, 미국병원에서의 임상경험도, 미국 의사의 추천서도 없기 때문에 미국 병원들에게 자신의 우수성을 알리는 방법은 시험점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즘은 카플란과 같은 미국의사시험 준비 학원의 영향력이 더 커진 것인지 이 학원의 강의를 받고 고득점을 받았다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덕분에 레지던트 면접에 응시한 많은 지원자들이 흔히 99점을 가진 경우를 보면서 이제는 점수만으로는 안되고 뭔가 다른 경력까지 쌓아야 레지던트로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 되어서 마치 토익점수만으로 취직을 보장받다가 이제 각 분야에서의 소위 스펙을 쌓아야만 취업이 가능해진 요즘 한국의 취업시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다시 시험준비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이제 시험 결과에 대한 근심을 접고 더 열심히 토플에 매달릴 수 있게 되었다. 토플공부도 예상보다 쉽지 않았고 꾸준한 인내를 요구했다. 그런데 두 달 남짓한 준비 기간 동안 문법이나 독해, 어휘 등에서는 눈에 띄는 점수의 상승이 가능했는데 듣기는 잘 되지 않았다. 아무리 듣기 연습을 많이 해도 긴 문장이 나타나면 여지없이 중간에 놓쳐버렸고 답을 찾는 과정이 소위 “찍기”로 대체되었다.

얼마나 오래 노력을 해야만 어느 정도의 실력을 성취할 수 있는지 그 어느 책에서도 나오지 않았고 그 누구에게도 들은 바가 없었기 때문에 나만의 ‘소리 내어 책 읽기’비법이(?) 과연 끝까지 도움이 될 것인지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갈등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때까지도 중간에 공백이 길긴 했지만 햇수로는 2년 남짓 책 읽기를 해왔는데 듣기에 특히 취약하다는 점은 특히 마음속의 갈등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판단이 옳았고 같은 공부 방법을 그대로 우직하게 밀고 나간 것은 제대로 된 선택이었다. 당시 내가 잘 듣지 못했던 것은 그만큼 이해 속도가 느리고 표현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의시험에서 그렇다고 듣기 분야 시험 성적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점수의 상승 속도가 다른 분야에 비해서 현저히 느렸을 뿐.

토플을 준비하는 도중에도 스텝 2 시험 응시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시험은 타이밍이 생명이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시기에 시험을 보려면 매번 앞서 생각하고 준비하는 수 밖에 없었다. 토플 전에 오렌지 퍼밋을 받게 되었고 2001년 5월로 시험의 날짜를 잡았다. 드디어 3월에 토플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도 같은 장소인 안국동의 한미교육위원단 건물에서 시험을 쳤는데 이제 장소도 익숙하고 전과 같은 극도의 긴장이 없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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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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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민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대 부속 Montefiore Medical Center 재활의학과 전공의
St Mary's Health Center 내과 과정 수료, 삼성의료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수료

Blog : http://ko.usmlelibra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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