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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와서 쉴 틈도 없이 다시 스텝 3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시험 점수가 레지던트 지원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스텝 1, 2와는 달리 스텝 3는 점수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대개의 미국 의대생들은 스텝 3를 보지 않고 레지던트를 지원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스텝 3를 보기 원하는 외국 의대 출신들은 통상 비자의 필요에 의해서(정확히는 H visa를 위해서) 이 시험을 보기 때문에 레지던트 응시 원서를 받는 입장에서도 점수에 크게 주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스텝 3는 대개 레지던트 과정 중에 보는 경우가 많고 나중에 주 면허 신청을 위해서는 스텝 3가 필요하나 점수가 나오기는 해도 합격 점수만 넘으면 문제가 없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그래서 나 자신도 시험 점수에 부담이 없어 스텝 3는 그냥 쉽게 공부할 수 있었다. 스텝 2와 마찬가지로 임상 각 과목을 다 준비하되 내과,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 등 소위 메이저과 위주로 준비했고 각 과목 책을 다 찾아볼 수는 없어서 그냥 한 권으로 정리된 준비서적을 2가지 구해서 읽으면서 공부했다.
이 공부 시기와 겹쳤던 것이 바로 미국 병원 레지던트 지원 준비였다. 통상 9월부터 원서 접수를 시작해서 11월부터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고 대부분의 경우 이듬해 1월에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3월에 합격자 발표가 나는 것으로 한 해의 레지던트 선정 주기가 마무리된다. 그래서 나도 9월의 원서 접수에 맞추기 위해서 CSA를 보고 돌아와서 7, 8월은 내내 원서 준비 작업에 매달렸다. 9월 중순에 원서를 내고 인터뷰 준비에 돌입해서 두 달간은 인터뷰 준비에 시간을 보내고 11월말에서 12월 초에 이르는 기간에 인터뷰를 하기 위해 미국을 돌아다녔다. 스텝 3 시험도 CSA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즉 미국에서만 볼 수 있는 시험이었다.
스텝 3 시험을 위해서 따로 미국에 갈 수는 없어서 인터뷰를 위해 미국에서 체류하는 기간 동안 시험을 보기로 하고 날짜를 잡았다. 시험 날짜를 잡을 때 다른 시험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시험 응시 원서를 보내고 오렌지 퍼밋을 받고 미국에 전화해서 시험장의 일정을 잡는 과정을 겪었지만 1년 전 처음 같은 과정을 시작할 때와 같은 불안과 두려움은 없었다.
12월에 시험 날짜를 잡았고 난생 처음 뉴욕에 와서 맨하탄의 중심가에 위치한 시험장에서 시험을 보았다. 다른 시험과는 달리 무려 2일간의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보았다. 시험을 보고 나오면서 이제 길고 긴 일년 반의 USMLE(미국 의사시험) 공부를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 후로 우여곡절 끝에 2년 정도가 늦은 2005년 미국 미주리 주의 한 병원에서 내과 레지던트를 시작하게 되었고 또 기적과도 같은 여러 가지 인연이 얽혀서 2007년 다시 뉴욕의 병원에서 재활의학과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내 인생에서 무려 세 번이나 되는 레지던트 경험을 마친 지금 시험에 처음 도전할 때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1년 전에 아직은 뉴욕에서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을 때 <뉴욕에서 별을 쏘다>를 집필하고 있던 작가님이 나에게 행복하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나는 행복하다고 아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다른 데에 쓸 수도 있었던 나의 1년 반의 노력과 시간을 미국에 오기 위해서 투자했고 운 좋게도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다. 이제는 나와 같은 길을 가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하거나 드문 일은 아니다. 많은 한국의사들이 나와 같은 경로를 통해서 미국에 진출하고 있고 미국에서 점점 더 많은 한국의 의사들을 보고 있다.
어쨌거나 나는 5개나 되는 시험을 거치면서 남들보다 약간 더 특이한 경험을 한 덕분에 나름대로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데 있어서 필요한 내용에 대한 좋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미래의 꿈을 이루었을 경우에 자신의 삶이 어떨 것인지 끊임없이 꿈꾸고 즐기되 노력하는 순간은 모든 것을 잊고 바로 앞의 목표만을 향해서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10년 후에 10억의 재산이 목표인 사람은 1년 후 모일 1천만의 재산을 위해서 지금 당장 근검과 절제를 실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 1천만 원을 모으지 못하면 10년 후의 10억 원도 없지 않겠는가. 나는 2002년 군대에서 시작되었던 스텝 1 공부와 그 여름의 더위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런 기억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지금까지 미국의사시험 도전기를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 고 수민 올림

* 편집자 주 : 바쁜 생활 속에서도 USMLE 도전기를 보내주신 고수민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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