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베스트 셀러가 된지 오래된 책이죠.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 주인공인 마리암의 엄마인 나나가 자신의 딸에게 분노의 찬 목소리로 '남자는 항상 북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남자들이 여자에게 바라는 것이 순간의 쾌락, 자식, 특히 아들, 허드렛일 이라는 것을 함축적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배반한 마리암의 생부 잘릴을 통해 알게 된 남자들의 속성을 딸에게도 각인시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으로 그 중에서도 최하층 계급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던 나나가 자신보다 더 비참한 존재를 만들었다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그 책임을 미안하게도 불쌍한 딸에게 넘기고 싶습니다. 끊임없이 하라미(사생아)인 마리암이 수치스럽고 벌래 같은 존재라고 내뱉는 나나의 말은 자신을 포함해 하라미를 만든 장본인인 자신에 대한 원망이자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입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전쟁의 주인이 바뀌는 아프가니스탄.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는 그런 아프가니스탄 속에서 억압받으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천 개의 태양이란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특히 모성의 위대함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이 많은 곳이라는 막연한 중동의 한 나라. 텔레반이 나오는 나라로 막연히 알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속에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 만 하더라도 이 책의 값어치는 충분합니다.

불행하게도 책 속에 보여지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불과 30-40년 전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직도 계란을 먹을 때 마다 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어보면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남동생들에게만 올라갔던 귀한 반찬. 아버지가 가끔 남겨주더라도 여자인 자신에게 까지는 오지 않았던 음식. 한 상에서 함께 식사할 수 없었고 동생들을 돌보는 것이 오롯이 누이의 책임이었으며, 아들은 대학을 보내도 여자는 집에서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신 할아버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죠.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 골목과 집안의 구석 구석을 눈으로 보는 듯 느껴지게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 작가의 섬세한 표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경박한 글읽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서둘러 다음 전개를 알고 싶은 욕심 때문이기도 했고, 초반의 전개는 조금 지루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중반에 이르러서는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 진진했고, 목까지 뜨거운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기도 하고 코 끝이 찡해지기도 했습니다.


작가에 대해 알면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외교관의 아들로써 고등학교 때 미국에 건너와 영어를 처음 배웠다고 합니다. 생물학과 전공 후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내과의사로 캘리포니아에서 살았습니다. 40대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젊습니다. 이 작품 후에는 UN 난민국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 곳곳에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구별하기 힘든 혼돈 속에서도 작가의 시선이 상당히 미국에 우호적이고 미국인의 시선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작가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한 작품 속 등장 인물의 통증이나 질병에 대한 묘사는 의사로써 의학적 지식이 적용되어 사실적입니다. 직접 진단명이 나오지는 않지만 타리드의 투통을 묘사할 때 두통 전 입안에서 쇳가루 맛이 난다는 표현은 편두통의 전구증상입니다. 또 타리드의 성장 속에서 의족이 맞지 않아 겪는 고통이나 물집 등에 대한 묘사도 상당히 사실적입니다. 그냥 지나쳐 볼 수 있는 많은 부분에 의사로써의 경험과 지식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문 원판의 영어도 어렵지 않다고 하는데, 잠깐 둘러본 바로는 제 실력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여타 영문학 작품에 비하면 쉬운 영어로 써졌다고 하니 영어 실력이 괜찮으신 분들은 원문으로 읽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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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
현대문학 펴냄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피워낸 두 여자가 만들어내는 인간드라마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여성들의 삶.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작품으로,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피워낸 두 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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