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블로거뉴스의 응급실 비용 관련 글을 둘러싸고 의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글이다란 지적과 또 이용자로써 체감 비용이 비싸다고 지적도 못하냐는 의견이 나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서비스업이 이용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추세입니다만 의료에 있어서는 요구대로 따르지 못하는 면이 분명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시골 보건지소에서도 주민 요구로 인해 생긴 일이 있습니다.



함께 근무하는 한의사 선생님께서 상당히 침을 잘 놓습니다. 때문에 마을 주민들 뿐 아니라 인근 마을에서 일부러 찾아오시는 어르신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본인 스스로는 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손 사레 치지만, 환자분들의 입소문은 하루하루 퍼져나갔습니다. 작년에 계신 선생님도 잘 하신다고 소문났었는데 작년에 비해 더 경쟁이 치열한 것 보니 잘 하시긴 잘 하시나 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의 발단



소문에 소문이 나다보니 침을 놓는 날에는 새벽부터 차를 대절해와서 줄을 서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한번에 두 분씩 2-30분간 침을 놓기 때문에 하루 종일 침을 놓아도 아침에 미리 오신 분들 외에는 소화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인근 지역 보건지소에 한의사가 없기 때문에 1주일 중 2일은 출장을 가서 실제 근무일이 3일이라 더 이용하시기 불편하신 점이 있습니다.



환자분들의 항의



경쟁이 되어 새벽 일찍 와야 하는 것도 불편하지만 그래도 맞을 수만 있으면 먼 걸음한 것이 허탈하지는 않겠죠. 정상적인 진료 시간에 오신 많은 분들은 기다려도 진료를 받지 못하게 되자 불만을 토로하시게 되었습니다. 대안도 제시되기도 했는데요, 진료실에 침대를 하나 더 넣거나 대기실에 침대를 놓고 침을 놔달라는 요구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진료 및 침술을 하는데 침대가 부족한 것이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지속적으로 환자 옆에서 침을 조절하고 상태를 확인하며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침대를 하나 더 놓는다고 하더라도 대기용 침대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설명을 하기에 이릅니다. 옆에서 지켜보니 그런 꼼꼼함과 세밀하게 신경써주는 모습에 환자분들이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꼼꼼하게 진료를 해주는 것은 좋지만 대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은 없습니다. 또 대기환자가 많아서 당일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해지 못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로 인해 보건소와 군청에 항의 민원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결 방안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대기 환자들에게 설명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함께 근무하는 주사님이 주의와 훈계를 받게 되었죠.



지역간의 갈등



환자가 많아지고 경쟁이 생기다보니 옆 동네에서 오신 분들 때문에 이 동네 분들이 침을 못 맞는다고 대기하고 있는 분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옆 동네 어르신들은 내색은 못했지만 속이 상했죠. 그래서 집에 돌아가서 자녀분들에게 이야기를 하신 것 같고 자신들 동네에도 한의사를 배치해달라고 군청에 민원을 넣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얼마 전 초등학생이 의대 나온 공익을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배치해달라는 이야기를 TV에서 하는 것을 봤는데 아마 비슷한 이야기가 되겠죠? 어떤 점에서 비슷할까요?









군청과 보건소와의 해결 방안



군청에서는 주민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들어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업무를 관장하는 보건소는 업무 분배와 현실성을 들어 판단해야한다고 보통 이야기하죠. 그러나 지자체장이 가급적 해야 한다고 하면 해야 하는 것은 어느 지자체나 비슷할 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 의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단기간에 가시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것에 치중하는 것일 겁니다. 처음 공중보건의 배치를 받고 나서 이런 점들을 바꿔야한다고 지역 모임과 기관장회의등에 열심히 참석도 해봤는데요, 한 순간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한의사를 요구한 지역에 1일 출장을 보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됩니다. 당연히 주민 요구를 들어주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 예상은 했었습니다.



생각해 볼 점들



대충 읽어보시면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결정적 단서들을 말씀드리지는 않았는데요, 저희 군에 배치된 한의사가 총 5명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보건소에서 유급 한의사를 더 고용하는 것은 예산이 더 들겠죠. 아마 현실성이 없을 겁니다.



즉, 군보건소에 3명이 배치되어 1명이 진료를 보고 2명이 출장 진료, 순회진료를 나가도록 배치하고 나면 남는 2명을 나머지 면 중 2 곳에 배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였습니다. 그러면 이 2명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해야할까요?



합리적으로 생각해봐도 교통이 좋은 곳, 거점을 삼을 만한 지역 두 곳 (남/북)에 배치하는 것이 당연해보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해당 지역 주민은 걸어갈 수 있는 곳을 어느 지역은 버스타고 가야하기에 일부 지역 환자분들은 불편을 호소하게 된 것이죠.



지자체가 실시되고 나서 가장 좋은 점은 이런 주민들의 불편사항이 지자체 행정에 즉각적으로 반영된다는 점일 것입니다. 공중보건에 있어서도 지자체 실시 이후 많은 것이 변했는데 과거에는 꿈적도 안하던 보건소가 환자 중심으로 변한 것을 들 수 있겠죠.



하지만 부작용도 있는데 바로 의료의 분배 문제입니다. 지역마다 우리 동네에 배치해달라는 요구가 생기고 선거가 있는 지자체에서는 그런 요구가 공약이 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항상 그 결과가 합리적으로 이뤄지지만은 않는다는 것이 문제겠죠.



더 이상은 의료 서비스라고 말하기 힘든 한의사 방문 진료



올해부터 지역 요구에 따라 군 보건소에 근무하던 한의사를 줄여 지역 보건지소에 배치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점은 일부 지역의 주민들이 한의사를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일겁니다.  한의원이 있는 지역에 한의사가 배치된 지역도 있어 그 지역의 한의사를 이동시키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었지만, 이미 만들어진 것을 없앴을 경우 주민 반발이 우려되어 그 지역의 배치는 유지하기로 결정된 모양입니다. 공공의료와 민간의료가 좀 조율할 수 있으면 좋은데 아직 그런 시도가 적습니다.



또 각 면마다 순회 진료를 하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한의사가 배치된 지소에도 한의사가 출장가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주민 요구를 들어 배치는 했지만 원래 군보건소에서 하던 일을 안할 수 없기에 각 지소에서 업무를 인계받게 된 것이죠. 그래도 이것은 주민들이 참아야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실상은 그렇게 이해해주는 분들이 많지 않죠. 더 나가서 해당 지역 내부에서도 찾아가기 힘들다고 경로당 별로 순회해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저희 군에는 300여개의 경로당이 있다고 하네요.



결과



이런 속사정 끝에 지금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요양병원 출장을 나가고 있고 또 한의사가 없는 지역으로의 출장도 나가게 된 것이죠. 나눈다는 생각을 가지면 불만이 사그라질 법도 한데도, 오셔서 쓸데없이 딴 동네 출장은 왜 가냐고 하시는 분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사정은 이렇게 복잡한데, 옆 동네 거주하시는 분의 민원으로 해당 지역 보건지소로의 출장을 나가게 될 것같습니다. 아~! 참, 300개의 경로당도 매주 돌아가면서 순회하고 있습니다. 한의사 선생님이 경로당 출장 진료는 이제는 더 이상 환자가 추적관찰이 되지 않는다면서 한숨을 쉬네요. 이젠 진료라고 하기 보다는 전시행정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희 보건지소에 대기 환자분들은 그래도 줄지 않았습니다. 파견을 결정한 명분은 멀리서 찾아오는 환자를 대신해 한의사 선생님이 가는 것인데, 아직 여기 찾아오시는 환자분이 줄지는 않았죠. 아마 그곳에서 새로운 수요만 창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민들의 불만은 어떻게 해결해야할까요?



사족



사실 민원의 책임은 주민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무리한 결정을 한 분들이 져야할 것 같은데, 일개 직원의 책임으로 돌리는 모습이 실망스럽습니다. 주민들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우리 지소 식구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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