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재학 중 교육 과정에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의사는 없을 것 같다.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교육 스케줄은 살인적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고, 밤을 새워도 다 외울 수 없는 분량의 시험 범위, 계속되는 시험 스케줄, 그 가운데에도 진도를 나가는 교육 과정은 젊은 날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전에도 의과대학 입학 전에 생각하던 의학과 의료가 실제로 의대 들어와서 보고 느낀 것과 너무나 차이가 난다며 공부를 포기하던 선배들이 있었고, 그런 문제가 아닌 인간적이지 않은 교육량과 시험 스트레스를 받기 싫다 고해서 나가는 동료들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냉정하게 이야기하듯, 이는 자신의 선택의 문제니까.




의과대학의 힘든 과정 중 일부는 좀 더 합리적인 교육 시스템으로 변해가면서 해결해야할 부분이 있다는 것은 두 번 이야기하면 잔소리다. 그래도 의대생으로 있으면서 참고 견디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사명이 있어서고 누군가는 보람을 기대하기 때문이고, 누군가는 경제적인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일 것이다. 일종의 자신의 선택과 희생에 대한 대가, 그 대가가 금전적이든, 보람이라는 무형적인 것이든, 대가가 있을 것이란 기대와 희망으로 참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교육은 우리사회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사회에 팽배한 고용불안, 경기 불안, 취업난은 조금이라도 나은 선택과 위치를 선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과도한 교육열로 나타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의과대학 커트라인은 전국 성적 최상의 학생들만 갈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분명 이전과는 차이가 나는 현상이다.



의과대학 입시 성적이 상위권이긴 했지만 요즘처럼 전국 의과대학이 전국 입시 성적순으로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채워지는 것은 그만큼 이 사회가 어렵다는 이야기도 되고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기대가 깔려있는 것이다.



이런 경제적 논리에 의해 의과대학에 진학을 하든, 사회봉사나 사명감으로 지원을 하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먼저 경제적으로 본다면 의사 사회도 젊은 의사들이 사회에 배출되어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갖추기가 과거와 달리 어려워졌고, 일부 전문 과목은 준종합병원등에서 수요가 없다시피 하다.



사명감 또는 명예를 위해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좌절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의료 보험에 막혀 교과적인 진료, 의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치료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많을뿐더러, 보험을 청구해도 삭감당할 때가 많으며, 때로는 부당 청구로 언론에서 ‘환자 또는 나랏돈 떼먹은 대형 병원’으로 보도된다. 국립의과대학 병원들도 국감에서 이런 지적을 받았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국영 병원인 이곳에서 나랏돈을 떼먹는 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을 뉴스제목이지만, 사람들이 불신을 가지기에는 충분하다.




낮은 수가 속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자 비급여, 근거 중심의 의학에서 벗어난 상업적인 목적의 대체의학, 미용 비만에만 치중하는 현 의료 현실 역시 좌절하기에 충분하다. 의료계 내부의 비리나 부조리에 대한 소식도 희망을 잃게 한다. 제약회사와의 유착, 리베이트 관행, 탈세 등은 내부에서 보면 생존을 위해 해야 할 일이고, 의료 시스템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누가 나서서 고쳐주지 않고 있다.



이런 것을 깨달을 즈음 되면 의과대학에 몸을 담은 지 4-5년은 지나갈 것이다. 이 때에 드는 허망함은 짐작하기 힘들다. 의과대학 6년에 이후 당연히 거쳐야하는 것으로 자리 잡은 인턴, 레지던트 5년의 세월을 보낸 뒤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우울할 수밖에 없는 일.



그러나 의료계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나 통찰이 부족하다. 지금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나,
전공의 수련을 막 마친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수십 년 선배들의 시각이 다르고, 대학에 몸담고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님들이나 봉직 생활하는 의사들의 생각과 개업한 의사들의 생각이 다르다.



의료계에 산적한 문제는 비단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니듯, 의과대학생들의 좌절감이나 의사들의 문제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사회 전반의 문제와 맥락을 같이한다. 앞으로 더 걱정되는 것은 최근에 입학한 상위 1%의 학생들이다. 엄청난 경쟁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쌍코피 터져가며 남들에 비해 더 노력해 들어온 의과대학에서 희망을 보지 못할까 두렵다.



그래도 예전에는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호기롭게 그만두던 친구들도 있었건만... 이 사회에 적성에 맞으면서도 안정적인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란 의과대학 들어오는 것 보다 더 힘든 세상이기에 더 이상의 탈출구도 없다. 결론적으로 이 사회가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의료계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의사나 의대생들의 좌절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의료계는 사회에 더 관심을 가져야하고, 더불어 의대생들의 고민과 좌절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이 사회가 가진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88만원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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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경제

지은이

우석훈 (레디앙,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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