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박사 사건 때 언론에 많이 나온 단어가 IRB(임상시험심사위원회, Institutional Review Board) 였습니다. 생명과학 연구에 있어 윤리적 건전성이 강조되고 있는데요, 이 IRB라는 위원회에서는 피험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과학자의 임상연구 계획을 감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왜 중요한지 짐작이 가시죠?





임상시험은 사람에게 사용될 의약품이나, 제품 등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증명할 목적으로 실시하는 연구입니다.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환자에게 치료를 하기 위해 시행되는 연구인데 보통 실험동물을 이용한 비 임상시험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해서 사람에게 바로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임상시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임상시험은 여러 단계 (4단계)로 나눠져 있습니다. 1상에는 아주 제한적인 인원에서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2상, 3상을 거쳐 안전성을 확보하고 실제 치료에 적용할 수 있도록 허가가 나게 됩니다. 이렇게 번거롭게 해놓은 것 역시 안전성을 확보하고 피험자의 피해를 최소화 하기 때문이죠. 가끔 1상, 2상의 연구가 발표된 것을 보고 해당 질환 환자분이 새로운 치료법이 나왔다고 진료실에서 문의해서 애를 먹기도 합니다.





윤리라는 것이 당시 사회 전반의 문화와 인식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변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최근에 소비자의 권리가 향상되면서 과거와는 달리 더욱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요구하는 추세입니다. 국내에서도 2000년 이후에는 이런 변화에 발맞춰 변해가고 있습니다.





임상시험에 참여해보신 환자분이나 참여하는 의사들도 인식이 변해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용어에서 오는 오해가 여전히 있습니다. '실험', '시험'이라고 하면 왠지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최근의 윤리 규정 강화가 연구의 걸림돌로 인식되고 빠른 길이 눈에 보이는데 돌아 가야 하는 상황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국제적으로는 임상시험 윤리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뉘른베르크 강령, 헬싱키 선언, 벨몬트 보고서, ICH/GCP 가이드라인 등이 제시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청 고시 '의약품임상시험관리기준'이나 2005년에 발효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있습니다. 피험자에 대한 인권과 임상 연구에 대한 윤리적 사항이 강화된 것이죠. WHO산하의 국제의학기구협회(CIOMS)에서도 1982년에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생명의학 연구에 대한 국제윤리가이드라인을 제안한바 있습니다.





이런 윤리 규정들의 주요 내용은 간단합니다. '임상시험은 연구 피험자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방법으로 수행되고, 연구의 피험자에게 공정하며, 연구가 수행되는 공동체 안에서 도덕적으로 수용 가능한 경우에만 윤리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윤리적 판단을 연구자에게 맡길 경우 연구자는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IRB가 필요하게 된 것이죠.





과거는 어땠을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정보와 경제적으로 취약한 환자를 대상으로 비윤리적인 행위를 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되는 시대입니다. 공인되지는 않았으나 나만의 치료법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 자체가 비윤리적인 행위인 샘입니다. 이런 윤리적 기준의 변화는 의료 소비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합니다.









이런 변화가 편치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치료의 선택에 따라 환자의 위험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 있어서는 과학적 근거에 입각하지 않은 치료가 윤리적인 지탄을 받게 된 형국인데, 대부분 각 나라의 전통의학이나, 대체의학들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소송에 휘말리게 된 것이죠. 일전에 네덜란드에서 암환자에게 대체의학적 치료를 한 의사가 고소당한 사건을 소개해드린 것을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술 연구를 하는 대학병원에서도 불편합니다. 의학 연구를 위해 환자동의를 받고 설명하는 과정에 참여해보신 분들은 알겠습니다만, 여기에 엄청난 시간과 인력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학문적으로 타당한 연구 디자인도 설정해야 함은 당연하고, 혹시 생길 수 있는 피해에 대한 보상 및 연구에 참여하는 것에 따른 금전적 보상까지 감당하기에는 개인 연구자로써는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의료 산업의 후원으로 이뤄지는 의학, 생명공학 연구가 늘어나고 개인 학자들의 연구가 많이 감소하게 되는 것이죠. 제약사들은 엄격한 윤리 규정을 준수하면서도 임상 시험을 진행할 경제적 여유가 되고, 또 연구가 성공적일 경우에는 그 비용을 충당하고 남을 수익을 남길 수 있으니까 말이죠.





이런 현실이다 보니, 과학자도 자신을 홍보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정계, 사회 인사들과 친분, 사회적 인지도 향상 등은 연구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많은 지원을 보장해주는 수단이 됩니다. 부정적인 견해도 있지만,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고, 또 선만 지킨다면 비판할 일이 아니라 배워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의학 연구 발표에 있어서도 자신의 연구가 학술적으로 가지는 객관적 가치를 넘어, 언론을 통해 '획기적'이라고 어필해야하는 시대입니다. 의사들의 의학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다 보니, 윤리 기구의 역할은 더욱 강조되고 학술적 가치를 평가하는 학회의 역할 역시 강조가 됩니다. 또 윤리 기구에만 의존할 수 없어 소비자 중심의 기관 단체들도 생겨나는 것이죠. 이런 의미의 의료 소비자들의 움직임은 아직 국내에서 눈에 띄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변해가겠죠.





최근 코메디닷컴에서 송명근 교수님의 수술법 논란을 계속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른 논란이 참 많습니다. 학술적인 부분은 학회의 몫으로 남겨두더라도 소비자의 권리 측면에서 생각해볼 것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의료 소비자들은 의사들 간의 발목 잡기, 시샘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 같습니다.





학문적 발전까지 걱정해주시는 댓글을 봤는데, 어떻게 보면 흉부외과 학회와 의료 소비자들이 주장해야하는 것이 바뀐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IRB 허가 사항에 대해서도 기사가 나왔는데, 이 부분을 사례 삼아서 어떤 것이 의료 소비자의 권리와 맞닿아 있는지 다음 기회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WHO 권장 임상시험 가이드라인 :

493561b2d7685AF.pdf4935cf27615369U.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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