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에 개봉한 도그빌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나요?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이 영화는 1930년대 미국의 록키산맥 부근의 작은 마을 도그빌에서 일어난 일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의 무대, 3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보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으로 색다른 재미를 주는 작품입니다. 칸느 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았다고 하죠.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있고, 미국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긴 영화로 보기도 하고 인간에 대한 환멸이 담긴 영화라고 해석하는 것도 본 것 같습니다.








혹시 보시지 않은 분들을 위해 간단히 줄거리를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니콜 키드먼이 맡은 그레이스란 아가씨가 갱들에게 쫓겨 도그빌로 들어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외부인을 경계했지만, 착하고 일 잘하는 그레이스를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경찰이 실종 신고를 받아 '사람을 찾습니다' 포스터를 붙이고, 나중에는 누명을 씌워 '은행 강도 현상금'까지 붙게 됩니다. 2주전 일어난 은행강도와 연루되었다는 경찰의 설명에 마을 사람들은 그레이스가 마을에 함께 있었던 것을 알기에 누명이란 사실을 바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레이스에게 대하는 대우는 달라졌습니다. 어찌되었든 법적으로 죄인인 사람을 숨기고 있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고, 마땅히 그레이스가 그에 보답을 해야한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일하는 시간을 늘렸고, 임금을 줄였고, 심지어는 마을 남성들의 성적인 노리개로 삼습니다.





무엇이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그레이스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게 만들었을까요? 그레이스가 죄인이기 때문이였을까요? 아니면 험한 일만 도맡아 하는 바보스러움에 질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요?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것은 우리 나라에 살고 있는 '불법이주노동자'란 단어였습니다.







흔히 국내에 허용된 체류기간을 넘어서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를 '불법체류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불법(illegal)이란 단어에는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내포되있죠. 얼마전에 있었던 아시아 인권포럼에서 고려대학교 윤인진 (사회학과) 교수님은 '아시아에서 이주노동자의 기여와 현지인의 인식'이란 주제로 1200명 상대로 설문조사한 것을 발표한 바가 있는데 이 조사에서도 합법적인 체류자에 대한 인식과 불법체류자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합법체류 이주노동자에게 노동법적 권리, 가족을 데려올 권리, 영주권 등을 부여해야 한다고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반면,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이와는 반대 입장이 많았고 불법(미등록) 체류 이주노동자가 경제적인 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주거환경을 해치고 범죄율을 높이는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조사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식은 사실에 근거한다기 보다는 불법이란 단어에서 주는 이미지에서 받는 것이 상당히 큽니다. 영화 속 도그빌에서 그레이스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상금이 붙고 경찰이 신고해야한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자, 마을 사람들의 태도와 생각이 변화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불법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로 편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불법(illegal) 체류자란 단어 대신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말을 쓰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해외에서도 불법이란 단어가 주는 범죄자같은 느낌 때문에 ‘Overstayed’(비자기한 초과 체류자)라는 용어를 쓴다고 합니다. 허용된 기간을 초과해서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것이 잘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영화 도그빌에서 그레이스처럼 발에 쇠사슬을 묶고 짐승처럼 일을 부려먹어도 되는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친척 중 농장에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어떤지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닭들로 가득찬 축사 안에서 청소하고 사료주는 일, 더 이상 한국 사람을 고용하지 못해 산속 농장에서 온 식구가 나오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이주노동자를 구하지 못하면 1주일에 한번도 농장에서 나오기가 힘듭니다.





위험하고 험한 곳에서 낮은 임금으로 일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고용합니다. 때로는 일이 숙달되어 고용주가 계속 있으라고 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 나라에서 코리안 드림을 아직 이루지 못해 더 있기를 원하기도 합니다만,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위험한 곳에 일하다보니 다치는 일이 많고, 노동력 상실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게다가 합법적으로 국내에 체류를 해도 건강보험에 가입해주지 않는 사업장도 있고, 체류기간이 초가된 경우에는 대부분 보험혜택이 없고, 돈이 아까워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이 사회에 가장 바닥에 위치한 존재들이거나, 바닥에 가까운 존재들이라고 해야할 겁니다.





도그빌 마지막에 그레이스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도그빌 마을 주민들을 바라봅니다. 이들을 살려야할 가치가 있는 존재일까? 아니면 세상에 없는 것이 더 나을까? 고민하는 예수를 상징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예수님이 자신을 죽여 죄를 씻는 것을 택했던 것과는 다른 아주 인간적인 선택을 합니다.





그레이스가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왔다면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요? 족쇄를 푼 그레이스가 총을 들고 톰을 쐈던 장면이 머리속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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