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된 이주노동자들은 이 사회에서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이 땅에서 그들은 인간으로써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조차 없어 보입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열등한 사람이나 심지어는 범죄자로 몰리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아플 때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주노동자를 위해 의료 공제회가 있기는 하지만 전국적인 조직은 되지 못합니다. 겨우 수도권을 맡고 있기 때문에 각 지역마다 이와 비슷한 기관 또는 무료 진료소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플라치도 최충언 선생님 (남부민의원 원장) - 사진 : 박성용 선생님






우연히 블로그를 통해 알게된 플라치도(최충언)선생님은 부산에서 이런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나눔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의료의 공공성에 대해 강조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블로그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최충언 선생님의 블로그는 오마이뉴스에 돌팔이의 블로그 입니다.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이주노동자와 차상위계층을 위한 도로시의 집 (무료진료소)를 운영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작년에 진행한 이주노동자를 위한 블로그 바자회 수익금과, 다음 블로거뉴스 상금 중 미리 약속한 금액은 이주노동자를 위한 건강협회에 기부를 한 상황이라, 도로시의 집에 후원을 별도로 하지는 못하고 있던 차에 뉴욕에서 의사하기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고수민 선생님께서도 상금을 이주노동자를 위해 써달라고 보내주셨습니다. 망설임 없이 도로시의 집에 전액 후원했습니다.





지난 주말 도로시의 집도 보고 플라치도 선생님를 만나기 위해 부산을 다녀왔습니다. 최근에 플라치도 선생님께서 출판한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보인다' 를 읽고 포스팅한 흉부외과 박성용 선생님 도 즉흥적으로 오시라고 연락했습니다. 물론 미리 플라치도 선생님께 연락은 드린 상태였습니다.






도로시의 집 진료실





부산의 가톨릭센터는 부산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이 곳 6층의 절반을 도로시의 집으로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가톨릭센터에 후원해주는 것은 아니고 여러 사람의 후원금으로 임대료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도로시의 집은, 가톨릭 신자분들은 잘 아실 도로시 데이 여사님 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플라치도 선생님은 마더 테레사보다 더 훌륭하신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로시의 집을 둘러보니, 치과진료실과 간단한 물리치료실을 겸해 침을 맞을 수 있는 공간도 있을 정도로 꽤 큰 규모였습니다. 한쪽 구석에는 아이들을 위한 무지개교실 공간도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위해 만든 공간이였습니다. 또 한쪽에는 조제실도 있었습니다. 매주 일요일만 진료를 하고 있는데, 지역 사회 의사 선생님들이 스케줄을 짜서 돌아가면서 봉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로시의 집 내부에 있는 무지개 교실






이비인후과 진료 및 안과 진료






물리치료 및 한방 치료실





간단히 식사를 하면서 플라치도 최충언 선생님께 이런 저런 궁금한 이야기들을 여쭤봤습니다.





양 : 도로시의 집을 운영하려면 후원이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임대료는 가톨릭센터에서 그냥 후원해주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임대료까지 부담을 하려면 ...





플 : 가톨릭 교구의 후원을 받는 줄 아시는 분이 많으시더라고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처음 만들 당시에 비해 면적을 줄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돈도 많이 넣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지역 사회 이곳 저곳에서 후원도 해주시고, 또 지역 사회에서 활동하시는 여러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주셔서 그럭 저럭 운영되고 있습니다.





양 : 혹시 사모님께서 싫어하시지는 않으신가요?





플 : 하하. 집사람이 싫어하죠. 아침에 눈떠서 진료나가고 집에 돌아와서는 블로그 한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고, 주말에는 봉사하러나가고... 또 시간나면 여러 단체에 참여한다고 바쁘니. 뒤통수만 본다고 불만이 많아요. 그래서 요즘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합니다.





플라치도님은 현재 ‘노동자를 위한 연대’라는 단체에서 이사를 맡고 있으시다고 합니다. 과거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에 연루되시기도 했었고, 이후에도 노동운동을 계속 해오셨는데요, 블로그를 통해서도 이런 활동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블로그 사진에 '인간 존엄성, 공공선의 원리, 보존성의 원리'이 적혀있는데 이런 것을 가장 중요한 점으로 꼽으셨습니다.





양 : 과거 구호병원에서 장기간 근무하셨는데, 혹시 개업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플 : 아마 혼자 개업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후배가 달동네에 개원했는데 함께하자가 계속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8년정도 구호병원에서 외과 과장으로 근무했는데, 병원 취지가 이름에도 알 수 있듯, 봉사하는 목적의 병원이죠.





양 : 지금도 구호병원에 일주일에 두번 정도 수술하기 위해 나가신다고 하시던데요.





플 : 개원을 해도 후배와 두명이서 하니까 마음의 여유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아무래도 좀 더 낫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라는 게 참 무서워요. 구호병원에서는 그렇게 일을 해도 월급은 별로 많지 않았는데 남부민의원을 개원하고 나니까 일은 줄고 버는 돈은 3배가 됐어요. 생산수단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차이가 나는 거죠.





플라치도님은 개원 후에도 구호병원에 외과 환자 수술을 위해 나가고 계시고, 또 도로시의 집을 운영하는데 상당 부분의 자금을 대고 있으셨습니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말씀해주셨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잘 활용해서 목적하는 바를 이루시고 있으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구호병원의 경우 봉사를 위해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병원이다 보니 병원 경영 상황이 여유롭지 않고 의사들 월급을 주는 것도 상당히 어렵고, 그 금액도 많이 작아 아이들 학교보낼 때 즈음에는 어려움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개원 후 이전보다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로워져서 도로시의 집등의 활동에 더 많이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진다고 누구나 나눔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수밖에 없었습니다.









양 : 이주민 건강협회(공제회)가 여러 병원과 연계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도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아직 전국을 다 커버하지는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지역에서 소규모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후원자들과 봉사자들이 이주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경남에서는 도로시의 집이 가장 대표적인 것 같습니다.





플 : 부산에서 시작했지만, 앞으로는 인근 경남 지역으로 봉사도 나가고, 그 지역 의사선생님들과 연계해서 꾸준히 활동할 수 있겠금 하는 것이 계획입니다. 얼마전 부터 김해에서는 시작했습니다. 조만간 울산에서도 할 겁니다.





양 : 이렇게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플 :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1982년) 에 연루된 이후부터라 할 수 있죠.





고등학교시절 부산에서 잡히던 NHK방송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던 플라치도님은 의대(고신대의대)에서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사회운동을 시작했다고 하시는데요, 그 중에서도 노동문제,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플 : 석방이후 강원도 탄광촌에 들어갈까도 고민 많이 했는데, 다 폐광을 했더라고요. 이런 저런 생각하다가 함께 구속됐던 최기식 신부님이 이젠 운동도 생활 속에서 해야 한다고, 생활 속에서 내 역할을 하면서 사회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그러시더군요. 그래서 복학을 했습니다.





양 : 당시에는 상당히 보수적이던 시대라 의대 다니시면서도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플 : 수련을 받으려고 할 때 경력(?) 때문에 잘 받아주지를 않았습니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인턴이 빈 병원이 있어 들어갈 수 있었고, 또 그곳에서 외과의사의 길을 갈 수 있었지요.





양 : 특별히 이주노동자에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플 : 노동자들도 다들 상황이 다릅니다. 경제적으로 문제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노동자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죠. 그것이 도로시의 집을 만들고, 이주노동자를 위해 진료하는 이유가 될 겁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만을 위해서만 도로시의 집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형편이 어려운 분들 모두에게 개방된 곳이죠.






남부민동에 위치한 남부민의원





식사를 마치고 나와, 남부민병원에 들렀습니다. 최근 내신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 의 배경이 되는 곳입니다. 실제로 보니 병원에서 바다가 보였습니다. 책 표지에서 처럼 산동네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골목 골목이 아주 복잡하게 이어진 달동네입니다. 다행히 목이 좋아 환자분들이 많이 찾아주신다고 합니다. 또 두 명이서 진료하다보니, 시간도 낼 수 있어서 구호병원에 수술을 하러 갈 수도 있고, 또 봉사하러 나갈 수도 있어 좋다고 하시더군요.





이런 사회 활동에 못지 않게 글솜씨도 뛰어나셔서 2004년도 부산 마리아수녀회 구호병원 외과 과장시절에는 <가난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라는 글로 제3회 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수필 <단팥빵>과 최근에는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 도 출간하셨습니다.











한무수필문학상을 수상할 당시 수상 소감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소년의 집’을 운영하는 마리아수녀회 구호병원 수녀님들에게 배운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돈은 마귀의 똥’이라는 것이고, 둘은 노숙자나 독거노인들처럼 환자의 몸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를 ‘가난의 향기’라며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3회 한미수필문학상 수상 소감 중)





남부민의원 원장이라는 개원의사로의 변신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플 : 개원한 의사들이 이야기하는 의료계의 많은 문제점들에 대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전문가로서의 자존심 구겨지고, 경제적으로도 그렇지요. 저녁 9시까지 외래진료실을 지키는 동기들을 보면 안쓰럽습니다. 그나마 전 둘이서 개업했으니 여러 모로 나은 편이죠. 의사로써의 보람을 느끼면서 산다는 것이 사실 현실에서는 힘듭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를 위해 의료 지원을 나갈 때에는 의사로서 보람을 아주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도 여기에서 보람을 찾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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