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원래 책과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창시절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었고, 의사가 된 이후에도 평생 책을 읽게 됩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물론 의사들 스스로도 ‘의사’와 ‘독서가’를 별로 동일시하지 않죠. 왜일까요? 청년의사에서는 의사들의 독서 이야기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통해, 이런 편견 혹은 진실에 도전해 보고자 합니다. <청년의사 편집자 주>




의사들에게 공보의 시절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의사로서의 커리어를 3년 이상 늦추는 억울한 제도일 수도 있고, 길게는 10년 이상 숨가쁘게 달려온 공부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기꺼운 시기일 수도 있습니다.







김범석 선생에게 공보의 시절은 병원생활에서는 몰랐던 세상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하고 병원에서 환자와 지낼 때는 몰랐던 수많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얼마나 좁은 시각으로 세상을 봤는지 알게 됐다고 이야기 합니다.. 특히 공보의 첫 해를 소록도에서 지냈던 만큼 서울에서 의대를 다니고 큰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섬사람들의 모습이 더욱 마음을 울렸을 법합니다. (관련글:'당연한 것'을 빼앗긴 소록도 이야기 - 김범석 선생님 수필집)




“제가 소록도 사람, 소록도 옛날 일들, 지명 이런 것들을 다 아니까 <우리들의 천국>이라는 소설이 절절히 다가왔어요. 중학교 때인가 학교 과제로 독후감을 냈을 때는, 너무 어려워서 대충 써내고 말았는데 그때 느낌과는 완전히 달랐죠. 인간의 본질에 대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다시 읽을 때마다 느낌이 또 다르더군요.”




<우리들의 천국>을 좋아하는 소설로 꼽긴 하지만 김 선생은 소설책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 다며 웃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도 있지만 그야말로 ‘낚였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도 있다고 말이죠.




“소설을 읽으면 반응이 너무 양극단으로 나뉘니까 좀 더 안전한 선택을 하는 거죠. 소설 아닌 장르를 택하는 식으로.”




주로 지하철에서 책을 읽게 되는데 일주일이면 독서를 위한 시간이 7시간 정도는 확보된다고 합니다. 일주일에 세 권 정도는 읽을 수 있는 시간이죠.




“주로 역사를 좋아해요. 사람 사는 얘기를 좋아하죠. 그렇다고 내세울 만큼 많이 아는 것도 아니라 박경철 선생 같이 해박한 분을 보면 부러워요. 머릿속에 정말 많은 것들이 정리되어있어서 들어보면 그 내공과 깊이가 느껴지잖아요. 전 정리가 잘 안 되서 그냥 혼자 보면서 즐기는 정도거든요.”




그가 가져온 책 중에는 물론 박경철 원장이 쓴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도 들어있었습니다. 경제란 무엇인가에 대해 대략 감을 잡을 수 있게 기본에 충실한 면이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특히 이 책이 마음에 든 것은 오히려 본서보다는 부족인 투자에세이 <투자와 인생> 때문이었다네요.




“얼마만큼의 돈을 어떻게 굴리느냐가 아닌 그렇게 번 돈을 어떻게 값지게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사소한 재주로 돈 몇 푼 버는 게 아니라는 진리를 알려주고 동양고전에 나오는 삶의 원리들이 투자에서 어떤 덕목이 되는가를 흐르듯 써내려갔죠. 글 솜씨가 정말 좋으세요. 이 얇은 책 한 권에 정수가 들어 있죠.”




삶의 원리를 다룬 고전에 대한 관심은 좀 더 이어져서 이번에는 신영복 교수가 쓴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이 등장했습니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을 고전이라고 한다는데, 사실 동양고전을 읽겠다고 들고 있으면 어느새 쏟아지는 잠과 일전을 벌이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나름대로 해석한 내용을 읽고 다시 원문을 읽을 때는 처음의 막막한 느낌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고요.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하고 스스로 해석하려고 노력도 하게 되고, 2천 년 전에도 사람들이 똑같은 고민을 하고 살았구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고전읽기는 힘들죠. 이렇게 쉽게 고전을 풀이한 책 중에서는 이 책이 그래도 좀 마음에 들어서 종종 읽어요. 머리도 맑아지는 것 같고.”




읽어서 머리가 맑아지는 책이라면 법정스님의 책을 빼놓을 수 없다네요. 다른 책과는 다르게 유난히 낡은 <산에는 꽃피네> 포켓북이 눈에 띄었습니다.




“주머니 안에 쏙 들어가니까요, 하하. 법정스님을 참 좋아하는데 강연, 기고문을 엮은 책이에요. 글이라는 게 사람됨을 말해주잖아요, 글이 참 맑은데 아마 법정스님의 삶이 맑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 같은 사람한테서는 절대로 안 나올 글이죠. 고등학교 때도 열심히 읽었고 법정 스님 책은 다 갖고 있어요.”




‘맑고 고운’ 책들 사이에는 자크 아탈리가 쓴 <미래의 물결>과 말콤 글래드웰의 최근작<아웃라이어>가 보였습니다.




“<미래의 물결>을 읽고 최근작인 <자크 아탈리 위기 그리고 그 이후>도 읽었는데, 이분은 천재인 것 같아요. 5천년 넘는 역사의 흐름을 꿰뚫고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미래사회가 어떻게 움직여나갈 것인지, 좋은 방향으로 가려면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식견을 갖고 있다는 게 대단하지 않나요?”




현대 마케팅 사회의 특질을 꿰뚫어보는 책을 내놓는 말콤 글래드웰의 책도 웬만한 것은 다 읽었는데 얄팍한 현상만 보고 쓰는 인기영합의 성공마케팅서에 비하면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는 기회를 통해 이뤄지는 성공과 그 기회가 오기까지 노력해온 순간에 대해 말하고 있어서 ‘평범한’ 의사에게는 꽤나 힘을 주는 책이었다고.




“사실 어제 인터뷰 준비하면서 반성 많이 했어요. 너무 얄팍하게 책을 읽은 게 아닌가 싶어서요. 같은 논문을 읽어도 어떤 사람들은 그렇구나 하고 덮어버리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이 이전에 이런 논문을 썼고 이 논문은 여기서 그 논문과 이어지는구나 하는 식으로 깊이 있게 들어가잖아요. 책을 읽고 있지만 정작 작가의 의도는 건드리지 못하고 표면적으로 읽어온 게 아닌가 하는 반성했죠.”




그가 책을 열심히 읽는 것은 나아가서는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안목을 가지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아웃라이어>이론에 의하면 김범석 선생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꾸준히 읽다보면 양이 질로 변환하는 티핑포인트의 순간이 점점 가까워 오지 않을까요.




김범석 선생님의 추천 도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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