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뇌과학의 발달로 공포와 괴로운 기억이 어째서 뇌에 오랫동안 남아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런 기억들을 없앨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과학자들이 점점 이해를 많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학적 진전은 전쟁이나 심한 충격 등으로 인한 기억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소화해내지 못하는 병인 외상후 스트레스질환(post-traumatic stress disorders, PTSD)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큰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 괴로운 기억을 지우는데에, 행동치료(behavioral therapy)가 약간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공포의 원천


뇌에서 공포를 감지하는 부위는 깊숙한 곳에 위치한 편도체(amygdala)라는 부위입니다.  편도체는 실제로 어떠한 논리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자극에 단지 반응하는 형태로 공포라는 감정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므로, 무엇인가 공포를 일으킬만한 상황을 의식하는 것과 무관하게, 편도체가 공포 시스템을 동작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공포스러운 기억이 남아있을 수 있고, 이 부위에 어떤 형태로든 문제가 있거나 자극이 주어지는 경우에 공황장애와 같은 심리적 상태를 겪을 수 있습니다.  이를 보다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스위스의 연구팀(Friedrich Miescher Institute, Basel)들이 쥐(rat)를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한 것이 있습니다.  이 팀에서는 쥐로 하여금 전기쇼크를 경험할 때마다 특정한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더 이상 전기쇼크를 주지 않아도, 특정 소리만 듣는 것으로 쥐가 몇 초간 동작을 멈추고 전기쇼크를 받는 것과 유사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기전은 사람도 역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편도체에 공포에 관한 강력한 기억이 숨어 있고, 그와 약간의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포와 두려움에 대한 기억이 무서운 것입니다.


기억 지우기


이러한 공포의 기억은 잘 사라지지 않지만, 아기 쥐의 경우에는 조금 다릅니다.  성체 쥐와는 달리 아기 쥐는 이런 공포의 기억이 결국 사라지고, 해당 기억이 없어집니다.  쥐의 경우 태어나서 약 3주 정도가 지나면, 편도체(amygdala)의 뇌세포들이 보호를 위한 방어막(sheath)이 만들어집니다.  그 다음부터는 이러한 기억이 잘 지워지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성체 쥐의 편도체에 이 방어막을 녹이는 약을 주사하고 관찰한 결과 아기 쥐와 마찬가지로 공포의 기억이 없어졌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이번 달 (2009년 9월) 세계적인 저널인 Science에 실렸습니다.


공포의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공포 자체를 느끼는 기전을 감안할 때, 기본적으로 쥐와 사람이 다를 것은 없습니다.  감내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장면을 보거나, 강간, 전쟁 등과 같은 과도한 스트레스는 우리 뇌의 편도체에 지우기 어려운 공포의 각인을 만들게 됩니다.  이런 공포의 각인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시연했다는 것이 스위스 연구팀이 보여준 실험의 결과입니다.
인간의 뇌세포 역시, 쥐와 마찬가지로 방어막(sheath)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부분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약제가 개발되고, 정확히 주사할 수 있다면 치료제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공포의 기억을 지우는 것 이외의 우리가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부작용이 있을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기까지에는 갈 길이 아직은 멀다 하겠습니다.  물론 심한 PTSD 환자의 경우, 설사 정상적인 기억의 일부가 사라진다고 하여도, 이런 치료를 원할 정도로 심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연구결과가 희망이 될 수 있겠지요?


참고자료
Science 4 September 2009: Vol. 325. no. 5945, pp. 1258 - 1261
DOI: 10.1126/science.117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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