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밤에 꿈을 꾸다 새벽 6시에 깨었다. 너무 무서운 악몽이었다.
 
... 혈관조영실에서 '배##(편히상 이하 배짱이)' 심장내과교수의 보조시술을 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응급 심혈관 조영술, 환자는 심근경색으로 추정된다. 긴박한 상황에서 내가 wire를 빨리 닦아 건내주지 못하자, 바로 날라 오는 큰 소리.... '야, 똑바로 못해!', 허걱, 이럴 상황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느니 더 빨리 손을 움직여 실수를 만회하는 편이 낫다. 다시 이어지는 시술, 모니터에 막힌 관상동맥이 보인다.




[사타구니의 동맥을 통하여 관상동맥까지 가느다란 카테터 등의 기구를 넣어 혈관을 넓히는 시술, 심혈관 조영술]


일단 가느다란 wire로 막힌 부위를 통과시키고 풍선으로 조심조심 넓힌다. 2atm, 3atm.... 6atm까지.... 근데 갑자기 혈관 옆으로 약간의 조영제가 새어 나간다. 허걱... 혈관이 찢어졌다. 빨리 막지 않으면 환자는 이 자리에서 그냥 죽는다. 목소리 크고, 주먹도 크기로 유명한 '배짱이'선생님도 긴장한다. 꼴깍(침 넘어가는 소리)......
 

'스텐트 가져와, 2.5cm 길이에 넓이는... '
 

이 인간(배짱이)이 성질은 드럽지만 아무리 급해도 떨지는 않는다. 꼭 실력 없는 인간(의사)들이 환자 상태 안좋으면 덩달아 날뛰다가 혼자 널뛰기를 하다가 환자도 날려버리기 마련이다.
 
후다닥... 터질 혈관을 스텐트로 막으며, 동시에 이 스텐트로 좁아진 혈관도 넓혔다. 막힌 부위 아래로도 피가 잘 내려간다.
 
'아, 살았다.'

여기서 산 대상은 환자만이 아니라, 일단 나를 비롯하여 오밤중에 응급실로 불려 나온 배짱이교수, 방사선과기사, 혈관조영실 간호사를 모두 포함한다.



[A: 좁아진 관상동맥, B: 시술로 넙힌 관상동맥, C: 헉, 다시 좁아지다 못해, 완전히 막힌 관상동맥. 이 환자는 살았을까? 인간이란 생물은 물리나 화학법칙보다 예측불가능한 변수가 훨씬 많다. 덕분에... 과거보다 훨씬 많은 '확실함(과학)'을 기반으로 훨씬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현대)의학은 스스로 불확실하다고 밝히며 발전하는 부분 덕에 욕을 먹는다. 이런 약점 아닌 약점을 비난하며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어'라며 지식의 겸손함을 가장한 지적사기꾼들이 먹고 사는 분야가 바로 의학이기도 하다. 한방, 음양오행, 창조설 등이 다른 모든 지식체계에서 퇴출되었지만, 의학분야에서는 미개한 나라일 수록 그 목숨을 연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환자를 중환자실로 올리고나서 배짱이선생님 앞에서 한번 더 구박을 받았다.

배 : 야, 임마. 손이 그게 뭐야. 연습 똑바로 안했지. 내가 당직실에서 자빠져서 그냥 TV 보지 말고, 손에다 기구들고 연습하라고 했쟎아. 너 솔직히 요즘 연습 안했지...
나 : 아. 예... 요즘 연습은 안했기는 했는데.... 형, 근데요. 제가 왜 심장내과에서 하는 혈관조영술을 해야 해요?
      저 내과 레지던트 마친지가 벌써 몇년전이고, 저는 소화기내과 분과전문의까지 마쳤쟎아요...
      내가 한밤 중에 이 짓하기 싫어서 심장내과 피해서, 소화기내과 갔는데... 181818...
배 : 이 짜식이~. 법이 바뀌었으니 어쩔 수 없어. 앞으로는 소화기내과의사도 정기적으로 심혈관조영술을 해야 해.
나 : (억울해서 눈에서 눈물이 나올 듯) 아,,, 차라리 내가 고3이 다시되어 학력고사를 보라면 볼께여.
      아니면, 의대1학년이 되어 해부학 시험을 다시 볼께여.
      그러니, 제발 다시 내과 레지던트를 하지는 않게 해줘여~~~~~~.
 

억울해서 눈물을 흘리다 깼다.
 
 
고생하는 모든 선생님들을 좋아한다. 특히 항상 긴장 속에 사는 심장내과선생님들을 좋아한다.

더구나 한국이란 사회주의 의료국가에서 차비도 안나오는 혈관조영시술비를 받으며, 사람을 살리고도 기구상이 가져가는 기구값 때문에 환자들에게 대신 욕을 먹고...... 죽을 사람을 살리면 당연한 것이고 죽을 사람이 죽었는데도 멱살을 잡고 보는 보호자들을 감수하면서 명절에도 새벽에도 총알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뛰어 나오는 심장(순환기)내과 선생님들을 사랑한다.

별일이 있어서 배짱이선생님이 꿈에 보인 것일까? 문자를 보내보았다. 다행이 무사하다고 하며, 추석날에도 해외학회에 발표를 하러 갔다고 한다.그래, 다행이다. 국내에 있으면 또 응급실로 향하는 총알택시(자가용)에 몸을 맡겨야할텐데... 그러고도 날아오는 보험공단의 과잉진료, 부당청구, 부장징수, 부당선택진료란 오명을 으려 소주잔을 목구멍을 넘겨야할텐데...

어제는 저 꿈 때문에 하루 종일 뒤숭숭했는데 오늘 진정하고 생각해보니, 저러고 집에 가는 길에 먹는 해장국에 소주 한잔이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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