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많은 분들께 신약 발표소식은 마지막 희망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약이 개발되었다고 뉴스가 나오면 그 이후 앞으로 안정성에 대한 몇 년간의 임상 실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약이 허가가 날 수도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결과를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만약 더 이상 사용할 약물이 없는 말기 암 환자가 신약을 사용하고 싶다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까?


미국 법정에서 이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더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안정성도 보장되지 않은 신약을 투약 할 수는 없다는 판결이였다. 배심원 8:2 의 결과였고 판사는 다음과 같이 판결문을 내렸다.


`cannot justify creating a constitutional right
to assume any level of risk, without regard to the scientific and
medical judgment expressed through the clinical testing
process,'

'임상적 실험 결과를 통한 과학적, 의학적 판단 없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투약하는 것은 정당화 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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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판은 미국 FDA(식약청)를 상대로한 신약 계발과 연관있는 이익 단체들이 소송을 걸어 생겼으며 이들은 제품을 계발후 FDA의 승인 받아서 환자에게 판매할 때까지 길게는 7년이란 시간이 걸린다며 4년 전부터 이 소송을 준비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의 대표는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판결' 이라고 논평했고 대법원까지 갈 것을 이야기했다. FDA 대변인은 판결에 대해 'FDA의 역할에 대한 지지'라고 했다.


FDA의 입장은 의약품 소비자의 약물 사용에 따른 안전성과 효용성이 확실할 때 까지 시장 판매는 금지되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이다.


미국에서 있었던 판결이라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해외에서는 상당히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우는 국내에서도 충분히 있는 일이다.


전공의 시절, 운 좋게 부연구자가 되어 여러가지 임상 시험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말은 부연구자지만, 어떤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환자들을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부작용시 즉각 연락을 받고 조취를 취하고 내원 했을 때 결과들을 취합하고 부작용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그 연구중 해외 여러 기관과 함께 항암제에 대한 임상실험도 있었는데, 더이상 효과적인 치료가 없는 환자에게는 당연히 기쁜 소식이고 안타깝게 지켜봐야하는 의사의 입장에서도 기쁘기 그지 없다. 하지만 모든 환자가 이런 임상 실험에 참여할 수는 없다.


말기 암이고 더 이상 치료할 약물도 없다는데 왜 신약 계발하는 실험에도 참여를 하지 못하게 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치료를 하지 않았을 때 보다 오히려 수명이 단축될 위험이 있는 환자들은 제외시킨다. 여러가지 임상적 파라미터를 가지고 세운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에는 본인이 원한다고, 아무리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하더라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미국에서의 판결은 이 원칙에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과 원칙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인지는 확신이 안설 때도 있다. 나와 동갑인 환자 A씨가 말기 암으로 더 이상 기존의 치료에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았는데 결혼해서 아이도 하나 있어 살고자 하는 마음이 무척 애절했다. 나와 같은 젊은 나이에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마음이 아주 아팠다.


본인은 모험을 하고 싶어했다. 어짜피 죽을 것이라면 살 수도 있는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것을 걸고 싶어했다. 내가 있던 병원의 임상 연구 소식을 듣고 찾아와 나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한 것이다. 그도 자신이 이 연구의 대상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사연을 듣고 여러 방면으로 알아 봤지만 투약할 수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임상 연구에는 다중 장치가 되어있어 연구자와 부연구자를 따로 모니터링하는 인력이 있고 병원의 약국에서 약을 따로 승인하에 출고하며, 작은 사고나 부작용에도 즉각적인 연락을 취하게 감시 체계가 철저하다. 특히 FDA 승인을 앞둔 국제적인 임상 연구의 경우는 해외에서도 실사 조사를 나오니 그 엄격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비공식적으로 내가 있던 센터를 모니터링하는 분과 나의 실수 (대상이 되지 않는데 참여를 승락)로 만들고 환자를 넣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슬쩍 물어보니 펄쩍 뛰며 상상도 하지 말라고 한다. 당시에는 국내에 국제적인 임상 연구가 많지 않았던 때였고, 해외에서 국내 의료 기관의 임상 연구 능력에 대해 다분히 지켜보겠다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그런 연구자의 고의적 위반 사실이 발견되면 모든 연구자에게 연락이 가고 그 센터와 그 연구자에게는 더 이상 다른 연구에도 참여를 제한 하는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단다.


더 나아가서는 국내 연구 기관에 대한 신뢰도의 하락으로 이어져 이제 막 국제적인 연구가 국내에서도 활발해지는데 찬물을 껸지는 격이란 이야기다. 해외에서 나온 감사를 당해보니 그들의 꼼꼼함은 나의 나름대로 꼼꼼함의 100배는 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 과장해서 나를 겁준 것은 아니다.


당연히 임상실험 중인 약이기에 돈 주고도 구입을 할 수 없었다. 아쉽게도 그 젊은 환자는 투약하지 못했고 이후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사실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약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있기고 그들의 원칙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환자가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투약을 원할 때, 물론 그 위험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투약을 선택할 권리가 정말 없는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안전성과 효과가 인정되지 않은 약을 시장에 풀어 놓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FDA 주장도 이해간다. 하지만 더 이상 선택할 치료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막막한 이야기인지 환자를 생각해보면 가슴이 갑갑해진다. 게다가 그렇게 병원을 떠나간 환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효과를 알 수 없는 사기꾼들이 파는 정체를 알수 없는 신비의 묘약 이나 종교 단체에 수백 수천의 돈을 쓴다는 것을 알기에 더 마음이 아프다.


* 임상 실험 종류와 방법에 따라 기술한 내용과는 상이할 수 있습니다.

** 이해가 쉽도록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오히려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니 혹 임상연구를 하시는 분들이나 다른 선생님들은 이해가 더 어려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강 봐주세요. 푸념섞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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