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전에 의사의 소견서가 이토록 막강한 힘을 가진 물건인줄 몰랐다. 얼마전 단순 고열로 응급실에 왔다가 의증으로 타미플루를
처방 받아간 중학생이 한명 있었는데, 학생의 어머니가 한 일주정도 안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소견서를 요구한적이
있었다. 교통사고-보험 문제와 같은 민감한 문제도 아니었고 실제로도 일주정도 경과관찰 및 인정이 필요하다 생각되었기에 별
고민없이 써주었는데, 이게 급우들 사이에서 대박을 터뜨린 모양이었다.

 그 학생의 같은 학교 급우로 보이는 한
친구가 오늘 응급실에 고열을 주소로 찾아와선 치료를 받은 후, 비슷한 내용의 소견서를 요구했다. 어디에 쓸꺼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도 의사 선생님 소견서 한장 받아서 일주정도 등교안하고 푹 쉬고 싶다고 말했다.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대충 일련의 그림이 떠올랐다. 당연히 교사는 요즘같이 어수선한 시절엔 의사인 나의 소견서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할 것이
분명했고, 그 소견서의 방침에 따라 한 학생의 생활 패턴 및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간에 의례적으로 써오던 소견서였기에 별 생각없이 환자나 보호자의 요구대로 다 작성해줬던 것이었다.
 대충
말을 들어보니 고열로 새벽에 그 병원을 가면 응급실에서 소견서를 써주고, 그 종이 한장이면 등교하지 않고도 집에서 게임을
신나게 할 수 있다는 소문이 친구들 사이에 퍼진 모양이었다. 의사 소견서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그리고 마음 속 깊이 1그람
정도는 내가 일찍이 이런 꼼수를 알았더라면 좀 더 자유롭게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을거란 생각도 불현듯 들었다. 여하튼 오늘부터
단순 증상에 대한 소견서 작성이라도 내 면허번호가 적힌 물건이니만큼 여러가지 정황을 고려하여 신경써서 써줘야겠다.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