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환자가 사망했다.


50대 초반의, 순한 성품을 가진 아내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분이다.

나와 만난지는 3년쯤 되었나..다계통위축증을 앓고있었기에 남은 여명이 오래지 않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항상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사시던 분이었다.


작년에 예상치 못하게 잠시 증상이 호전되었을 때 엄청 기뻐하면서 오랫만에 운전도 했다고 자랑하시던 모습이나, 혼자서는 걸을 수 없게 된 상태가 되었을 때에도 그래도 병원와서 선생님들 보면 기운이 나고 좋아지는 것 같다고 밝게 말씀하시던 모습들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남은 여명이 얼마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수년은 더 사실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심한 자율신경부전에 의한 무호흡때문에 뇌손상을 심하게 입었고...이미 병원에 도착했을 당시에 너무나 뇌손상이 심해서 사실 며칠도 버티지 못할거라 생각했는데, 한달이 넘게 중환자실에 있다가 오늘 돌아가셨다.



(image source : http://www.scielo.br/)

한달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몇번의 생명의 고비가 있었고, 보호자들이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들도 수차례 있었고...

의사로서 들어줄 수 없는 억지스런 부탁을 하시기도 하고...물론 그 마음들이야 이해할 수 있었지만...

결국 수일전부터 혈압이 점차 떨어지고 맥이 안 잡히는 상황에서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동의하에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고 평안하게 임종을 맞으셨다.


사실 한달전 응급실로 내원했을 당시부터 아저씨의 뇌 상태는 심각한 손상상태였고, 수일 후에는 뇌의 기능회복을 전혀 기대할 수는 없는 상태가 되었다. 승압제와 기계호흡과 같은 인위적인 생명유지요법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한달전에 이미 돌아가셨을 테지...


레지던트 1년차땐, 이런 것을 참을 수가 없었던 적이 있었다. 처음 신경과 레지던트 되고 입국식도 하기 전이었을거다. 담당 환자중에 다발성 뇌경색(multiple infarction)이 연속적으로 와서 중환자실에 있던 할머니가 있었다. 뇌경색(brain infarction)만이 아니고, 당뇨에 고혈압에,,심근경색도 여러번 있었던 상태였고,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신부전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뇌,심장,신장 등 중요한 장기는 다 손상된 상태였는데,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어서 회진시간과 다른 환자를 보는 시간만 빼고는 거의 하루종일 중환자실의 할머니 병상옆에서 떠나질 않았었다.


계속 생체징후(vital sign) 체크하고, 수액의 균형(fluid input/output)을 계속 계산하면서 시간마다 맞춰주고 잠도 침대옆에서 쪼그려 자고...그렇게 일주일인가 보냈지만, 결국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4월 식목일전날의 입국식 일주일 전이었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엔 정말 침착했었는데, 막상 일주일이 지나고 있던 입국식날에 술에 취해서였는지..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때처럼 하진 않는다. 나태해져서가 아니고, 뭐랄까..

죽음앞에서 맞서야 할때와 그냥 받아들여야 할때를 조금이나마 알게되었다고 할까...


죽음에 맞설 수 없는 상황일땐 교과서적인 지식들은 도움이 안 될 때가 많다. 보호자들에게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투로 상황을 알리고 설명해야 할지, 환자가 죽음에 이르는 단계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는 교과서에는 없다.


무조건 살려달라고 하는 보호자나, 아니면 반대로 무조건 생명유지요법을 거부하는 보호자들에게 가능한 중립적인 상태에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단지 생명유지만 하는 상황에서 경제적 어려움때문에 환자를 포기하는 보호자들에게 어떤 경제적 구제가 가능한지. 환자가 사망하는 시점에서 어떻게 알려야 할지. 죽음에 대한 경험이 없기에 당황하는 보호자들에게 어떤 것을 알려주어야 하는지.


이런건 의학교과서에는 없는 것들이고, 정답 역시 없다.


그래서, 의사는 의학만 가지고서는 나아갈 수 없는가보다. 사람 대 사람의 일이기에, 연령,경제적,사회적 배경에 관계없이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그래서 참 어려운 길이고 배워야 할 것도 너무나 많다.


오늘은, 아주머니께 당신이 하실 수 있는 건 모두 다 충분히 하셨다는 말씀을 여러번 드렸다.

혹시나 마음여린 아주머니가 마지막에 심폐소생술을 안 하였다는 후회에 마음아파하지 않길 바라면서..


이것으로 충분했을까? 의사로서 내가 해줘야 했던 다른 말은 없었을까?


그리고... 그리고, 돌아가신 환자분에게 내가 그동안 제대로 진료를 했던건지, 그때 이러이러한 것을 조심하라고 더 말해주었다면, 그때 다른 어떤 조치를 했었다면... 난치병이라고 나도 모르게 나자신이 환자를 포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환자가 사망한 날 밤은 너무나 많은 생각들에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동안 내 눈앞에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기억들도 슬라이드처럼 하나하나 생각나고 해서 가슴도 먹먹하다...


하지만, 우울한 기분은 오늘까지만.

내일은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하니까.

또  누군가에게 병원에 오는 것만으로도 기운나는 일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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