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병원을 나갔던 동료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한달만 버티면 수료할 수 있었던 인턴 과정을 중도에 포기할 만큼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문제였는지 알수는 없지만, 여튼 그 누나는 지난달을 마지막으로 병원을 떠났다. 원내에는 누나가 사직한 여러가지 가설들만 떠돌뿐 그 진정한 이유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그렇게 한달여 시간동안 여기저기서 수근댔던 누나의 사직 이야기는 차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사직을 결정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가 아는 가장 큰 이유는 중환자실 간호사와의 트러블이었다. 애초에 인턴과 경력많은 간호사들은 물과 기름처럼 한 곳에 서끼기 힘든 존재라 대립각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3-5월 초턴의 경우엔 주로 잡혀먹히는 일이 다반사며, 10월즈음 지나 말턴이 되어야 대놓고 한판(?) 붙어볼 수 있는 눈치와 능력이 생기게 된다. 지난 10개월여 시간동안 간호사들과는 원만하게 지냈던 나 역시도 'job'을 두고 한두번은 언성을 높였던 적이 있으니, 아마 전국 어느병원 인턴이나 한번쯤은 간호사들과 파이팅을 경험해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간호사 중 특히 중환자실 그리고 응급실 간호사들과 트러블이 많이 생기는데, 지식은 충만하더라도 현장 경험이 부족한 인턴(특히 초턴)들은 아무 말 못하고 꼼짝없이 당하는 경우가 많다. 의학 지식으로 중무장해서 어떻게든 기를 눌러야 한다 가르치는 선배들도  있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닥 효과가 있는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대부분의 트러블은 의사쪽 문제에 기인하는 경향이 크다. 허나 하루종일 힘든 일과에 시달리고 피로가 쌓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일을(단순한 일) 미루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고, 대부분 이러한 문제 때문에 간호사-인턴 간의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환자가 당면한 문제를 되도록 빠르게 해결해 주는 것이 진정으로 환자를 위하는 일이라면, 위와같은 간호사의 콜은 당연한 것이며 더불어 일을 미뤘던 의사의 행위는 분명 문제가 있다. 허나 때론 유도리라는 것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심플 드레싱을 해달라는 콜이나 혹은 소변줄-위장관 튜브 교체 등의 일은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다음날 해도 충분하다. 헌데 곤히 잠든 새벽 이런 일로 단잠을 깨우는 콜을 한다면 인턴 할아버지가 와도 짜증을 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간호사들의 잘못도 있다. 개인적으론 오더에 관한 문제로 충돌이 한두번 있었다. 대개 해당 병동에서 오랜 시간 일했던 간호사들은 그동안 해왔던 전형적인 오더가 아니면 인정하려들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음, 뭐랄까 텃새 비슷한 것이라고 표현하면 옳을런지 모르겠다. 한번은 응급실에서 저나트륨혈증 환자의 교정 오더에 관한 문제로 마찰이 있었는데, N/S 500cc에 40meq sodium을 섞으라는 오더를 무시하고 그동안은 이렇게 해왔다며 N/S 1리터를 떡하니 달아놓았던 적이 있었다.

설령 오더가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 권한은 의사 고유의 것이며 그 책임도 의사가 지게 되는데 왜 멋대로 오더를 바꾸냐며 화를 냈었다. 또 한번은 퇴원 약을 항생제 치료의 연속성이 필요하다 판단하여 이틀치를 내어놓았더니 급여로 할 경우 삭감된다며 멋대로 하루치로 바꿔놓은 적도 있었다. 물론 환자 케어에 있어서 경험도 중요하겠지만 치료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다양한 치료법이 응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상의도 없이 오더권을 무시하는 일은 당연히 몰상식한 행위다. 나는 이러한 문제로 두어번 간호사들과 트러블이 있었고, 불같이 화를 낸 이후로는 다행히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았었다.

 누나의 경우엔 신경외과 주치의가 오프인 상태에서 primary call을 받아야 했었다. 그날 새벽녁 중환자실 환자의 의식이 갑자기 더 저하된다는 콜을 받았지만 환자의 상태를 곧바로 살피러 가지 않았고, 그런 태도에 수화기 너머로 간호사들이 욕하는 소리에 욱해서 사직서까지 쓰고 병원을 관뒀다. 물론 이런 경우 비록 아무 것도 모르는 인턴이라 할지라도 환자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러 갔어야만 했고, 직접 확인하지 않은 누나의 태도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다. 허나 그런 행동을 두고 수화기 너머로 뒷담화를 했던 간호사들에게도 잘못이 없다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뒤 회식자리에서 그 간호사들은 누나를 두고 부장님 앞에서 의사 자격이 없다는 소리를 운운했다고 한다. 이는 그 어떤 것으로도 변명될 수 없는 명백한 의사 무시 행위였다. 

 여튼 3주가 지난 지금, 한창 시끄러웠던 그 일은 모두의 기억 속으로 묻혀져 갔고 비록 인턴이 한명 떠나갔지만 병원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 굴러가고 있다. 그리고 간호사와 말턴 간의 신경전은(이 시점의 말턴은 인턴 성적 산출이 끝난 후라 콜을 잘 받지 않는다.)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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