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산타할아버지의 배는 연말 술자리에 시달린 복부지방의 상징으로 여러 성인병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루돌프 사슴코의
붉은 빛은 기생충 감염으로 인한 것이야." 라는 이야기로 어린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산산조각으로 박살내 놓는 것은 착한
어른으로서의 덕목에서는 한참 벗어난 일이지만, 그래도 기덕후에게 루돌프 사슴코는 기생충 때문에 빨간것이 아닐까 상상해보는 것은
자못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NORAD (http://www.noradsanta.org/) 에서 산타클로스와 루돌프를 찾아내 저격해 유해를 건져오기 전까지는 진실을 알 수 없겠지만, 루돌프의 증상과 일반적인 순록들의 기생충 감염례를 통해 한번 루돌프의 힘겨운 생활을 추적해보도록 하자.

순록은 북위 46-84도 사이의 넓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초식동물이다. 저 멀리 북쪽으로는 살을 에는 추위가 몰아치고 있기 때문에
과연 기생충 감염이 일어날 수나 있을까 의문이 생기기는 하지만, 순록은 굉장히 다양한 기생충에 감염되어 살아간다.
protozoa에 속하는 기생충부터 촌충, 선충, Pentastomida, 곤충 등등 구색은 다 갖추고 있으니 추운 날씨도
기생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추운 기후에 사는 기생충들의 생존력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순록에 기생하는
선충인 Elaphostrongylus rangifer 유충의 경우에는 영하 80도에서도 1년 이상 생존했고, 오히려 온도가 높아질수록 생존률이 낮아졌다.

이처럼 능력 좋은 장내 기생충들과 체외 기생충, 구더기증에 시달리는 것은 순록에게 흔하디 흔한 일이기 때문에 순록의 행동과
사회구조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무리 형성이다. 추운 날씨에 순록은 작은 무리로 먹이를 찾아다닌다.
그에 반해 흡혈곤충이나 구더기증을 일으키는 파리들의 활동이 왕성해지는 따뜻한 계절에는 2500여마리 이상의 거대한 무리를
형성하기도 한다. 무리를 지어 있는 것이 개개의 순록, 특히 무리의 중심에 있는 순록들이 흡혈곤충에 공격당할 확률을 낮춰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거대한 무리를 형성하기 힘들 때는 일부러 그늘진 곳에 남아있는 눈으로 들어가 곤충들의 공격을 줄이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단순히 무리 규모에서의 행동 변화 뿐만 아니라 개체군 전체가 이동을 하기도 한다. 알래스카의 순록들은 기생충들의
공격이 거세지는 철에는 비교적 기생충의 공세가 약한 바닷가로 이동해 갔다가, 내륙에서도 기생충이 공세가 약해지면 점진적으로
내륙으로 돌아온다. 이 차이는 흡혈 곤충이나 구더기증의 피해가 심각하지 않은 지역과 비교해 보면 더 잘 드러난다.
스발바르(Svalbard)제도는 연평균기온이 워낙 낮아 흡혈 곤충이나 구더기증에 순록들이 거의 피해를 입지 않는다. 때문에 이
지역에 사는 순록들은 20여마리 이상이 무리짓는 경우도 없고, 무리의 이동도 풀이 많은 곳을 찾아 산 위에서 아래로 이동하는
정도에 그친다.




-산타와 기생충은 나를 착취했고, 그래서 나는 바람이 되었다.

어쨋든 루돌프의 코 이야기로 돌아오자. 노르웨이에 사는 순록들을 보면 굉장히 다양한 기생충들에 동시에 감염되어 있다. 기관지만 하더라도 비강에 pentastomid와 구더기들이 넘실거리고 있으며 Elaphostrongylus
같은 선충들이 폐 속을 주유하고 있다. 최소 5종 이상의 기생충들이 한번에 코와 기관지를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해대는데 코가 빨갛게
되는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기생충에 시달리는 것으로 모자라 산타클로스에게까지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으니, 연
근무시간이 24시간 밖에 되지 않아 4대 고용보험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루돌프는 자선단체로 등록해 세금도 내지 않으면서 법의
빈틈을 노려 동물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산타클로즈라는 더러운 거대자본의 피해자가 아닌가 말이다.

Reference:
1. Halvorsen O. Epidemiology of reindeer parasites. Parasitol Today. 1986 Dec;2(12):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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