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21세기는 나에게 실망으로 시작한 세기였다. 

어릴 때 공상과학책을 보면서 21세기에는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다니고, 달에 수학여행을 가고, 손바닥만한 컴퓨터로 모든 것을 다하게 되며, 잘하면 집안일 하는 로보트도 생길 거라고 상상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21세기는 20세기와 별로 다르지않게, 여전히 아날로그 TV로 세계 각국의 일출이나 보면서 시작했고 정말 실망 그 자체였다. 

그런데 몇년이 지나고...머리에 안테나를 달고 길거리에서 TV를 보는 광고가 등장했으니..
내가 기대했던 21세기에 비교적 부합하는 광경이었다. 내가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핸드폰을 가지고 싶어 고가의 핸폰을 질렀던 것은 단순히 TV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21세기를 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처음에 위성 DMB를 보다가  한 1년전에 공중파 DMB로 갈아타고 이번 달에 들어서는 공중파 DMB도 전국화되어 이제 제주도에서도 DMB를 보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읽을 거리가 딱히 없을 때 DMB는 적당한 유희거리이다.

그리고 가끔은 집에서 TV가 없는 침실에서 시체놀이하다가 TV가 보고 싶어지면 DMB를 켜기도 한다. 아침 출근시간에 뉴스를 보거나, 영어회화 프로를 잠깐씩 보는 것도 DMB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또한 배철수씨의 구수한 목소리를 핸드폰만 있으면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기도 하다. 나는 이래저래 DMB를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DMB가 핸드폰 외에도 많은 기기에 적용이 되고 있다. 노트북, PDA 등은 물론이고 차량용 네비게이션에도 말이다.
 





차 안에서 안방처럼 TV를 볼 수 있다니....이 얼마나 21세기적 발상인가 말이다. 그리고 단순히 목소리만 들리는 라디오가 아니라 총천연색의 영상이 차안에서 보이는 것은 참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 생각할뻔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건 정말 팔면 안되는 물건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번은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이야기하니 기사아저씨가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딱 입력하시는 것이다.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나서 보니 네비게이션에서 DMB가 나오고 있었다. 뭐...나도 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겠다 싶어서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이 물건이 가공할만큼 위협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차례의 급정거와 아슬아슬한 커브길 회전과 끼어들기....기사아저씨는 소리뿐 아니라 영상도 나오는 DMB에 신경을 쓰고 계신 것이 분명했고 운전 속도는 현저히 떨어졌으며 사고 직전의 순간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몇번 그러다 마시겠지..했는데 끝까지 그 상태였다. 중간에 지하철 역이라도 보이면 당장 내리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도로 한복판이라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정말 가슴을 조마조마 하다가 목적지에 채 이르기도 전에 차를 세워달라고 하여 내려버렸다.

이틀전, 오래간만에 서울에서 택시를 탔다. 막히는 시간에 도심에서 택시를 탔는데 처음에는 별 일이 없었다. 그런데 딱 그시간,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축구를 하는 그 시간이 되니 기사아저씨가 핸드폰을 딱 꺼내서 DMB를 켜시는 것이었다. 그 순간 차의 속도는 원래 속도의 반으로 확 떨어지는가 싶더니 아슬아슬한 운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역시 길 한복판이라 이러지도 저러지고 못하고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지역에서 DMB 신호가 잘 안잡히는지 아저씨가 포기하고 핸드폰을 챙겨 넣으셨다.

딱 2번의 경험이지만 차량용 네비게이션에 DMB를 가능하게 하는 것, 그리고 차 안에서 이를 보는 것에 대한 심각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예전에 운전 중에 핸드폰을 쓰는 것에 대해 규제를 한 적이 있었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그 위험성을 알고 운전 중 핸드폰 사용을 자제하거나 핸즈프리 이어폰을 이용하고 있다. 이 네비게이션 DMB도 운전 중 시청에 대한 규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이건 라디오와 달라서 운전자의 주의 집중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TV를 틀어놓은 채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차 안에서 TV를 틀어놓고 운전을 한다는 것은......눈 감고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부디 내가 만났던 2명의 택시기사님들이 특별한 예외였기를 바란다. 설마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혹시 주변에서 "네비게이션+DMB"사겠다는 친구 또는 가족이 있다면 쫓아가서 말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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