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우리 아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네가 태어나던 그날, 엄마는 비로소 엄마가 되고, 아빠는 비로소 아빠가 되었단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엄마 아빠가 되게 해 줘서 고마워!'

 분만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경험하는 정상적인 생리적 현상이며 발달과업의 과정이다. 그리고 우리는 의사라는 이름으로 그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산부인과 교과서에서만 보던 출산의 과정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그 위대함과 경외로움에 모두들 탄복한다. 산모의 비명이 커질수록 산부인과 교수님의 손길이 더욱 분주해지고, 태아의 머리, 어깨를 시작으로 팔 다리까지 빠져나오는 그 장관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두 주먹을 불끈쥐게 된다. 산모가 자신의 아이를 확인하며 눈물을 흘리는 순간, 우리들 눈가에도 어느새 눈물 방울이 주렁주렁 맺혀있다.

 정상분만을 보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정상분만 과정에서 꼬꼬마인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산모를 지켜보며 응원하는 것이 전부다. 또한 분만이 대개 으슥한 새벽시간에 이루어지는데다 nonfunction인 우리 꼬꼬마들을 호출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산부인과 근무를 하더라도 정상분만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출산율이 저하와 제왕절개 분만율의 증가까지 가세하여 정상분만을 보는 것은 정말로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버렸다.

 



의과대학 재학시절, 태동과 분만에 관하여 그림밖에 접할 수 없었던 나는, 추운 겨울날 새벽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도중 산부인과 펠로우 쌤에 의해서 운좋게도 정상분만을 반강제로(?) 견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보는 김에 확실히 머리에 새겨두자는 각오로 나는 분만실 입장 전에 산부인과 노트 '분만'편을 주욱 훑어보면서 나만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태아의 머리가 얼마정도 하강하면 복부를 지그시 눌러주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입으로 계속 중얼거리며 분만실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테이블 위에서 산통을 호소하고 있던 산모와 간호사, 그리고 산부인과 선생님이 분만을 준비하고 있었다.

 몇 십분간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그 과정을 지켜보며 트레이닝했던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커녕 숨막혀 죽을 뻔 했다. 제왕절개 분만과는 다르게 그 과정은 박진감 넘쳤고 드라마틱한 감동이 있었다. 산모의 진통은 머리채를 쥐고 흔들 정도로 심하다는 말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저만치 떨어져있는 탓에 그 진풍경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부인에게 먼발치에서라도 끊임없이 힘내라는 말을 전했고 산모의 진통이 심해질 수록 아이는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내 호흡은 산모의 호흡과 하나가 된지 오래였고 태아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내 손은 나도 모르게 옆에 서있던 순환 간호사 선생님의 왼손을 부여잡았다.

 '응애-응애'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고추달린 건장한 남자 아이가 태어났다. 아기의 첫 울음소리에 잠시 혼미했던 산모는 정신이 번뜩 들었는지 아기가 괜찮냐며 아이를 안고 있던 간호사에게 물었다. 그 산모는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아이가 제대로 숨은 쉬고 있는지, 손가락 발가락은 10개씩 붙어 있는지, 그리고 아들인지 딸인지 무척이나 궁금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정상 남아 분만하셨어요'라는 말을 산모에게 건넸다. 그렇게 길고 긴 분만은 끝이 났다.

 새하얀 눈발을 맞으며 구름다리를 건너 도서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혹시 아이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라도 있으면 어쩌지'하는 걱정과 함께 산모에게 너무 성급하게 정상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스러웠다. 혹시나 아이에게 문제가 생겨서 내게 소송이라도 걸면 학교에서 나를 유급시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다음날 다행이 아이는 정상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나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의사가 되고 분만 과정을 두차례 더 볼 수 있었지만 이전만큼의 거대한 감동의 쓰나미는 없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저런 고통 속에서 나와 내 동생을 낳았을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니 숙연해지는 마음만은 늘 똑같았다. 비록 어머니가 '사람의 분만을 보았으면 우리집 강아지 분만도 할 줄 알아야 하는거 아니냐며 너는 의사도 아니다'고 놀릴 때마다 그 숙연한 마음은 말끔히 사라지고 어머니에 대한 미움만 남았지만.
 
 우리는 몇일전 새해 새아침을 맞이했다. 첫 시작은 언제나 상큼하고 신선하다. 첫 입학, 첫 취직, 첫 출근, 그리고 내겐 첫 분만의 느낌이 그렇듯 말이다. 3년전 경험했던 첫 분만, 어머니의 소중함 그리고 생명에 대한 외경과 책임을 가슴 깊히 부여받았던 그 감동의 파노라마는 아마 오래도록 내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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