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방을 들어서면 코를 자극하는 알싸한 포타딘 냄새와 함께 따뜻함이 느껴진다. 물론 그 안에서 왠종일 버틸 생각을 하면 눈 앞이 깜깜해지기도 하지만 수술 중엔 스크럽을 들어가지 않는 한 쪼그리고 앉아서 편히 쉴 수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병동에 잔류하는 시간보다 편할 때도 있다. 특히 나는 보비 냄새와 수술복을 좋아한다. 사실 학창시절 흉부외과 CABG(관상동맥우회술) 수술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수술방에 있으면서 맏았던 보비 냄새가 좋아서 써젼이 하고 싶었고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수술방에 들어가는 과까지 전공하게 되었다. 더불어 수술복은 그 어떤 트레이닝 복보다 편하고 가끔 수술복을 입은 채로 숙소에 와서 잠들면 마치 힘든 수술을 끝내고 잠든 써젼마냥 행복한 기분이 들기 때문에 좋다. (실제로는 옵제베이션만 했건만;)

 하지만 써젼은 힘들고 성형외과나 정형외과가 아니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요즘은 모두들 수련하길 기피하는 추세다. 그래도 요즘은 다양한 수술기구의 발달로 힘쓸 일은 많이 줄었으니 앞으로 써젼을 해야 할 내게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다. 특히 지난달 일반외과 근무 당시 복강경이 개발은 내게는 GI 개복수술 사막의 한줄기 오아시스였다. (물론 복강경을 쓸일은 없지만;) 오늘은 그 복강경과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과거에는 수술하면 무조건 복부를 가르는 개복수술을 했지만 의학의 발달로 목숨을 걸고 수술을했던 시대를 지나, 암 같은 위중한 질환조차도 최대한 미용까지 고려하며 수술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그에 따라 요즘에는 카메라를 이용한 수술이(예를 들어 내시경, 복강경, 관절경 등) 많이 늘었고, 덕분에 수술시간뿐만 아니라 수술 필드에서 힘을 써야하는 일 또한 많이 줄었다. 사실 복강경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7년 복강경적 담낭절제술이 프랑스에서 처음 시술된 이래, 90년대 들어서 세계적으로 복강경외과수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복강경 카메라 조정로봇이 개발되었으며 1990년대 말부터는 복강경 카메라뿐 아니라 수술기구까지 조정되는 로봇들(제우스, 다빈치 등)이 개발되어 실제 수술에 사용되고 있다.

 최근 복강경이 술식으로 많이 사용되는 이유는 개복술보다 이득이 많기 때문이다. 복강경수술은 기존의 개복수술과 달리 개복하지 않고 수술하기 때문에 통증이 적고, 회복이 빠르며 입원기간이 짧아 그만큼 사회복귀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개복수술에 비해 복강경수술은 1cm정도 되는 3~5개의 작은 절개공을 통해 수술하기 때문에 주위 장기나 조직에 거의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수술 후 상처부위에 통증도 적으며 흉터도 거의 남지 않고 상처가 곪는 창상감염이 적은 등의 장점이 있다.

 6년간의 의대생활과 1년간의 병원생할을 통틀어 수술필드에서 딱한번 복강경 기구를 만져봤는데, 필드 밖에선 조작이 쉬운줄만 알았던 카메라 조작은 상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그날따라 외과 수술 스케쥴이 많아서 2년차 선생님과 단둘이 맹장염 복강경 수술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당시 그 선생님도 복강경 수술은 처음이었고, 과장님은 몇가지 방법을 알려주고는 종양 수술을 위해 옆방으로 가버리셨다. 복강경 수술에는 적어도 (카메라로 수술 시야를 확보할 사람과 수술을 집도할 사람) 둘은 필요했던지라 그 방에서 의사면허가 있던 두사람 중 하나였던 내가 카메라를 잡아야만 했다. 하지만 복강경 카메라를 잡아본 경험이 없던터라 제대로 시야를 비추지 못했고, 복강경은 첫 집도였던 그 선생님도 당황한 나머지 수술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다. 결국 담낭절제술이 일찍 끝났던 펠로우 쌤이 필드로 들어왔고, 다행스럽게도 수술을 큰 사고없이 마칠 수 있었다.

 복강경 수술은 인턴이 해야할 일이 많지 않아서 편하고, 드레싱 시간 또한 오래 걸리지 않으며 합병증 발생이 적기 때문에 환자가 빨리 퇴원할 수 있어서 좋다. 물론 비뇨기과의 TURP(경요도전립선절제술)나 정형외과의 관절경은 같은 카메라지만 복강경과 다르게 세척에 필요한 수액이 부족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교체해줘야 하기 때문에 키가 180이 되지 못하는 나는 그 수액을 걸때마다 매우 불편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오래전 더 고생했을 나의 수많은 선배님들을 생각하면 나는 정말 편한 시절에 인턴을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에 잠기며 마이크로 카메라 기술의 눈부신 발달에 감사를 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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