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방재청에서 시뮬레이션을 했다고 언론에 보도 되었습니다.


소방방재청은 지진재해 대응 시스템으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서울 남서쪽에서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전국적으로
5만451명이 사망하고 62만1천780명이 다치는 등 사상자가 67만2천231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18일 밝혔다. (중략)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한반도에서의 지진은 규모 6.0~6.5가 최대치로 예상되고 있다"며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119구조대 투입과 사상자 대응 조치, 가스·전력·상수도 복구 체계가 신속하게 작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뮬레이션 모델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이
변수 중 어느 하나의 값을 바꾸면 다른 결과가 나오고 변수를 추가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단순히 생각해도 지진이 주말에
발생하는 것과 주중에 발생하는 것, 낮시간, 특히 지하철에 많은 사람이 있는 출퇴근 시간과 밤시간에 발생하는 것...등등 언뜻
생각해도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변수들이 마구 떠오릅니다. 이런 것들을 어느 정도 잘 통제한 시뮬레이션인지가 우선
궁금하네요.

그리고 기사 말미에 "규모 7의 지진이 발생해도 119 구조대 투입,
사상자 대응 조치, 가스/전력/상수도 복구 체계가 신속히 작동할 것"이라고 했는데 규모 7의 지진이면 가스, 전력, 상수도가 다
망가지는 정도의 지진인데 신속히 복구체계가 작동해도 복구되는데 엄청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지진은 아니지만 지난 2007년의
태풍 나리에 의한 홍수로 정전이 된 건물들은 대부분 1주일 후에야 정상적인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
비상전력을 공급하긴 했지만요. 지진이 나면 설치해 놓은 각종 시설이 무너지고 파괴되는데 과연 이렇게 호언할 정도로 잘 복구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응급의학과 전문의로서 참관했던 119 구조대에서 시행한 훈련들을 돌이켜 볼 때, 119 구조대
투입은 잘 되겠지만 사상자 대응조치가 잘 될것이라는 얘기는 좀 지나친 듯 합니다. 당장에 지진은 아니지만 홍수의 경험 -
2007년에 제주에서 있었던 태풍 나리 - 에 비추어 보면 응급실에 왔던 사람 중에서 10% 미만이 구급차로 이송되었습니다.
(심지어 119는 불통이었구요). 무엇보다 도로가 잠기니 구급차가 위험지역에 접근을 하지 못합니다. 지진이 나면 이런 상황은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외국의 연구에서도 재난 발생시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되거나 구조대의 통제에 따르는 환자의 비율이
아무리 높아도 30%를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구조대의 투입은 소방방재청이라는 조직이 관할하는 것이니 잘 될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상자 대응은 구급대, 현장 진료소, 지역 거점 병원들 (특히 응급의료센터) 등이 모두 공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조대만 잘 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소방방재청의 사상자 대응은 "구출" 그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고 있으며 현장에서 부터 필요한 환자의 중증도 분류나 처치, 이송의 유기적인 체계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지진과 같은 심각한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세계적인 추세를 보면 재난의 빈도는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폭설이 내렸을 때만 해도 차가 멈추고, 지하철이 멈추고, 비행기가 멈추고, 정전이 되는 등의 "불편함 혹은 재난"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지진도 홍수도 쓰나미도 아닌 단 하루의 폭설만으로도 인간의 삶은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자연의 엄청남 힘이
인간의 삶을 뒤 흔들 때, 그 효과를 최대한 완화하고, 취약한 지점 - 지역이던, 인구 집단이던 - 을 보완하고 지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이 방안이 실현 가능한지 꾸준히 검토하고 훈련해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 이번 기사로 소방방재청이 이러한 재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다는 것은 알게되었습니다. 부디 이러한 노력이 정당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고, 끊임없는 질관리와 훈련을
통해 향상되어 가는 것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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