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이 사회적 문제가 된지 오래되었다.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응급실에서 몇차례 경험했던 성폭팽 피해 (rape) 환자들이 떠오른다. 그 중에는 미성년자도 있었고 젊은 20대 여자도 있었으며 유부녀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성폭팽 피해 (rape) 환자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늘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몇년째 전해오던 성폭생 메뉴얼 (rape manual job)에 응급실 당직 인턴이 해야할 일들에 대해서 자세히 열거되어 있었지만, 실제 환자를 마주하면 당황한 나머지 다른 환자들을 대하는 것처럼 매끄럽게 진료하기가 어려웠다. 성폭행(rape) 환자들과 관련해서는 여성부에서 제공하는 성폭행 치료키트에 초진 항목부터 증거보관용 봉투, 검사도구 등이 완벽히 갖추어져 있고, 그에 따라 나는 초진 차트를 작성하고 추가 검사를 위해 산부인과에 연락하기만 하면 진료를 마무리 할 수 있는 꽤나 단순한 시스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성폭력 응급 키트 구성물

 특히 응급실에 찾아오는 성폭행 피해 (rape) 환자들의 경우, 신체적인 손상뿐만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어려움이 필히 존재한다. 따라서 응급실 당직의는 피해 여성이 받았을 심리적 충격을 고려하면서도 꼼꼼한 문진을 통해 여성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고, 그것이 여성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정확하게 짚어내 기록해야 하지만 나는 그 임무를 제대로 완수해내지 못했던 적이 더 많았다.

 울먹이는 환자를 대면하고 있노라면 갑작스레 말이 헛나오고, 초진 차트에 명기된 의학적인 문제와 관련된 몇가지 항목들을 물을 때마다 오히려 내가 얼굴이 빨개져서 당황스러웠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 처음 마주하는 사람에게 위와 같은 곤란한 질문들을 던져야만 하는 것이 쑥스러웠다. 망설인 탓에 진료라도 길어지면 rape 환자의 심리적 상처와 수치심이 커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나를 옥죄여 왔고, 그렇다고 너무 빨리 끝내면 꼭 필요한 진료나 증거 채취를 빼먹는 경우가 흔했다. 이 경우 재차 환자에게 다가가 묻는 일은 쓰리 나이트 근무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한번은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서있었더니 오히려 환자로부터 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냐며 핀잔도 들었다.

 돌이켜보면 이는 어린 시절부터 '성'문제와 관련하여 폐쇄적이었던 내 과거와도 관련이 깊은 것 같다. 성 문제에 대해서는 가족들에게조차 상의하기를 꺼리는 우리 문화 환경과 이와 관련하여 교육자료 역시 외국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 나로 하여금 자연스레 성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하고, 폐쇄적인 입장을 고수하게끔 만든 것이다. 이는 여성 성폭력뿐만 아니라 소아 성폭력, 근친상간, 장애인 성폭력, 배우자 성폭력, 성범죄 관련약물 등의 성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성폭행 문제를 일차적으로 처리하는 경찰이나 응급실 당직의들이 메뉴얼대로 rape환자를 돌보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rape환자가 2차적 피해를 입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지난날 은지 사건만 떠올려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성폭력은 피해자의 동의없이 폭력적으로 이루어진 성행위에 의한 일종의 범죄이다. 그리고 성폭력의 피해자들은 쇼크와 다양한 감정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리고 나를 거쳐간 성폭력 피해 (rape) 환자 중 한명은 자신이 살아오는 동안에 이토록 통제력을 상실하고 극도의 인격적 침해를 받은 적은 없었다고 표현했다. 따라서 성폭력 발생 후 초기 수시간 내에 피해자의 인격적인 통제력을 회복시켜주기 위한 다양한 지원은 필수적이다.

 이미 성폭력 피해 (rape) 대응과 관련하여 제도적인 장치들은 충분히 마련되고 있다. 수많은 사법기관과 응급센터에서는 성폭력과 아동의 성학대 피해자를 위한 접근방법과 치료법에 대한 프로토콜과 성폭력 키트를 상시 구비하고 있으며, 이는 유용한 법의학적 증거물의 채취를 극대화하면서 피해자의 정신적, 신체적인 외상을 최소화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내 사례처럼 그 프로토콜과 키트를 사용하는 이들에 대해서 적절한 교육을 통한 인식 개선이 원만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필시 어린시절부터 자라면서 영향을 받게되는 사회 문화와 교육 문제의 탓이 크다.

 오늘도 인터넷 포텔 사이트 메인에는 한 명문사립대 선배가 후배 수십명을 성추행했다는 기사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고, 그 아래에는 수많은 덧글들이 달려있다. 이것만 주욱 읽어보더라도 대한민국의 성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비뚤어져 있으며, 형식에 치우친 성교육의 피폐가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물론 태초부터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로 나뉘어 자리잡고 있는 지구에서, 성과 관련된 문제가 아예 사라지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문제를 원천봉쇄 하지는 못할지언정 줄이려 노력할 필요는 있다. 그리고 이는 오직 올바른 사회문화 환경 조성과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 낼 수 있다. 성과 관련하여 치유받아야 할 영혼들은 대한민국에만 아직도 수만명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치유는 성폭행 피해자(실제로 수치심 탓에 임신이나 성병 등의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성폭행 피해자 중 반수 이하만이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뿐만 아니라 가해자, 그리고 성폭력 피해 (rape) 환자들을 매번 마주해야만 하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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