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이나 동의보감 논쟁에는 별로 끼어들고픈 마음이 없다. 이미 내가 아니더라도 더욱 훌륭한 분들이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생산적인 결론을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한의사'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분이 지난 몇달간 지속적으로 위와 같은 류의
덧글을 남기시고 있기에 차마 외면할 수 없어 몇자 적어볼까 한다. 일단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한의학이 인적, 물적 한계 때문에
검증이 어렵다는 주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눠보자.

 현재 의학은 치료효과가 있는 (즉 의학적 치료효과보다 좋은)
어떤 치료에 대해서도, 진단 방법에 대해서도 검토할 가치가 있고 합리적이라면 연구를 한다. 한의학의 진단, 치료방법이 유용하다는
증거만 있다면 연구를 하지 말라고 해도 연구를 하게 된다. 또 기초 연구는 의학이라고 의사가 모두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명과학자들이 더 많이 한다. 이러한 기초과학자들의 대부분이 왜 한의학의 진단, 치료 방법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하지 않을까?
인력과 물적 자본이 없어 한의학의 우월성이 입증 되지 않았다고 함은 핑계에 불과하다. 나아가서 인력과 자원을 핑계로 한의학이
검증 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동시에 한의학은 검증되지 않은 치료를 하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한의학계에서는 또
체질과 한의학의 주관성 때문에, 혹은 한의학은 과학과는 체계가 다르므로 검증을 못한다고 하거나 불가능하다고 한다. 과학에서는
이런 주장을 사이비, 돌팔이, 신비주의, 관념주의라고 한다. 이성과 논리와 과학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과학의 대상에 대해서
이성과 논리와 과학을 부정하면 맹신, 신앙, 종교이다.

 의학에서는 일반적으로 같은 병의 자연경과는 본질에
있어서는 모두 같다. 그러므로 치료 또한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다. 물론 특수한 예도 있다. 하지만 특수한 예 또한 과학적으로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체질, 주관성 문제로 달라 검증 할 수 없다는 말은 같은 질병의 자연 경과에 있어 본질보다 체질과
주관성이 더 큰 작용을 한다는 뜻이 된다. 이 말은 뒤집어 보면 한방에서는 질병을 분류 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의학의 입장에서는 한의학은 어떤 질병인지 알지도 못한 채 치료하는 셈이이다.

 한의학은 동의보감이 어떤 내용이
오류이고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명백히 과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투명인간을 만드는 법을 말한 부분은 오류인가 아닌가?
한의학 문헌의 한 부분이라고 부정하면 전체를 재검토 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검증, 과학적 검증을 의미한다. 한부분이라도
오류나 검증의 필요성을 인정하거나, 과학적 검증을 도입하면 대중이 매료 된 가장 큰 이유인 신비감, 한의학의 신비주의는 깨진다.

 한의학계는 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못하고 있다. 한의학이 과학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은 증명 불가능한 주장을 믿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과학이 아니다. 신앙과 독단이다. 신앙은 독단이어야 가능하지만 과학은 독단을 부정한다. 증명 불가능하다는 말은
과학적 방법론에서는 판단 할 수 없다는 뜻이며 과학은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한의학은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주장의 토대 위에, 즉 종교나 도그마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임을 스스로가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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