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에게 가끔 내가 아는 무언가를 조금씩 나눠주는 일은 행복하다. 나 역시 본과 2학년 시절 동아리 선배를 통해서 처음으로
paracentesis(복수천자) 하는 법을 배웠었다. 환자의 배에서 물을 빼내다니, 꼬꼬꼬마시절의 내게는 커다란 쇼크와도
같았다. 그런 광경은 머리털 나고 처음봤고, 과연 내가 선배처럼 훗날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선배 옆에서
수십분을 지켜보고 직접해 볼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그리고 그 당시 제대로 배운 덕분에 나는 올해 인턴 과정을 밟으면서
복수천자나 흉막천자는 큰 어려움 없이 해냈다. 헌데 올해 인턴 과정에 들어가는 한 친구가 전화로 내게 천자를 포함해서 몇가지
술기를 물어왔다. 환자의 배에 가득 차있는 물을 주사기로 빼내는 비교적 단순학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그
때를 추억하면서 이번에 인턴 과정에 들어오는 동갑내기 친구에게 친절히 그 방법을 일러주었다.

 의학이란 것이 참
오묘하고 신기하다.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인턴인 우리들이 하는 일들은 단순 반복작업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것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정맥 샘플링뿐만 아라 동맥채혈이 그랬으며, 소변줄 끼우는 일도 위장관 튜브를 삽입하는 일도 모두
처음에는 나를 가로막는 큰산처럼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이런 작업을 의대생들에게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시스템은
전무했다. 강의는 이론 수업에 그쳤으며, 동영상은 수십번을 봐도 이해되질 않았다. 그렇다고 바쁜 인턴이나 레지던트들이 학생
하나하나 붙잡고 가르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술기는 환자를 마주한 채로 실전을 통해서 익혀야만 했다. 당연히
실수나 실패 빈도가 잦을 수 밖에 없었고, 그럴 때마다 벌어지는 민망한 상황을 감내해야만 했다. 간혹 실습생의 실수를 이해해주는
환자를 만나기라도 하면 다행이겠지만, 대부분 병원을 찾는 환자나 보호자들은 액팅이 심하기 때문에 그 상황으로 인해서 자신감을
잃거나 눈물을 보이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

 물론 서로서로 인체실습 대상이 되어 연습해 볼 수 있는 위장관 튜브
삽입이나 채혈 등의 연습시간도 있었다. 서로의 팔이 시퍼렇게 멍들때까지 반복해서 동맥채혈을 연습했었고, MC몽처럼 위장관 튜브를
직접 삽입해보기도 했다. 술기에 대한 연습과 동시에 주사기에 찔리는 아픔을 느끼고 코로부터 들어가는 튜브의 역겨움을
견디어내는 환자의 고통을 직접 느껴보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되고 제자가 되는 과정을 통해서 술기를 익혀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미숙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배움의 장을 열다보니 술기를 정석대로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훗날 이 때문에
다시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이 반복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되로록 병원에서 후배들을 마주할 때마다 많은 것들을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동맥 채혈 부위를 어떤 방법으로 찾아서 어느 정도의 각도로 어떻게 뽑아내야 하는지, L-tube를 삽입할 때는 어떠한
자세로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열상 부위 마취와 봉합은 어떠한 순서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을 직접 보여주면서 설명해준다.

 나는 이것이 선배들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수련의 과정이라는 것이 페이퍼보다는 이와같이
대부분 선배들과 살을 부비대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직접 해보는 체험 속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물론 후배들을 옆에 끼고 직접
보여주면서 가르치는 일은 힘들다. 차라리 빨리 일을 마치고 쉬는 것이 내게는 훨씬 득이 된다. 하지만 미숙한 교육과정 탓에
또다시 야매로 배울 후배들과 그로 인해 환자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을 생각하니 차라리 내 몸이 조금 힘들더라도 제대로 배움을
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손에서 손으로' 선배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후배들에게 비록 단순한 술기라도 직접
보여주며 자세히 알려주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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