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주위 친구나 지인에게 아쉬운 부탁 할 일이 생긴다. 특히, 건강 문제가 생겼을 때, 핸드폰의 전화 목록을 보고 부탁하거나 상담할 의사가 있는 지 확인한다. 평소 연락을 자주 했으면 바로 통화 버튼 누르겠지만 동창회 명부에서 겨우 이름만 확인한 경우나 한 다리 건너 아는 경우 주저하게 된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모든 과를 섭렵하진 못하기에 자신이나 가족의 문제로 상의해야 할 경우 동일한 딜레마를 경험하기에 도움을 구하는 친구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하고 또 필요할 때 도움을 얻고 싶어한다. 의사도 사람인데 뭐가 다르겠나. 단지 직업상 몇 가지 특징이 있으니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연락하면 좋을 것이다.


방송에 나간 뒤에는 끊겼던 연락이 갑자기 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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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진료 시간에는 가급적 문자나 병원 전화로 연락 하는 게 좋다. 핸드폰으로 직접 연락은 바로 못 받는 경우가 있다. 앞에 환자가 눈 부릅뜨고 있는데 사적인 통화를 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전화 바로 안 받는 다고 너무 섭섭해 하지 말자. 진료 시간 중간의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시간이면 더 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둘째, 부탁 사항을 정리해서 말하면 바람직하다. 즉, 누가 문제인지, 어떤 걸 구체적으로 원하는 지, 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지 말이다. 부탁이 분명치 않으면 도와주기도 힘들다.

셋째, 의사라고 모든 의사를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서울의대 출신으로 서울대병원에서 트레이닝 받았어도 병원 나온 지 한참 되었으면  지금 있는 교수나 과장을 모를 수 있다. 또한, 한 학년에 100명 이상이면 동기라고 해도 친하지 않았으면 제 3자의 부탁으로 연락하기 어렵다.

넷째, 행정적 문제는 그 해당 병원 직원이 아니면 해결하기 어렵다. 어느 과나 과장에게 가야 하는지, 어느 병원을 추천하는지는 대답할 수 있어도, 다인실 선택 같은 병실 문제나, 입원이나 수술일정 앞당기는 부탁은 힘들다. 사실 내부 직원이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간호나 행정 서비스 담당 파트가 더 신속히 해결해 주는 경우를 보게 된다.

다섯째, ‘VIP증후군’이다. 아는 사람이나 부탁 받은 사람을 진료 시에 의사는 부담을 느낀다. 수술이나 치료시 냉정하고 과감한 판단이 필요할 때 망설이다 지체되어 예상외의 사고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치료나 검사 일정을 앞당기다 환자 상태가 나빠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CT검사를 빨리  부탁 했다가 검사 중 골절이 생겨 응급 입원하게 된 예상 못한 상황이 벌어져, 친구에게 미안했던 경험이 있다.

또한, 경제적 상황이나 비용을 고려한 나머지 기본적인 검사나 치료에서 헛점이 발견될 수 있다. 다른 병원에서 한 검사결과를 그대로 믿었다나 낭패를 겪기도 한다. 그래서, 병원을 옮겼을 때 검사를 다시 하는 것에 대해 의사들은 대부분 이해를 한다.

전공의나 전임의 선생님이 훨씬 잘하는 시술을 VIP환자라서 교수나 전문의가 직접 하는 경우 가끔 사고가 생긴다. 근육병 환자가 의대 선배라서 호흡기내과 과장님이 직접 기관내삽관 하려다 시간 지체되어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결국, 옆에 있던 전임의가 성공했다.

여섯째, 부탁을 많이 받는 대학병원 과장의 경우, 우선 순위를 판단하게 된다. 의학적으로 긴급 입원이나 수술이 필요하지 않다거나 친구 자신이나 직계 가족이 아닌, 친구의 직장 동료나 먼 친척의 경우 서둘러 해결하지 않게 된다. 냉정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그게 현실이고 그렇게 생각해야 덜 섭섭하다.

마지막으로, 부탁한 게 잘 해결되었으면 핸드폰 문자라도 날리기 바란다. 연락이 없으면 뭔가 안 좋은 사고나 섭섭한 상황이 생겼는지 불안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고 그 뒤에 연락없으면 섭섭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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