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 개봉했던 2012라는 영화 기억나세요? 작년 가을에 개봉된 블록버스터 재난영화입니다.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은 2004년도에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라는 재난영화로 큰 흥행을 이룬 적이 있었기에 2012은 개봉 전부터 기대가 컸습니다. 지구의 멸망위기 속에 또 다른 희망을 찾는다는 틀에 박힌 이야기라는 비평도 있었지만, 사실적인 컴퓨터 그래픽의 웅장함에 입이 딱 벌어지는 그런 작품입니다.

왜 이런 재난을 다룬 영화가 큰 관심을 받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실생활에서 겪기 힘든 재난 상황을 영화로 보면서 내가 안전함을 다시 확인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영화 딥임팩트나, 대한민국에는 아직 한 번도 없었던 쓰나미 닥친다는 영화 해운대의 대 흥행에는 인간의 그런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를 보면서는 실제론 경험할 수 없는 지옥과 같은 긴장감 속에 우리의 자율신경은 흥분과 이완을 반복하게 되고 그 속에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재난이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라고 단정 지을 순 없습니다. 얼마 전 아이티에서 발생한 진도 7.0 규모의 강진은 아이티 전체 인구의 1/3 수준의 약 300만명에게 피해를 입혔고 사망자가 15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말입니다. 세계 언론들은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대규모 재해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했고 뉴스 화면 속에 등장한 아이티 대통령은 ‘오늘 밤 어디서 잘 야할지 모르겠다’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재난으로 한 국가가 송두리째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이런 재난 상황에서 자유로운 국가나 기업, 개인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가 없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렇게 대규모 인명 피해가 있을 때 가장 우선시 되는 인명 구조 활동을 재난의학에서 다루고 있는데요, 이 재난의학에 대한 연구와 준비를 철저히 할수록 피해를 최소화하고 일상으로 빨리 복귀할 수 있습니다.

한번 가정해보겠습니다. 만약 동남아의 쓰나미나 아이티의 강진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난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이에 대한 대비를 얼마나 하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우리의 대비가 아이티 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안타깝지만 선진국 수준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2008년에 실시된 응급의료센터 기본 재난 물품 준비 현황 조사에 따르면 고립을 대비해 3일간의 비상 생필품을 구비하고 있는 센터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병원에 있는 비상용 발전기들은 병원 건물과 독립돼있지 않아 지진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발전기 가동이 어렵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되었습니다. 재난 상황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응급센터들이 재난 상황에 제 기능을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병원들도 할 말은 많습니다. 재난이 일어날 확률이 적다보니 다른 부분에 비해 먼저 돈을 지출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또 재난 상황이라는 국가적 비상사태를 대비해 정부가 지원해야하는 부분이 분명 있는데 제대로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민간에게만 맡긴다는 볼맨 목소리도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재난의학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 의료진들에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와 성수대교 붕괴를 통한 경험으로 국내 응급의료체계 및 재난의학의 학문적 발전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각 기관 및 의료진들의 협력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될 만큼 훈련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재난의학에 대한 인식 고양도 필요합니다. 재난 상황에서 최우선 되는 것은 대다수의 인명구조다 보니까 개인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없다는 것과 인명 피해 정도에 따라 중증도 분류를 통해 응급처치가 이뤄지는 재난의학의 기본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재난 현장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응급처치에 대한 교육도 받아야합니다. 아쉽게도 우리의 재난의료에 대한 상식은 ‘119 구조대에 연락한다. 다친 사람은 구급차를 태워 병원으로 보내면 된다’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에 많은 시민들이 구조에 자발적으로 나섰지만, 체계적으로 활동하기까지 많은 시일이 걸렸고 응급구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안타까운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본적인 심폐소생술에 대한 교육이나, 붕괴된 구조물에 오랫동안 깔려있던 사람들을 구조할 때 조심해야하는 압좌증후군, 기본적인 지혈법, 척추손상이 의심되는 환자들 이송법에 대해 평소 관심을 갖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닥친 재난 상황에서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1995년 고베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뒤 일본은 재난의료센터를 확보하고 비상사태에 행동 강령을 철저히 교육하고 있습니다. 911 테러를 통해 재난을 경험했던 미국도 정부 주도하에 비상관리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삼풍백화점 붕괴와 성수대교 붕괴, 대형 화재 등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재난에 대한 인식은 안이하다는 점은 모두가 반성해야할 부분입니다.

영화 2012에서는 지구 멸망이라는 재난을 대비 인류를 구원할 노아의 방주를 수년에 걸쳐 만듭니다. 우주선처럼 생긴 방주 속에 몸을 피신한 인류는 새롭게 만들어진 대륙에 안착해 또 다른 인류의 역사를 이어간다는 내용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영화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방주를 만들어 나가야합니다. 재난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 이것이 재난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할 방주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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