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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슈--'
다시 한 번 옷매무새를 정돈한 후 조용히 가슴 아래 청진기를 가져다 놓는다. 부끄럽게도 이 소리를 지난 6년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가운에 적힌 의사라는 이름에 부끄럽게도 나는 가슴통의 울림을 단 한순간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소리를 듣는 것이 무서워졌다. 남들은 듣지만 나는 듣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삶의 고비마다 울려 퍼지는 그 소리를 외면하고 돌아서 숨어버리는 것은 언제나 스스로였다. 듣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을 더 믿고 싶었고, 때로는 환자를, 때로는 청진기를 탓하며 차갑게 돌아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늦어졌다. 진단도 대응도 그리고 치료조차도.
언제부터인가 욕심이 생겼다. 남들도 다 듣는 그 소리를 멀쩡한 귀를 가진 나만 듣지 못한다는 것이 창피했다. 눈 내리는 어느 고요한 새벽, 청진기 하나 달랑 매고 중환자실로 향했다. 그리고 열여섯 명의 환자의 울림통에 조심스럽게 청진기를 올리고 그 내면의 소리가 내게 들려오는 그 순간을 잡아내려 했다.
가슴통을 통해서 전해오는 그것이 줄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꿈꾸며, 소리를 통해 환기들의 폐와 교감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멀리서 들려오는 심장의 박동을 지나 거친 호흡음을 걷어내고 폐와 폐막 그리고 그 안의 말썽꾸러기들이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내는 거친 선율을 잡아내고 싶었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게 만드는 능력 그리고 그 간절함, 그로부터 파생되는 깨달음의 향연을 기대하는 내 가슴은 콩딱콩딱 뛰었다.
그리고 나는 그 울림의 일부를 잡아냈다. 폐막과 물이 만들어 내는 찰랑거림, 염증으로 거칠어진 폐와 폐막이 부딪힐 때 나는 거친 소리. 의사면허를 손에 쥔지 3년 만에 그 울림을 깨달았다.
보이진 않지만 들리는 소리만으로 거리와 공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그 순간은 회색 벽으로 가로막혀 천편일률적인 검사결과만 존재하는 병원에서 찾을 수 없었던 또 다른 황홀함이었다. 그리고 그 환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은 오직 환자의 울림통과 나 뿐이었다.
양측 귀를 통해 들어오는 고요한 울림소리에 눈을 떴을 때 비로소 가슴 아래로 보이지 않아도 훤히 내려다보이는 폐의 절경이 나로 하여금 탄성을 지르게 했다. 그 울림과 실제 엑스레이 사진을 비교해보며 다시 한 번 전율했다. 드디어 들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른 새벽 도량석을 도는 스님의 목탁 소리에 송광사의 하루가 시작되고, 은은하게 조계산을 깨우며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각성해서 살아가는 것은 기쁨이다. 각성해서 살아가는 것은 행복이다.
이처럼 마음 문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신음하는 꽃잎들의 아우성을 들을 수 있고 물방울에 튀는 꽃잎들의 찰랑거림을 들을 수 있다. 깊은 잠에 빠져 새벽 종소리를 듣지 못하듯이, 기회를 놓치고 마음과 귀를 닫고 들으려 하지 않을 때, 굳게 닫힌 그 속 풍성한 온갖 향연과 상처받은 영혼의 울부짖음은 결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비단 환자의 폐음 뿐이겠는가. 자연의 벗 메아리, 동굴의 울림, 달리는 사이렌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변화, 짝을 부르는 코끼리의 초저주파 모두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이 소리의 본질을 이해하면 듣는 것이 명쾌해진다. 그렇게 청진의 즐거움을 알고 난 어느 겨울날 이후 비로소 가운 옆 주머니에 어울리는 청진기를 당당하게 들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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