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병동의 정신분열병 환자들을 대하는 최우선의 원칙은 ‘환자의 망상을 키우지 말라’ 이었다. 이는 환자의 치료와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로 대부분의 정신분열병 환자들이 갖고 있는 망상을 인정하면 그 망상은 더욱 커져 결국 환자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고, 그 때문에 환자의 망상은 더욱 악화되었던 적이 있었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던 어느 가을날, 정말 영화에서나 봄직한 머리에 꽂을 매단 한 중년의 여성이 영화에서나 봄직한 포즈로 복도 한 가운데 큰 거울 앞에서 단정히 머리를 빗고 있었다.
케이스 발표할 환자를 찾아 나서던 찰나 재미있겠구나 싶어 그 여성에게 다가간 나는 대화 30분 만에 그 여성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지만 왠지 모르게 당시엔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야 말았다. 어렸을 적 아역배우 출신인 그녀는 전도연 등과 함께 젊은 시절 적지 않은 드라마의 단역배우로 활약했다고 했다.
하지만 출판업을 하는 남편의 시댁으로 시집을 온 이후 연예계 활동을 중단했고, 이후 평범한 주부로 지내다 딸아이를 교통사고로 잃은 후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정신분열병이 생겨 이렇게 폐쇄병동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다른 환자들과 다르게 본인이 환자라는 병식이 있는데다 눈물까지 흘리며 진지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깜빡 속아버렸고 이후에도 며칠간 그녀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함께 슬퍼하기도 또 때로는 웃기도 하면서 숨겨두었던 나의 꿈에 대한 이야기까지 숨김없이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함께 연기했던 남자배우 중 지금은 대성한 송강호에 대한 비난을 할 때에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라뽀가 쌓이면서 어느 순간 외부 음식 반입이 금지된 그 공간에 그녀가 원하는 과자를 몰래 사다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그녀와 어느 정도 친해졌을 무렵, 그녀는 갑자기 나를 데리고 복도 중앙의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386세대로 제대로 모르는 아리조나 카우보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아차 당했구나’ 싶었다. 그날 실습을 마치고 친하게 지내던 정신과 치프 누나에게 그녀와 나의 이야기에 대해서 물었더니, 네가 환자의 망상을 키운 꼴이라며 대개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망상은 상식 밖이거나 해괴망측하지 않은 잘 짜인 각본과도 같은 것들이 많아서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한 환자들의 망상을 의료진이 객관적인 시점에서 바라보고 의료진이 필요하다 판단되면 수정, 보완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나의 행동같이 환자의 망상을 인정하고 더욱 빠져들고 키우게 만드는 행위는 그러한 치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나를 꾸짖었다. 이 사건 이후로 폐쇄병동 정신병 환자를 마주할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항상 그 잘 짜인 망상 속에 휘둘리지 않으려 ‘아브라카타브라’ 주문을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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