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임신하신 분께서 치과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분은 아이를 간절히 원하셨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다가, 현대 의학의 도움으로 결혼 몇년만에 어렵사리 임신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두 아이의 아빠로서 그 분이 얼마나 기쁘셨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넘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분은 임신 사실을 확인한 바로 그 다음날부터 치아가 아프셨다고 합니다. 참고 참고 또 참아보았지만 견디기는 너무 어려우셨답니다. ㅠㅜ




그래서 인근 대학병원까지 가보았지만, 대학병원에서도 역시 손을 쓰지 못하고 참아보자고 했답니다. 너무 아파서 정 못견디면 그 때가서 치료하자고 말입니다.

아마도 그 분이 대학병원까지 가셨을때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너무 아파서 가셨을겁니다. 그러나 그 대학병원의 치과의사도 이제 막 임신초기의 그 분을 치료하기란 매우 어려우셨을겁니다. 유산의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곤 여기저기 인터넷이나 블로그 등등 여기저기 수소문을 통해 저희 치과에까지 오셨습니다. 결혼한지 몇년만에 힘들게 어렵사리 임신한 임신초기의 산모와 태아... 산모가 지금 받고 있는 치통으로 인한 고통과 스트레스가 태아에 미칠 영향...

그리고 치과 치료할 때 받을수 있는 태아에 대한 영향... 그 어떤 영향이건 임신 초기엔 유산의 우려가 있습니다.

치과의사인 저는 머리가 너무 복잡해지지만, 결국 제 머릿속에는 곧바로 자기방어기전이 작동합니다. 의사로써 살다보면 제가 알고 있는 것이 온전히 제 것이 아니다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제 스스로 용기가 없을 때가 그렇습니다. 학문적인 사실과는 별개로 현실 앞에서는 만약에 있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나를 보호하는 방어진료를 하게 됩니다.

'어떻하든 치료 시기를 안전한 시기인 임신중기까지는 기다려 봐야해...'
'지금 치료할순 없잔아... 행여나 유산이나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해?'

아무리 치과에서 사용하는 방사선이나 리도카인 국소마취제가 임신 전기간에 걸쳐서 비교적 안전한 약제로 알려져 있지만, 이렇게 임신초기 산모에 사용하는 것은 치과의사로서도 꺼림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임신 초기의 그 환자분께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은 저역시 '기다려 보자' 였습니다.

이 말 저 말 주저리 주저리... 어떻게든 환자를 설득해서 조금 더 참아보게 하자... 그래서 이순간을 모면해 보자...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이 죽은 지식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결국 진료의뢰서를 산모가 관리받고 있는 산부인과에 써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리도카인 국소마취하에 신경치료(근관치료) 2회 실시 예정... "

제가 쓴 진료의뢰서에 산부인과 의사의 치과치료해도 된다는 답신을 받아오면 그 때 치료해 드리겠다고 말이죠....

쓸쓸한 발걸음으로 돌아가는 산모의 모습이 너무 측은합니다...ㅠㅜ

제가 대처한게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 한쪽이 답답함과 자책감마저 드는 것을 보면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이 결코 온전히 살아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임신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치과 치료는 미리 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1. 치과질환은 거의 대부분 충분히 예방과 예측이 가능한 질환입니다.

2. 임신, 군 입대, 해외 유학을 계획 중이라면 적어도 3-6개월 이전에는 미리미리 치과 검진과 함께 필요한 치료를 미리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아무리 건강을 자신한다 하더라도 6개월에 한번은 반드시 정기점진과 함께 스케일링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치과는 아프고 나서야, 치아를 뽑아야 될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오는 곳이 아니라 건강할 때 건강한 치아들을 관리하는 곳이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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