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정도 높이의 수풀이 우거지고, 적당히 더운데다 비가 자주와 수풀에 적당한 습도가 유지되는 스와질랜드의 산자락은 진드기(tick)이 서식하기에 아주 이상적인 환경이다. 그 때문인지 여기서 키우는 개들은 매일매일 잡아줘도 잡아줘도 끝없이 진드기들을 달고 나타난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점이 눈에 띄었다. 세 마리의 강아지들 중 유달리 한 녀석만 유달리 많은 진드기들을 달고 나타나는 것이었다. 각종 약물 투약도 똑같이 하고, 성별도 동일하고, 나이도 엇비슷하고 체격도 비슷한데 한 녀석만 유달리 많은 진드기를 달고 나타나는 것이 신기했다. 다른 두 마리의 개들은 진드기가 있어봐야 겨우 몇마리 붙어 있을 뿐인데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녀석은 밥도 똑같이 먹이는데 유독 좀 비실비실하다.

그러면 여기서 드는 한가지 의문. 진드기 감염이 체력 소모를 많이 시키기는 하지만 체력 소모 때문에 감염이 일어난 것일까, 아니면 진드기 감염이 심해져 체력 소모가 심해진걸까.



from : flickr

최근 기생충학에서도 이 질문은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기존의 감염학 모델은 크게 두가지로 집단을 나눈다. 감염자와 비감염자. 하지만 이게 과연 옳은 분류일까? 같은 집단에 속한 동일한 종의 개체가 동일한 조건에 놓여 있더라도 어떤 개체는 쉽게 기생충에 감염되고 어떤 개체는 기생충에 노출되더라도 쉽게 감염되지 않는다. 이런 차이는 기생충 감염 모델을 만드는데 중요한 요건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질문과 비슷한 이 문제는, 무엇이 먼저가 되었건 간에 기본적으로 감염에 취약한 개체는 더 쉽게 기생충에 감염되고, 이렇게 감염된 개체는 면역력이 약해지고 상태가 감염으로 인해 악화되기 때문에 추가적인 감염에도 다시 취약해진다. 바로 질병의 고리, vicious circle이다.

즉 같은 감염자라고해도 일부 감염자는 훨씬 심각한 감염을 앓고 있는 반면 다른 감염자들은 비교적 가벼운 감염증을 앓는 경우가 많다. 회충, 구충 같은 장내기생충을 예로 들어보면 파레토의 법칙이 적용되어 총 기생충 감염량의 80%가 20%의 감염자에게서 발견된다. 같은 '감염자' 카테고리에 묶여 있더라도 20%의 사람들은 장내에 수십 수백마리의 회충이 버글거리는 반면, 나머지 80%의 감염자들은 증상도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감염 - 두세마리 정도의 회충-만을 앓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큰 편차를 보이는 감염집단을 하나로 묶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문제는 바로 생존률 문제다. 감염 모델을 세울 때 가장 손쉽게 측정 가능한 사망률이나 수명을 모델링의 척도로 삼는 경우가 많다. 감염된 개체와 그렇지 않은 개체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질병의 고리를 고려해보면 애초에 건강상태가 좋지 않거나 유전적, 면역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개체는 질병이 있건 없건간에 다른 개체에 비해 수명이나 생존률이 낮을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런 개체들이 더 쉽게 감염이 일어나기 때문에 기존의 상태를 정확히 측정하지 않는 한 질병 때문에 수명이 짧아진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수명이 짧아진 것인지 정확히 판가름 하기 쉽지 않다. 이런 문제점은 질병의 영향력을 실제보다 과대 포장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또 실험실에서 키우는 동물들은 전반적으로 자연 상태에 비해 유전적 다양성이 낮기 때문에 더 크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실험실에서의 모델이 밖에서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이게 실제 현장에 어떤 중요성이 있는가. 기존의 질병 전파 모델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던 여러가지 질병 전파 현상들을 숙주의 질병 취약성과 결합하여 생각해보면 전혀 다른 관점이 펼쳐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 질병의 고리를 생각해보자면 몇몇 개체들은 유전적 취약성이나 경제, 사회적 취약성 때문에 특정 질병에 더 쉽게 감염될 수 있고, 감염 정도가 심각한 경우가 심심치않게 있다. 이런 개체들을 '초전파자(super-spreader)'라고 부른다.

질병의 전파는 고루 이루어진다기 보다는 이렇게 감염에 취약하고 감염량이 심각한 몇몇 취약 개체들에 의해 주로 이루어진다는 새로운 모델이 성립할 수 있다. 공공보건 정책을 수립하는데 있어서도 이런 취약 개체를 파악할 수 있다면 좀 더 집중적인 자본과 자원이 정말 필요한 곳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단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건 정책에서 뿐만 아니라 자연 보호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전 포스팅에도 소개한 바 있듯, 현재 양서류의 과반수 이상이 몇몇 기생충 질환과 환경 오염, 서식처 파괴의 복합적인 이유로 멸종 위험에 놓여있다.

단순한 질병 전파 모델이 아닌 숙주의 취약성과 기생충 감염의 상관관계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면, 이들을 보존하는 일도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질병을 이해하는데 있어 단순히 감염/비감염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숙주의 취약성, 기생충의 감염력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인 모델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Reference:
1. Beldomenico and Begon. Disease spread, susceptibility and infection intensity: vicious circles?. Trends in Ecology & Evolution (2009) pp. 1-7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