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질랜드 결혼풍습 관련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스와질랜드의 문화는 남성 위주로 짜여있고 가정에서 남성의 권위가 굉장히 중시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남성과 여성이 에이즈를 받아들이는 과정, 그리고 그 영향도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병원에서 출산시 의무적으로 HIV 감염 검사를 하는 이유인 탓도 있겠지만, 여성들의 HIV 검사율은 상당 히 높은 편이다. 뿐만 아니라 자의로 클리닉에서 정기적으로 HIV 검사를 받는 여성의 수도 상당히 많다. HIV 양성일 경우 국가에서 무료로 (혹은 거의 무료에 가까운 가격으로) HAART(항레트로바이러스요법)을 지원해주므로 정기적인 검사와 조기 확진, 그리고 적절한 시점에서의 약물 투여와 조절이 가능 하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성의 경우에는 상당히 다르다. 남성들의 경우에는 자신이 정말 아프 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검사를 받지 않는 경우도 많고, 검사를 권해도 끝까지 검사를 거부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분명 조기에 검사를 받아 HAART를 시작하면 삶의 질 면에서나 기대수명 모두 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텐데 그걸 거부하는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런 뿌리 깊은 거부감은 남성위주의 문화 속에 숨어있었다.

스와질랜드는 현재 세계에서 HIV 유병률이 가장 높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전문 의료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지역 클리닉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의료인력들도 아주 기본적인 간호훈련만 마친채로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클리닉 근무자들이 환자의 심리적인 부분에 대해 세심하게 신경 써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건 무리다. 때문에 이런 클리닉 근무자들에의해 동네의 누가누가 HIV 양성이라더라는 소문이 퍼지는건 순식간이다. 의사-환자간 비밀보장은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HIV 감염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이제는 감염이 크게 흠이 되지 않는 수준에 이른 스와질랜드라 하더라도 집안의 가장이며 가장 큰 권위를 지니고 있는 남성에게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아무리 HAART를 투여하여 에이즈의 발병을 늦춘다 하더라도 아직은 한계가 있다. 특히 저소득층의 사람들처럼 만성적인 영양부족과 각종 감염성 질환에 손쉽게 노출되서 생활하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그 예후가 더 좋지 않은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

때문에 HIV 감염은 사실상 집안에서 더 이상 남성이 가장 강력한 존재로 군림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선고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 또한 만약 집 안에 감염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HIV에 감염되어 있다면 이는 외도의 증거가 되어 이혼 사유가 되기도 한다. HIV에 대한 지식이 있는 아내들은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하기도 하고, 이런 경우 가족 구성원이 더 이상 불어나지 않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스와질랜드 관습이 요구하는 기본적인 가치관인 많은 여성과 결혼하여 많은 자손을 남기고 가정을 보호해야하는 존재가 무기력하고 가정을 위협하는 존재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남성의 권위를 보장해주는 모든것이 HIV 감염 확진으로 무너지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남성들의 선택은 과연 자신의 목숨일까 아니면 가장으로서의 권위일까. 문화와 관습이 가지는 힘은 무섭다. 심지어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것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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