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클리닉에는 열살짜리 남자아이가 한명 방문했다. 눈이 아프다길래 요즘 늘어난 수많은 결막염이나 안구건조증 환자들 중 하나인가 했다. 요즘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계절이 되어놔서 그런 환자들이 많이 온다. 그래서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오른쪽 눈 안이 이상하다. 동공 안쪽이 하얗게 변해 있다. 물어보니 몇년 전 밤에 길을 걸어 올라가다 길 옆에 튀어나온 나뭇가지에 오른쪽 눈을 심하게 찔려 완전히 시력을 상실했다고 한다. 정말 별일 아닌듯 무덤덤하게 이야기하는 투에 놀랐지만, 이내 무척 안타까워졌다.

여기 길들을 걸어보면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다칠만한 곳들이 산재해있다. 좁디 좁은 오솔길은 마땅히 담을 만들 돈이 없어 가시철조망으로 둘러져있고 다른 한 쪽은 덤불칼로 대충대충 잘라내어 날카롭게 서 있는 덤불들이 버티고 있다. 집을 보면 아이들이 뛰어 노는 마당 한켠에 무쇠솥 안에 옥수수죽 이 펄펄 끓고 있다. 장난감이 없는 아이들은 부서지고 녹슨 자동차 안에서 뛰어 놀고 부러진 칼날을 휘두르며 돌아다닌다. 소꿉장난 재료로는 녹슨 건전지 와 자동차 휠캡을 쓰고 있고, 신발을 선물해 주면 아까워서 신고다니지도 않는다. 이러니 베이고 찢어지고 데여 오는게 일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와 개선 없이는 아이들의 건강이 개선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밖에 없다.

까다로운 건강안전법(Health & Safety regulations)으로 유명한 영국에 살면서 참 쓸데없는 것 하나 하나 다 신경을 쓰고 사람 귀찮게 군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여기 나와서 보니 그런 법규들은 정말 사람들의 안전과 삶의 질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법률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환경의 변화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단순히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사회의 개개인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는 형태인가는 또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말리아의 예를 들어보자. 60년대, 여러 보건단체에서 소말리아에 화장실을 지어주는 운동을 많이 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 으슥한 자리에서 용변을 해결하곤 했고, 이렇게 사방이 대변으로 오염됨과 동시에 기생충으로 오염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쾌적하게 사용 할 수 있는 수세식 화장실을 광범위하게 보급하기 시작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시멘트 부대들이 투자된 끝에 마침내 소말리아도 현대적인 위생시설의 혜택 아래 놓이게 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몇년이 지난 다음 보건단체 사람들이 위생시설의 관리 상태를 확인하 기 위해 소말리아를 다시 찾았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준 선물에 감사해 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화장실이라는 것 말이오, 의자로는 좀 불편하긴해도 괜찮긴 한데 많이 지저분해지더이다.."

대체 어디서 잘못되었을까? 단체 사람들이 놀라서 화장실을 찾았을 때 화장실 변기들은 모조리 작은 자갈들로 막혀있었다. 단체사람이 화가 나서 “누가 이런 짓을 합니까? 화장실에 이런 자갈을 던져놓으니 막혀서 지저분해지는게 당연하지요.” 라고 말하자 마을 사람들은 외려 더 놀라 “아니, 자갈 없이 어떻게 용변을 보나?”라고 대답했다. 소말리아에서는 사람들이 용변을 볼 때 자갈 두개를 짤깍 거리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 매우 흔한 습관이다. 그리고 용변을 마치고는 볼 일이 없어진 자갈 은 볼 것도 없이 변기 속으로 같이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렇게 자갈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은 화장실이 막혀 버린 것.

소말리아의 예는 타문화의 이해 없이 진행된 여러 사업들이 어떻게 실패하는 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중 하나다. 물론 이런 변화들은 꼭 필요한 일이 며 그들 역시 필요로 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관습과 문화를 무시하고 일을 진행하면 결국 그 시스템은 금새 붕괴하기 마련이다. 변화를 위해서는 이해가 우선 되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Reference:
Desowitz. R. S. New Guinea tapeworms and Jewish grandmothers. W.W.Norton Press.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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