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D #1724. POD #779 는 입원 기간이 1724일이고 수술 후 779일이라는 뜻)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랜시간을 병원에서 보냈을지도 모르는 한 아저씨가 있다. 그리고 그 아저씨 곁에는 5년째 힘든 병수발을 모두 견디어내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한 아주머니가 있다.  그 아주머니는 아저씨의 병수발을 위해 집도 팔아야만 했고, 번듯한 직장도 관둬야만 했으며, 세상과 맺었던 수많은 인연들도 정리해야만 했다.  지난 5년간의 모든 사연을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병원비의 일정부분을 병원측에서 담당하고 있었고, 너무나도 때로는 지나치게 의료진들에게 당당한 아주머니의 태도를 봐서는  지난 5년간의 세월 중 분명히 무언가 문제가 있었음에는 틀림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1년차들이 그 아저씨의 주치의 자리를 거쳐갔다. 로테이션 근무자까지 포함하면 얼추 20여명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저씨의 경과기록지에 빽빽히 매워져있는 1년차들의 기록을 조용히 넘겨보면서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준비해본다. 하지만 워낙에 장기 환자다보니 그 아저씨의 오더는 바뀌는 일이 거의 없었고, 단지 1000일이 넘는 재원일수 때문에 데일리를 넘기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 외에는 케어에 어려움은 없었다.

 나 역시 신경외과 1년차로서 첫 출발과 함께 아저씨의 케어에 관한 권한을 넘겨받았고, 매일마다 39도가 넘는 고열의 세균덩어리 아저씨의 치료에 골머리를 알았다. 매일마다 감염내과 선생님들과 상의를 하고, 피검사 균배양 검사 결과를 뒤져보고 수개월을 지속해왔던 고열의 원인을 찾으려 아저씨 이 곳 저곳을 모두 뒤져보아도 혈액 균배양 검사에서 acinetobactor 가 동정된 것 이외에는 포커스를 찾을 수 없었다. meropen, colistin 등의 항생제 외에는 모두 감수성 결과 저항성을 보이는 이 녀석을 잡기 위해 수개월 시간을 항생제를 바꿔가며 열의 근원을 잡아보려 노력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가래에서 동정되는 균과 적합한 항생제 사용에도 열이 조절되지 않아서, 혹시나 다른 열의 원인이 병합되어있는 것은 아닐지 궁금해서 바이러스, 기생충, 약 등 원인이 될만한 모든 것들에 대한 검사도 시행했지만 결과는 모두 negative, 이제는 어지간한 해열제로는 조절도 안되는 그 고열을 잡아내기 위해 매일 저녁마다 수없는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급기야 몇일전 40도가 넘는 조절되지 않는 고열로 septic condition에 빠졌고, 더 이상 신경외과에서는 환자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 호흡기내과로 전과되었다.

 과장님의 특별지시로 전과 후에도 매일같이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있지만, 열이 약간 떨어진 것 외에는 아직까지 눈에 띌만한 호전은 보이지 않고 있다. 고열로 인해 경련을 일으키는 상태가 간헐적으로 반복되고 있었으며, 여전히 아저씨의 눈빛은 힘들어 보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매일같이 아저씨 수발을 들던 아주머니는 이제 중환자실로 떠나버린 아저씨를 뒤로한채 한없이 눈물만 흘렸고, 과장님의 특별한 배려로 기존에 사용하던 병실을 집처럼 사용하면서 여전히 아저씨 곁을 맴돌고 있다.

 5년여 시간동안 그 아저씨는 수많은 1년차들의 손을 거쳐갔지만, 혹시나 그 마지막이 내가 되지 않을까란 불안감이 아직도 나를 엄습해 오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그런 불안감이나 책임감보다는 아저씨를 위해 투자했던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부디 아저씨가 호흡기내과의 치료에 반응을 보여서 건강을 회복하여 다시 재회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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