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뇌경색은 선진국 병이며, 뇌출혈은 후진국 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바닥에 뛰어들어 직접 일하는 요즘, 이러한
업계동향이 현장을 100%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을 종종해본다. 물론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되고,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상승하면서 고혈압성 뇌출혈이 상당수 줄어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뇌출혈이 이것만 있겠는가. 외상에 의한 뇌출혈뿐만 아니라
종양, 동맥류, 혈관기형 등 수많은 출혈 유발인자들이 아직도 수많은 환자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창시절만
해도 뇌출혈은 내게는 정말 무서운 존재였다. 일단 신경외과라는 학문에 관심이 많지 않았기에 수업시간에 들었던 뇌출혈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의사들이 다루는 것이라 여겼다. 다양한 뇌출혈의 타입을 구분하고 그에 따른 원인이나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일은 막연하고 어렵게만
느껴졌고, 병원실습 당시에도 더럽고 부시시한 신경외과 1년차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나는 절대 저렇게 살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친구
아버님이 뇌출혈로 쓰러져 돌아가신 적이 있었는데, 당시 장례식장의 풍경을 보고나선 절대로 나는 뇌출혈로만은 죽지 말아야겠다 다짐한 적도
있었다. 이랬던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매일같이 뇌출혈 환자들을 마주하고 동고동락하고 있다니 과거의 내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정말 놀랠
일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밀려드는 뇌출혈 환자들 때문에 병동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후달리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늘 행복하고 따뜻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오늘도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김씨 아저씨가 흉폭해지면서 입에선 욕설과
음담패설이 난무하고, 사지를 옥죄여둔 붕대를 스스로 풀허헤치고 중환자실 정문까지 나와서 간호사를 폭행하고 한바탕 소란을 피웠지만 나는 아저씨와
그 상황을 결코 분노하거나 증오하지 않았으며 단지 아티반과 함께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며 좌선으로 견뎌냈다. 외상성 뇌출혈로 응급실로 찾아온 송씨
할머니가 화장실을 가겠다며 침대에서 일어나 생쑈를 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도, 역시 나는 아티반과 함께 쓰디쓴 인내의 열매를 핥으며 할머니가
안정되기만을 기다렸다.

 이렇게 뇌출혈 환자들과 함께 하루하루 죽음의 신경외과 1년차 시간을 보내며 느끼는 것이 있다면, 뇌출혈이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는 보건복지부의 음모가 담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점(신경외과 1년차 삶이 점점 좋아지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서 신경외과를
전공으로 선택하게 하려는...) 그리고 인간이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라는 것과 이렇게 살아서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하다는 정도. 단지
수명연장의 꿈은 커녕 수명이 단축되지나 않았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그나저나 오늘도 한끼밖에 못 먹었더니 배고프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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