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나이가 궁금하다.

만약 마흔 전이라면, 당신은 틀림없이 효자나 효녀다.
본인이 복용하지 않는 아스피린에 대한 관심으로 이글을 읽을 생각을 했다면, 틀림없이 부모님에 대한 평소 사랑인 거니까.

깜신은 수술을 하는 의사다. 연세가 높으신 환자를 수술하게 되면 가장 먼저 신경 쓰이는 것이 여러 성인병과 복용 중인 약이다. 대국민 성인병인 당뇨병이나 고혈압이 있으면, 금세 약이 늘어난다. 약들 중엔 수술 중 출혈을 유발하는 이유로 수술 경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들이 있다. 그러니 수술 전 복용약 확인은 스노우보딩하기 전 바인딩에 부츠를 묶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얼마 전 수술이 필요한 50세의 환자분과 면담 중이었다.

“혹시, 드시고 계신 약 있으세요?”
“나이도 있고 하니, 아스피린만 꼭 챙겨서 먹습니다.”
“딱히, 특별한 병도 없으신데, 아스피린은 왜 드세요?”
“나이가 들면, 피가 탁해지니 미리미리 챙겨 먹으면 좋다고 들었습니다.”
“누구한테요?”
“의사들도 비타민하고 아스피린은 다들 챙겨 먹는다고 하던데..”
“누구한테 들으셨는데요??”
“... 친구들한테요..”

언제부턴가 아스피린이 부모님들 사이에서 건강을 위한 초석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조건 좋은 약이 아니다.

아스피린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아스피린은 피가 뭉치는 것을 막아주는 약이다. 어렵게 말하면, 혈전 형성을 지연시키는 약이다. 혈전이란 피가 굳은 덩어리로 이게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다가 뇌혈관을 막으면 중풍(뇌졸중), 심장을 막으면 심근경색을 일으킨다. 중풍, 심근경색, 이름만 들어도 오들오들 떨리니 아스피린은 더욱 맛있어(?) 보인다.

하지만, 아스피린은 혈전 형성을 방해하는 탓에 지혈과정을 방해한다. 그래서 수술을 하기 전에는 복용을 멈춰야 한다. 또한, 위장에서 위점막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는다. 그래서 아스피린의 흔한 부작용 중 하나가 위출혈이다.

이런 이유로 위험성과 이득을 고려해서 아스피린 복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게 쉽지만은 않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말도 많고, 연구도 많은 게 아스피린 처방 문제다.

말이 나온 김에, 아스피린 처방 가이드라인을 살펴보자. (복잡한 게 싫다면 의사가 아닌 이상, 굳이 다 읽지 않아도 된다.)

1. 관상동맥 질환(심근경색증 등의 급성관상동맥 증후군, 관상동맥경화증 등)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 경우
2. 혈전에 의한 뇌졸중(중풍)을 앓았던 경우
3. 말초혈관질환이 있는 경우
4. 심실세동이 있지만, 와파린(warfarin)을 먹을 수 없는 경우
5. 당뇨병이 있으면서 아래 기준에 해당하는 경우: 이 경우는 더 복잡하다.

가. 당뇨가 있는 환자 중 심혈관계 질환 위험은 높으면서, 출혈에 대한 위험은 높지 않은 경우 (예전에 위장관 출혈의 과거력이나 위궤양 등의 병력이 없고, 출혈 가능성을 높이는 기타 다른 투약을 하고 있지 않은 경우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다는 이야기는 아래 3항 중 하나에 속할 때는 뜻함.
1) 향후 10년 동안 심혈관계 질환의 발병 가능성이 10% 이상일 때
2) 남자의 경우 50세이상, 여자의 경우 60세 이상일 때
3) 흡연, 고혈압, 고지혈증, 저연령 심혈관질환의 가족력, 알부민뇨증 중 하나 이상의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을 때

이런 경우는 하루에 75~162mg 정도의 저용량 아스피린 용법의 처방기준이 된다.

나. 하지만, 당뇨가 있다고 하더라도, 심혈관계 위험이 낮은 경우에는 아스피린이 오히려 득(심혈관 질환 예방)보다 실(위장관 출혈 등의 부작용)이 크다고 본다.

심혈관계 위험이 낮다는 의미는
1) 남성의 경우 50세 이하, 여성의 경우 60세 이하일 때
2) 향후 10년 동안 심혈관계 질환의 발병 가능성이 5% 이하일 때
3) 흡연, 고혈압, 고지혈증, 저연령 심혈관질환의 가족력, 알부민뇨증의 위험요소 중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아스피린 처방도 겉으로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실상은 아이폰 분해만큼이나 머리가 복잡하다. 이런 기준에 따라 필요한 경우라면 당연히 열심히 복용해야 하지만, 아스피린을 영양제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씨앗글
2010년 6월에 발표된 [당뇨병환자를 위한 아스피린 처방 가이드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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