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신이다. 드디어 무더운 여름밤의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뽀송뽀송하게 씻고, 침대에 누워도 금세 온몸이 끈적끈적해지는 바로 그 기분 말이다. 선씨 집 아들 풍기가 이제 슬슬 일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된 거다. 그런데 무턱대고 선풍기를 켜놓을 순 없다. 잘못하면 단군의 자손으로 태어나 인류 역사를 위해 일 한 번 못해보고 죽을 수 있으니까. 문제는 정말 그러냐는 거다. 그래서 오늘은 선풍기 드립에 대한 깜신의 견해다.

우선, 대한민국 방송 3사 중 하나인 SBS 뉴스의 일부를 링크한다.


   
케이블 채널도 아니고 SBS 채널에서, 예능 프로도 아니고 뉴스 프로그램에서, 10년 전 뉴스도 아니고 3년 전 뉴스에서다. 선풍기가 여름철 사망사고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다는 점이 가히 쇼킹하다. 선풍기가 사람을 죽인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뉴스에 오르내릴 정도로 만연되어 있는 드립이 선풍기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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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풍기 땜에 죽는다는 걸까?

질식

선풍기 바람을 얼굴에 쏘이고 자면, 얼굴 쪽에 진공상태가 만들어져서 질식으로 죽는단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선풍기가 진공청소기도 아니고, 진공 상태를 만든다니. (차라리 진공청소기를 코에다 대고 자면 죽는다고 하자.) 선풍기는 대류 현상을 가속화해서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장치다. 차를 타고 가다가 얼굴을 창밖으로 내밀면 시원한 것과 같은 이치다. 만약 선풍기 바람으로 사람이 질식사한다면, 스카이 다이빙하는 친구들이 멀쩡하게 살아서 땅에 떨어지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저체온증

선풍기가 사람 체온을 떨어뜨려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한다는 거다. 사실 저체온증으로 사람이 죽으려면 적어도 5~6도 이상은 체온이 떨어져야 가능하다. 하지만, 선풍기가 무슨 초강력 에어컨도 아니고, 저체온증을 유발한다는 이야기는 우습지도 않다. 예능 프로 '1박 2일‘에서 겨울날 야외취침이 추울까? 아님, 여름밤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는 게 추울까?


이산화탄소 중독

갈수록 가관이다. 폐쇄된 방에서 선풍기를 틀고 자면, 공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간단다. 폐쇄된 방이라는 단서가 더욱 심증을 올린다. 하지만, 방은 잠수함이 아니다. 물론, 폐쇄된 방에서 잔다면, 조금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갈 거다. 하지만, 겨울에 온 가족이 한 방에서 꽁꽁 문 닫고 자도, 아침에 서로의 얼굴을 보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선풍기가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를 가속화시킨다는 건 어처구니가 없다. 선풍기는 그저 대류 가속화 장치일 뿐이니까.

‘과학’이라는 가면을 쓴 미신이 가장 물리치기 어렵다. 저체온 증에 이산화탄소 중독에, 질식까지 어려운 말로 포장하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선풍기 드립을 한국산 미신으로 치부하고 있다. 문제는 그렇다 보니, 선풍기가 사망사고와 완전히 무관하다는 객관적 연구 또한 없다는 점은 아쉽다. 굳이 궁금하지도 않으니, 연구도 하지 않는 거다. 시궁창에서 주어든 개떡 같은 논문이라도 하나 있어야, 과학자들이 서로 나서서 한마디씩 보탤 텐데 그게 쉽지가 않다.

하지만, 정~ 객관적인 증거를 원한다면, 하나 있기는 하다.
10년째 여름밤마다 선풍기를 틀고 잤어도, 여전히 살아서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산 증거, evidence'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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