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질병이 ‘그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외부적 요인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 질병들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천연두와 매독이다. 이 두 질병은 환자와의 밀접한 접촉을 통해 서 전염되므로, 무언가 외부적인 감염원이 있음을 시사해 주었던 것이다. 물론 1347년, 타타르인들이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들을 Caffa 성벽 너머로 날려 보냈던 것은 정확한 감염원에 대한 이해는 없었더라도 그 기저에 어떠한 감염성 원인이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질환은 그저 몇몇일 뿐이었고, 여전히 대체로 사람들은 질병이 나쁜 공기, 혹은 독기 - miasma -에 의해 일어난다고 믿고 있었다. 다른 예로 결핵 역시 주로 가까운 사람끼리 기침을 통해 전염되지만, 과거 사람들  이것이 친족간에 전해지는 ‘독기’에 의해 일어나는 유전성 질환으로 보았다.

어쨋든 ‘독기’의 시대는 가고, 17세기 현미경의 발전으로 미생물학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이런 ‘자연발생설’들은 여러 실험들을 통해 부정되기 시작 했다. Louis Pastuer가 휘어진 주둥이의 유리병을 이용한 실험은 교과서에도 빠짐없이 등장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Pastuer가 박테리아가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한 후, 독일의 Koch가 탄저병을 일으키는 탄저균을 발견하면서 드디어 감염성 질환의 원인이 미생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미생물학과 감염성 질환에 대한 연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해, 박테리아 가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확신이 의학계 사이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Koch에 의해 ‘One germ One disease Theory’가 제시되었고, 이제 모든 질병의 원인에는 미생물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기 시작했다. 이 가설을 부정한 것은 저명한 병리학자, Rudolf Virchow 뿐이었다.

Virchow가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다양한 질병들에서 미생물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는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인지, 아니면 미생물이 나타나는 것이 질병의 발현에 따른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즉 질병의 발현이 있어서 soil(몸)이 seed(병원성 미생물)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생각 에 질병이란 세포간의 긴밀한 조직관계가 망가지면서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였고, 그 사이로 미생물이 침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많은 질병 들의 원인균들이 밝혀지기 시작했고, 병원균에 의한 질병의 발현이라는 센트럴 도그마는 20세기 초반을 지나며 점점 확고하게 다져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토양(몸)과 씨앗(미생물)이 감염성 질환에서 가지는 위치에 대한 논쟁은 불이 붙기 시작했다.

Seed가 감염성 질환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생각은 20세기 초중반을 의학 계를 지배했고, 지금도 그 그림자는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 Seed vs Soil 논 쟁에 중요한 전환점을 찍은 것은 1957년에 이르러서였다. 적혈구의 모양을 변화시켜 극심한 빈혈을 일으키는 유전질환인 겸상적혈구빈혈증이 아프리카를 비롯한 열대지방에 특히 흔하게 발견된다는 발표 후가 그 전환점이다. 그런 발생률의 차이는 말라리아 기생충이 적혈구에 침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 말라리아에 임상적 저항력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 시작했다. 이후 면역학과 유전학에 극적인 발전이 있으면서, 병원성 미생물 만큼이나 유전적 소인, 혹은 면역력이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는 것이 재차 확인되었다.

Seed vs Soil 논쟁은 21세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다시금 여러가지 재미난, 그리고 중요한 물음들을 던져준다. 감염성 질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지금, 인간의 몸은 몸을 감싸고 있는 굉장히 다양한 생물군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반응하며 조절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물론 정확히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는 이제 오천피스짜리 직소 퍼즐의 네 구석을 맞춘 정 도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질병의 원인은 하나의 병원균에 불과할지라도, 그 뒷 배경에서 면역계를 조율하는 것은 수 많은 다른 생물들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일례로 장내기생선충의 경우 체내 면역반응을 조절해 염증 반응을 억제하기도 한다. 이러한 한가지 병원체에 대한 감염이 다른 병원체의 감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지금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즉 씨앗이 토양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토양 자체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이렇게 변화된 토양의 성분이 다른 씨앗이 뿌리를 내리는데 영향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일전에 토양에 문제가 있어 생기는 것이라 생각했던 질환들 -예 를 들면 암 같은 - 질병들이 사실은 씨앗인 병원균에 의해 일어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대로 같은 씨앗이 토양에 뿌리 내리더라도 면역력 의 차이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밝혀졌다.
 
어떤 나쁜 기운에 의해 질병이 생겨난다는 생각에서 감염성 질환의 원인이 되는 병원균으로, 그리고 병원균과 신체와의 상호작용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이어져 내려온 Seed vs Soil 논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화두를 던져주는 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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