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의 치과치료,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에 있어서 치과대학 학부 과정에서 배우는 내용과 교과서 수준의 내용은 아래와 같이 대강 요약됩니다.


  1.  치과 방사선은 전체 치아 촬영(14장)도 필요한 경우 진행해도 무방하다. 
  2. 치과 방사선 정도는 안전하지만, 환자 동의는 필수. 
  3. 사전 설명 충분히하고 필요한 만큼만 최소한 촬영.
  4.  약물 FDA분류 신경써서 처방할 것.
  5.  호르몬 변화로 인해 잇몸이 붓는 임신성 치은염 호발. 식이습관 변화로 충치 가능.
  6.  초기 3개월인 1기와 후기 3개월인 3기는 절대 조심.(치과치료 되도록 하지 말 것.)
  7.  2기에는 제한된 수준의 치과치료 가능.
  8.  따라서 임신 전 잇몸 관리와 사랑니 발치등 치과치료를 사전에 받도록 권유. 
  9. 스트레스 조심, 진료시간 짧게. 
  10. 초기에 임신 여부 모르는 환자들 있으므로 사전에 설문지 등으로 반드시 확인할 것.
  11.  임신 말기 누운자세(앙와위) 저혈압 증후군 조심.

 뭐.. 대략 이 정도가 되려나요. (생각나는 대로 써봤습니다.)

임신이란 것 자체가 사실상 인간이라는 종의 역사와 함께한 '아주 오래된' 전신 상태임에도, 과학, 의학의 발전에 따라 임산부에 대한 치과치료도 현재에도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임신과 치과에 관련해서 위의 교과서적인 내용 말고 최근의 따끈따끈한 핫이슈는 '잇몸 질환과 조산의 관계' 입니다. 미국에서는 11%정도가 37주 이전에 출산하게되는 조산을 하고, 지난 15년간 조산율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그 원인에 대해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지요.

최근 연구에서는 잇몸질환을 일으키는 세균들이 아마도 혈액에 퍼지는 균혈증bacteremia등의 방법을 통해 조산 및 저체중, 자간전증preeclampsia와 상관이 있는 것 같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설치류를 대상으로한 실험에서 잇몸질환을 일으키는 병원균을 투여했을 때, 투여한 병원균의 양과 저체중 출산의 정도가 상관성을 보였고, 양수에서 조산을 유도할 수 있는 물질들cytokines & prostaglandins을 만들어내는 것이 발표되었죠.

하지만 실제 사람에게서는 아직 상관성이 확립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역학적인 조사에서는 상관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잇몸 질환이 조산과 상관성이 있느냐/없느냐'와 '관계가 있다는 전제하에, 그러면 잇몸 치료가 조산의 위험을 줄일 수 있겠느냐'의 문제에 대해서, 워낙 찬반이 갈리는 연구 결과들이 많아서 아직까지는 합의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단계는 아니고, 이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이를테면 미국 치주학회AAP는 관련성을 지지하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미국 치과의사협회는 사뭇 신중한 입장이지요.)

그 중 재미있는 연구는, 2006년에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에 발표된 치주 치료와 조산의 Risk에 대한 연구입니다. (관련 주제에서는 자주 인용되는 key journal중에 하나입니다.) http://content.nejm.org/cgi/content/abstract/355/18/1885

이 연구는 Hennepin County Medical Center, Kentucky 대학, Mississippi medical center 대학, Harlem 병원. 총 4 곳의 병원에서 총 823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실험으로, 13~17주 사이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21주 전까지 잇몸 치료를 진행하여 잇몸 치료 여부와 조산, 저체중 출산 등을 비교한 실험입니다.

실험 결과는 '13~21주 사이의 통상의 잇몸치료가 유의미하게 조산, 저체중 출산을 감소시키지는 않았다'입니다. 잇몸치료의 여부가 조산, 저체중 출산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성을 나타내지 못한 것이지요. (아마 후속 연구를 통해 잇몸질환과 조산의 상관성, 잇몸치료와 조산의 상관성이 밝혀져야할테지요.)

이 연구가 일반 치과의사에게 갖는 의미는 이러한 결론을 살짝 뒤집은 것에 있습니다. 바로 '13~21주까지의 통상 잇몸치료가 임신에서의 부정적인 상황을 야기하지도 않는다'입니다. 그래서 2008년 미국 치과의사협회지에 이 연구의 4곳의 병원에서의 823명의 data를 가지고서 다른 해석을 한 연구가 실렸습니다. http://jada.ada.org/cgi/content/full/139/6/685

13~21주 사이의 임산부에게서 꼭 해야하는 치과치료, 이를테면 발치나 임시/영구 보철, 신경치료 등을 하는 것이 조산, 저체중 출산 등의 위험성을 높이지 않는다라는 내용입니다.

임산부에게서의 치과치료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를 두고서, 태아가 뱃속에서 만들어지는 가장 중요하고 영향받기 쉬운 임신 8~12주까지를 제외하면, 점점 임산부에서 가능한 치과치료의 범주가 넓어지는 것이 요즘의 추세입니다.




미국 치과의사협회 등은 기본적인 잇몸치료와 필수적인 치과치료에 있어서 치과의사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할 것을 권하는 분위기입니다. (적어도 제가 느끼기로는)

더 쉽게 풀어쓰자면, 이가 아프다고 온 임산부를, 임신했다고 그냥 돌려보내지 말고, 가능하면 치료를 해줄 수 있는 만큼은 해주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임산부와 치과 진료'라는 주제는 미국, 한국 할 것 없이, 많은 치과의사에게 실제적인 risk 등과 같은 data 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주의caution, 좀 심하게 표현하면 몸사리기와 관련된 이슈였습니다.

임신과 치과와의 관계가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들이 제한적이다보니, 자연스레 치과의사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요, 뱃속의 아기가 걸려있는 문제다보니 조심조심 갈 수 밖에 없지요.

그렇지만 이런 몸사리기 경향은 과학적 합리성에 근거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치과에서 사용하는 마취제, 항생제, 진통제 등등에 대해서는 미국 식약청FDA에서 안전성을 판단하여 관련 지침이 정해져있음에도, '혹시 잘못되면 어찌하나'의 공포로 치과의사의 치료 계획과 결정이 위축되게 됩니다.

임산부가 치과를 내원하게되면, 이 글의 서두에 박스로 정리해놓은 교과서적인 지침들보다 전반적으로 훨씬 더 소극적인 범주로 치과치료를 진행하게 되는 것이죠. (행여나, 혹시나 잘못되면 안되니까..)

Pistorius 등의 2003년 설문 연구에 따르면, 미국내 겨우 10%의 치과의사가 임산부에게 필요한 모든 치료를 다 하고, 8.5%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임신 2기에도 치료를 미룬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Eur J Med Res 2003 Jun 30;8(6):241-6.)

게다가 이런 '혹시 잘못되면 어찌하나'의 공포는 비단 치과의사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임산부 본인과 가족,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 임신중에 1/4~1/2의 여성만이 치과치료를 받았다는 설문도 있고, 국가적인 의료보장시스템(NHS)를 통해 의료보장으로 유명한 영국에서도 치과치료가 공짜라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64%만이 임신중에 치과검진을 받았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종합하자면,

임신중의 치과 치료는 일반적인 경우와 같은 환자의 사회,경제적인 요소보다 '치과의사'와 '임산부'의 자세, 성향attitude에 따라 결정되게 되는 것이죠.

뭐, 그 중에 임산부를 대상으로하는 홍보는 치과의사 개개인이 풀어야할 영역이라기보다는 치협이나 정부 차원에서 차차 해결할 문제일테고, 임산부의 구강건강 관리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결국 치과의사의 update된 evidence-based에 입각한 자세Attitude가 되겠습니다.

잘 모르고 회피하거나, 잘 모르고 덤비거나. 둘 다 위험하겠지요..;;

'혹시 잘못되면 어찌하나' 라는 입장이나, '내가 아니면 누가 하리' 라는 입장이나 고만고만하다라는 거죠.

즉 몸사리는 치과의사들을 대상으로 투철한 진료 의지나 감상적인 측면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임산부의 치과치료에 대한 그 의학적 근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의지를 갖고서 해라, 너 아니면 누가 하리. 그것이 너의 사명'이 아니라, '이러이러해서 여기까지는 해도 되는데 넌 왜 안하니'가 더 적절하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2009년 미국 치과의사협회지에 발표된 연구(http://jada.ada.org/cgi/content/full/140/2/211)는, 미국 오레곤의 일반 치과의사들에 대한 설문을 통해 치과의사들이 의외로 임산부의 치과치료에 있어서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이 많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확인시켜주었는데요,

치과의사들이 임산부에게서 가능한 치과 치료의 범주나, 진료 중 사용하거나 처방하는 약물의 안전 카테고리등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설문에서 많은 치과의사들이 임신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을 받을 용의가 있으며 임산부에 대한 구강관리가 치과의사 자신의 몫이라고 대부분 응답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 우리나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 모르고 있는 치과의사도 있을테지만, 다들 잘하려는 의지는 확고히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치과의사의 정확한 지식과 관심을 통해, 임산부에 대한 직접적인 치과 치료에 그치지않고, 출산 후의 구강 위생 교육 및 태어날 아기에 대한 구강 위생 교육까지 이루어진다면 어린아기의 다발성 충치(ECC)등의 예방 등에도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요.
 

결국, 치과의사가 늘 공부하고, 준비가 되어있고, 병원 차원에서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습니다.

임산부는 임신 전에 치과검진 및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일 좋겠고, 임신 중에라도 문제시 치과에 와서 가능하고 필요한 치료를 할 수 있는만큼은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출산 후에도 계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본인과 자녀에게 중요한 구강 위생 교육도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흠... 결론은 어째 좀 뻔한가요.

예전에 이가 아프다고 동네치과를 거쳐서 대학병원까지 찾아온 임산부를 임신 3기라는 이유로 돌려보낸 경험이 있습니다. 치과와 임신이라는 이슈를 대할 때, 저한테 제일 먼저 떠오르는 case입니다.

당시에도 책을 뒤져가며 어떻게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당시에는 결론이 '어쩔 수 없지만 치료는 위험하다'는 판단하에 잘 설명드리는 것으로 그쳤지요. 아마 비슷한 경험이 치과의사라면 다들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도 미국 만큼이나 임산부의 치과치료에 있어서 어지간히 보수적이니까요.

'그때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지금이라면 어떻게 할까'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야할 부분이겠죠. ^^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