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생명에 대한 권리가 자기 자신에게 있는가 없는가 논란이 있습니다만, 권리가 있다고 하면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있을 것이란데 큰 이견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권리와 생명을 살려야하는 의료진과의 갈등은 흔하지는 않습니다만, 때로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종교적 신념에 따른 결정입니다. 일례로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의 경우 수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수술전 수혈 문제로 의료진과 갈등을 겪게 됩니다. 저역시 그러한 경험이 있었고, 메디컬 드라마등에서도 종종 다뤄지는 주제입니다. 특히 수술할 환자가 수혈이 예상되는 상황인데 수혈을 거부한다면 의사로써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에 대해 확실한 답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경우에 여러가지 갈등이 생기는 것은 국내와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미국 의학 저널인 JAMA의 A Piece of My Mind에 Bruce H. Campbell 교수의 기고문을 보면 이러한 갈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장문의 글이기에 1/4 분량으로 요약했습니다.


환자는 2주전에 나를 찾아왔다. 목에 위치한 큰 종양은 거친 면을 가졌으며 우측 쇄골까지 만져졌다. 다행히 조직 검사에서는 악성은 아니였지만, 종양이 점차 커지면서 기도를 누르고 있어 호흡이 불편한 상태였다. 환자 역시 수개월간 호흡이 점차 어려워졌다고 하며 지금은 누울때 자세에 따라 호흡이 불편해지기도 한다고 했다.

"환자분도 아시겠지만, 갑상선 수술은 여러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감염 및 신경손상, 목소리의 변성 가능성, 몸의 칼슘 농도의 변화, 출혈등이 있습니다."

나는 환자에게 수술로 있을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천천히 설명했다.

"한가지 다행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부작용들이 흔하지는 않다는 것이죠"

미소를 지으며 내 설명을 듣던 환자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꼭 알아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전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여호화의 증인이 정확히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어떠한 수혈도 거부한다고 알고 있었다. 환자는 미소를
띄우며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난 그 순간부터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종양의 크기로 보건데
출혈이 적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수혈을 받지 않겠다는 말씀인가요?"

환자는 짧게 대답했다.

"네"

"만약 허락하신다면 자가 수혈이란 방법도 있습니다. 미리 수술 전에 채혈을 해 놓고 나중에 필요하면 자신의 피를 수혈하는 방법입니다."

환자는 확신의 찬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선생님,  어떤 수혈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수혈을 하지 않는다면 제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환자는 자신이 수혈을 받지 않았을 때 그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제가 죽을 각오를 하고 수혈 없이 수술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 것이 제 선택입니다."

환자와 나는 동시에 침묵했다.

"수술을 해주시겠어요?"

환자에게서 공은 나에게로 넘어왔다. 종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져가고 있고, 명확하게 수술이 필요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보통의 경우 갑상선 종양이 수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위안이 되는 상황이지만, 이 환자의 경우 우측 흉곽 위쪽까지 종양이
커져있고 혈관이 발달되있어 짧은 순간에 리터급의 출혈도 가능한 상황이다.

다시 한번 찬찬히 초음파 결과 컴퓨터 스캔 결과를 볼 동안 환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줬다.

"...그렇다면 수술을 진행하도록 하지요. 스케줄을 잡아봅시다."

환자는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고 했다.

그리고 2주 뒤, 지금 환자는 수술대 위에 누워있다. 생각보다 상황은 좋지 않아 종양 주위로 근육의 유착이 심했고 종양은 흉골뒤와
척추사이의 공간에 꽉 차있었다. 평소와 같으면 잠시 수술대에 몸을 기대거나 몸을 비틀어 긴장을 풀면서 수술을 했겠지만, 지금은 한
순간 한 순간이 너무나 조심스럽다.

오른손 검지로 종양의 표면을 더듬어 가면서 절개를 계속했다.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손가락으로 더듬어 갈 때 한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출혈이 상상되어 끔찍했다.

'만약 막을 수 있는 사망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나는 옳은 일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과 함께 왜 환자에게 수혈을 하지 않고 수술하겠다고
이야기 했는지 후회가 되었다.

야구공보다 큰 종양이 절개창을 통해 나오기 시작했을 때 그 장면은 태아가
출생할 때 모습과 비슷했다. 운이 좋게 종양이 절제되어 나왔고 텅빈공간은 석션기와 스폰지로 채워졌다.종양이 제거된 자리를
누르고 있던 스펀지 스틱을 하나씩 떼기 시작할 때까지 나의 긴장은 늦춰질 수 없었다. 다행히 큰 출혈이 없었고 세척후 수술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만약 환자가 수혈이 필요한 상황까지 갔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밖에 대기하고 있던
환자의 가족들에게 수혈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나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수혈을 했을까? 그렇지 않다면 환자의 신념을 지켜주기
위해서 수혈을 하지 않고 꺼져가는 생명을 지켜봤을까?

수술이 끝난 뒤지만, 만약의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제가 만난 여호와의 증인 가족은 고등학생정도 되는 미성년자인 환자와 부모님들이였는데, 걱정되는 부분은 환자의 뜻과 보호자의 뜻이 같지 않거나, 종교의 원칙과 정말 본인의 마음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부분이였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종교적인 이유로 거부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의료진의 판단하에 수혈하는 것은 용인할 수 있는 경우를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였습니다.


알려지기로는, 혈액형이 발견된 1900년 초에는 수혈에 대한 금지 조항이 없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1945년경부터 수혈에 대한 금지를 하게 되었는데 이는 성경에 의한 결정 사항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수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레위기에 17장 10절에 피를 먹지 말라는 말씀등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가 문제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란 것입니다. 꼭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와 비슷한 상황은 있을 수 있습니다. 환자가 의사에게 이러한 요구를 할 경우, 그로 인해 환자를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환자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 정답일까요, 아니면 조금더 신중하게 환자의 가족 및 일가 친척 모두의 동의를 받고 법적인 자문을 구해 수술을 들어가야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환자와 온 가족이 다 동의하고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의사로써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살려야하는 것일까요?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제 눈앞에 수혈을 하지 않아 죽어가는 환자가 있었다면 평생 마음이 짐이 되어, 저를 괴롭혔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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