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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라 불린 의사 장기려

장기려 박사님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슈바이처는 기억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봉사의 삶을 살았던 의사 장기려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장기려 선생님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6.25 등 혼돈의 역사 속에서 봉사의 삶을 사신 분입니다.

장기려 박사님이 의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일제 당시에는 일본 의사와 조선 의사들간에도 차별이 존재했습니다. 또한 환자 역시 차별을 받던 시대입니다. 일전에 우리나라 기생충 역사를 리뷰하면서 영흥에미친사건에 대해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1927년 일제 시대에는 폐흡충감염 집단치료로 일본인 의사가 환자 연령, 나이, 질병 경중을 세심히 가리지 않고 에메친(emetine)을 투약해 6명의 한국인 사망자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냥 묻힐 뻔한 이 사건은 한국인 의사로 구성된 한성 의사회가 이를 규탄하고 진상조사를 하라고 총독부를 압박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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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려 박사는 이 영흥에미친사건과 의사가 없어 진료를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환자를 보며 의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경성의전(서울대 의대 전신)을 졸업하고 국내 최초로 간 절제를 성공하는 학문적인 업적을 보였을 뿐 아니라 (대한 간학회에서는 이날을 기념해 10월 20일을 간의 날로 정했음), 자신의 돈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무료 진료소를 세우는 등 의사가 되기 전 초심을 잃지 않고 봉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시절 의사가 귀했기에 마음만 먹으면 개업하여 부를 축적할 수도 있었음은 둘째치고 대학의 교수가 되어서도 월급의 대부분을 남을 위해 쓰는 그를 보고 주위 사람들은 ‘바보의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해방 이후 평양에 있던 장기려 박사는 김일성 대학의 교수로 있게 되지만, 전쟁 이후 월남을 하게 되고 부산에 있는 복음병원(고신의료원 전신)에서 봉사를 하게 됩니다. 평생을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장기려 박사는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헌납하는 삶을 살았는데, 하루는 돈이 없는 환자가 퇴원할 수 없게 되자 뒷문을 살짝 열어줬다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1968년에는 정부보다 10년 앞서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결성하여 우리나라 의료보험을 앞당기는데 선각자가 되었습니다. ‘건강할 때 이웃 돕고, 병 났을 때 도움 받자’는 취지로 시작한 민간 최초의 의료보험 기구였던 것이죠. 1979년에는 동양의 노벨상이라고 부르는 ‘라몬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삶을 보았을 때 이는 당연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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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는 뇌경색으로 몸이 불편했지만,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왕진 가방을 들고 어디든 달려가셨다고 합니다. 장기려 선생님은 바보 의사가 아닌 이 땅의 성자라는 칭호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장기려 선생님에 대한 기록은 그렇게 많지도 않고, 그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지도 않습니다. 특히 젊은 시절의 장기려는 역사의 역동기 한가운데 있었고 역사적인 인물들과 함께 있었는데 말이죠.

특히 춘원 이광수가 입원해있을 때 치료를 맡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고 혹자들은 이광수의 <<사랑>>의 주인공 안빈의 모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저자가 창조해 낸 인물로 본다고 하셨지만 말이죠. 또한 김일성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기도 했고 이후에는 월남을 하여 육군 병원에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서울의대 교수, 부산의대 교수도 역임하셨으니 이렇게 역동적으로 사신 분이 또 있을까요?

기독교인으로 평생 봉사의 삶은 사셨던 장기려 박사님은 1995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평생을 봉사하며 단칸의 옥탑방도 충분하시다고 말씀하신 장기려 박사님의 삶은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독서와 함께 하는 피서 이벤트 1탄을 진행중입니다. 신간 ‘청년의사 장기려’를 추첨을 통해 드립니다. 많은 관심과 응모 부탁드립니다.




장기려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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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유철 지음 |
홍성사 펴냄
인간 장기려와 만나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장기려의 삶과 사상을 담은 평전. 1943년 우리나라 최초로 ‘간부분절제’에 성공하고, 1968년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모태가 된 청십자의료보험을 설립하는 등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나 가난한 사람을 위해 헌신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장기려의 평전이다. 이 책은 장기려의 일기뿐 아니라, 그가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한 글 등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것은 물론, 그의 삶과 사상에




청년의사 장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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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규 지음 |
다산책방 펴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천재의사 장기려의 뜨거운 삶!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다 간 의사 장기려의 삶을 그린 손홍규의 장편소설『청년의사 장기려』. 작은 예수, 살아 있는 성자, 바보 의사, 한국의 슈바이처 등 다양한 별칭을 지니고 있는 실존인물 장기려의 삶을 입체적으로 복원한 작품이다. 차세대 입담꾼으로 불리는 손홍규가 역사적 사실에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대중성을 높였다. 장기려는 일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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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로그

25 Comments

    • 아~ 제가 학교 다닐 때에는 도덕책에 슈바이처는 나와도 장기려 박사님은 없었는데 다행입니다. 최근에 젊은 시절의 장기려 박사님의 삶이 소설로 나왔는데 한 번 읽어보세요. ‘청년의사 장기려’입니다.

  • 장기려 박사님에 대해서는 05년에 알게 되었었습니다^^;
    이렇게 훌륭하신분이 어째서 우리교과서에 빠지신걸까,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애들 도덕책에도 등장하신 분이라는걸 알게 되었죠.

    한데 장기려 박사님도 월북하지 않으셨던가요? 남한에 그냥 계셨으려나….
    사회적으로 좋은일 하시던 옛분들은 대게 월북을 많이 하셨더라구요..

    관련한 책 트랙백 겁니다 ^_^

  • -_- 월남하셨군요. 역시.
    월북하신 분들도 우리 교과서에 좀 실리면 좋을텐데…
    최근 알게 된 금광왕 김종만님의 일대기를 읽고 왜 이런 분이 우리 교과서엔 안 등장했을까, 하고 의야해 했었거든요.

    아무튼…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 하면서 월북하신분들은 교과서에 안 실어주는게…
    가슴아프네요.

    rss로 늘 구독하고 있답니다 ^_^ 좋은정보 늘 체크 하고 있습니다~

  • 가장 유명한 일화를 모르시는 것 같네.. 북한에 계신 부인을 만나볼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다는 데요.. 자신만 특혜를 받을 수 없다고..
    넘 감동하고 좀 슬펐다는.. 그 뒤 죽 혼자 사신 걸로 알고 있는데..
    북한에 자식 여러 명 두고..시부모 모시는 부인 두고 혼자 월남해서
    남한에서 자식 여러 명 두고.. 다시 북한에 부인 만나러 가는 일반 남정네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던데… 모든 면에서 다르신 듯..

  • 살아계실때 닷새를 함께 생활하며 뵙을때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노구의 육신을 다른이들과 같이 딱딱한 의자에 누이시고 주무시던 모습. 음식물을 받으려고 줄서 계시던 모습등등이 기억납니다…갑자기 눈앞이 흐려 집니다. 새롭게 기억을 마주 대할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을 올리신 분도 휼륭하게 살으실것 같습니다.

  • 우연찮게 장기려 박사님에 대한 모 방송국의 다큐를 보고 한국에도 슈바이처가 있구나 하고 좋아했었는데 ^^

    다시 보니 반갑네요..

    북에 두고온 자식과 아내를 잊지 못해 재혼도 안하시고..

    늘 청렴하게 사시고 병원비가 없는 가난한 시민들에겐 진료비도 받지 않으셨던 정말 훌륭한 박사님..

    그시대 당시 금기시 되었던 간에 대한 도전정신과 연구…

    다큐를 본지도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군요.

    장기려박사님 같은 의사들이 우리나라에도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소망적고갑니다.

  • 어제 어머님과 장기려 박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우연하게 헬스로그님과 같은 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네요.
    그래서 제 글을 트랙백으로 남기고 갑니다.

    좋은 정보에 늘 감사합니다^^*
    복날인 만큼 두 배로 영양 보충하셔용^^*

  • 장기려박사님이 계시기에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군요, 부끄럽게도 오늘 처음 이분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노벨 평화상을 타는 것 보다, 이처럼 조용하게 남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시는 분들이 더욱 대접받고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 저희 선린병원 원장님이신 이건오 원장님께서 장기려 박사님 밑에서 수련을 하셨다고 가끔 이야기 하시면서 “장기려 그 사람”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 병원 의사들에게 모두 선물로 주신 적이 있읍니다.
    제 글을 트랙백으로 남깁니다.

    • 감사합니다. ‘장기려 그사람’이 주변의 증언으로 작성된 평전이라고 하면, ‘젊은 의사 장기려’는 그 평전을 바탕으로 젊었을 때를 소설로 쓴 것이라 약간의 내용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트랙백 감사드립니다.

  • 저역시 장기려선생님을 잘 모르지만 약간 알고 있는 것에 의하면 무척 훌륭하신 분이시죠. 언행일치에 대해서는 본받고 싶습니다.
    장기려선생님뿐만 아니라 드러내지 않고 남을 위하는 분들을 좀 더 알았으면 좋겠고, 이분들을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는지….가끔 고민해봅니다.
    저역시 어려운 시기를 보낼때 도움을 받아서 저도 남을 도와야 하는 의무감이 있거든요…^.^

    그리고 티스토리로 갈아탈려고 했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글을 모두 옮겨야 하는 것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블로거뉴스에 다시 가입을 해야 할 것 같더군요.
    어렵게 스킨을 약간 수정을 해서 바꿔볼려고 …어제 밤에 글 한 10개 옮기고 …..헥헥대다가….블로거뉴스를 다시 수정하려교 하니…안되던데요….ㅜ.ㅜ

    그래서 그냥 옮긴 글 지우고 그냥 눈팅만 하고 있습니다…..그짓하다가 어제 늦게 자서….오늘 무척 힘들었다는……(역시 나이가 드니…젊을때의 체력이 바닥나서…)

    아참..그리고 레모네이드 사건은 그 기자분이 바로 수정후에 다시 웹2.0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 이야기를 다시 언급하시길래….그냥 지우는 게 나을 것 같아…제 블로그에서 지웁니다…..불로그 다..쓰고 나서 트랙백 걸고 나서 보니…쩝…코메디닷컴이더라구요….오프모임때 뵜던 분을 뵐 면목이 없네요…^.^
    웹 2.0이야기하던데…하하..전 전혀 모르는 내용인데….그것때문에 수정되었다고…쩝.

    • 원래 이렇게 블로그 네트웍을 이루고 메타를 돌리는 것이 서로 내용을 검토하는 긍정적인 역할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혹 제가 틀린 내용 올리더라도 언제든 지적해주세요.코메디닷컴을 언급하신 것도 아니라서 지우실 필요까지도 없을 것 같은데요. 이성주 대표님도 그런 일에 신경쓰신 분이 아니시라고 생각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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