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학수사연구원 홈페이지 캡춰


2003년 개봉한 영화 ‘살인의 추억’은 1980년대 실제로 있었던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자신의 감을 믿는 구식 형사 송강호와 과학수사를 신봉하는 신식(?) 형사 김상경의 갈등을 재미있게 묘사했다. 영화 초반,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을 마을 경운기가 밟고 지나가는 장면은, 그 당시 우리의 과학수사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세계과학수사학술대전이라는 국제학술대회를 유치할 만큼 외형적인 성장을 이뤘다. 이 행사에서 우리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사건 현장을 3차원 입체 영상 스캔해 언제 어디서든지 다시 사건 현장을 볼 수 있는 기술과 지하 시설을 탐지할 수 있는 초음파 등을 선보여, 전 세계에서 모인 전문가들로부터 큰 갈채를 받았다.

그런데 국과수는 대규모 재난이 발생했을 때 필요한 첨단 과학수사 기법도 모두 갖추고 있을까? 필자가 여러 전문가에게 확인한 바로는 그렇지 않다. 2003년에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20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시신을 찾아 가족들에게 인계해주는 일은 굉장히 더뎠다. 희생자 가족들이 제공한 정보와 시신에서 찾아낸 정보를 맞춰주는 일을 사실상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태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침몰한 지 얼마 안 돼서 인양된 시신의 경우 희생자 가족들이 육안으로도 자신의 가족인지 구별이 가능했다. 그러나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어지자 시신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언론을 통해 이를 본 국민들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나’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이지만 알고 보니 이유는 단순했다. 신원 확인을 옷이나 유류품 등의 기본 정보만으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

국과수 관계자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들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 자신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현장을 통제하는 경찰 등 공무원들이 국과수가 개입할 공간을 만들어주지 않은 탓이 더 크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더 파고 들어가면 대규모 재해 때 사용할 수 있는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 도구가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미 인터폴에서는 PLASS DATA라는 신원확인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고 원하는 국가에는 이를 판매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비용 문제로 도입을 미뤄왔다. 예산이 없어서 구입하지 못했다는 그 프로그램 가격은 2억7천만원이다. 돈이 없다기보다는 성의가 없었던 거다.

다행스럽게도 국과수는 자체적으로 신원확인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현재 자체 제작 중인 프로그램은 MIM(Mass ID Manager)란 이름으로 50~200명 사이의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지문 정보와 사망자 의류 정보 및 유가족 지원까지 가능해 인터폴의 PLASS DATA보다 나은 점도 있다. ‘가벼운’ 프로그램이라 노트북으로도 충분히 구동 가능하다는 것도 기동성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아직은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프로그램이라 하기엔 부족할뿐더러 200명 이상의 대규모 재난 상황에 쓰이기도 어렵지만, 앞으로 동남아 국가들과 공동 개발을 통해 더욱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런 시스템을 국가적 단위에 적용할 경우, 실종자 검색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러 기관에서 입력한 실종자 정보와 변사체 정보를 자동으로 매칭(matching)시켜 나가는 식으로 미해결 사건을 풀어나갈 수도 있다. 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올 7월말까지 실종 접수된 성인실종(가출)자는 모두 26만명에 이른다. 하루 평균 140명의 성인 실종자가 발생한 셈이다. 이 가운데 2만 3천명은 아직도 찾지 못한 상황이다. 성인실종자인 경우 치매 등 의학적인 문제인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강력 범죄와 연관이 돼 있어 변사자 중에 상당수는 실종자일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이렇듯 과학수사에도 정보통신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상당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과수가 실종자 매칭 시스템(MIM) 개발에 나선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