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위키피디아 - 최고순간호출속도(PEF)를 측정하는 데 쓰이는 미터계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천식 환자다. 굳이 이런 내용까지 적어가면서 내가 육체적으로 부실하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겠지만, 이 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 생활 패턴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건 분명하다.
어렸을 적 두드러기 한 번 생긴 적 없을 정도로 알레르기와는 관련이 없었고, 레지던트 1년차 때까지 폐활량계 3개는 거뜬하게 올렸다. 3개가 올라가면 적어도 FEV1(1초에 힘껏 내뿜을 수 있는 공기의 양)이 4리터 내외가 된다는 의미로 폐 기능이 좋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가족력상 아버지가 천식을 가지고 계실 뿐이었다. 학생 때까지 다른 건 몰라도 뛰는 것 하나는 잘했고, 숨이 찬 적도 없었다.
그러던 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1년차 말부터였다. 당시 공보의를 하던 친구가 병원에 놀러와 몇 년 만에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 한 얘기가“ 너 왜 숨 쉬는 게 그렇게 쌕쌕거리냐?”였다.

242년차 여름에 어느 선배는 일이 그리 많지 않던 날 함께 저녁을 먹게 되면 늘 맥주 한잔의 반주를 하자고 했다. 술을 즐기지는 않지만 맥주 한잔 정도는 괜찮았는데, 이상하게 그 무렵부터 술을 마시면 가래가 끓고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때도 그냥‘ 이상하네’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3년차 초에 회식 자리에 나가 소주 몇 잔을 마신 다음부터 너무 숨이 찼고, 한 선배가 혹시나 해서 청진을 해보니 쌕쌕거리는 천명음(wheezing)이 들렸고, 다음날 아침 호흡기내과에서 몇 가지 검사를 받은 후 천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서 스테로이드를 먹어야 했고,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 계속 약제를 먹고 있지만 비교적 안정적이다. 안 좋을 때는 FEV1이 정상인의 40퍼센트인 적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체중도 줄이고 운동도 하면서 80퍼센트 이상까지 상승했다. 헬스클럽에서 상당한 강도로 트레드밀(Tread Mill)을 30분 넘겨 뛰어도 괜찮은 것을 보면 심폐 기능은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천식을 유발하는 인자가 뭔지 확인하려고 반응 검사(prick test)를 시행했으나 당시 확실한 유발 인자로 밝혀진 것은 없었다. 경험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유발 인자는, 환절기에 감기 걸렸을 때 심해지고, 또 술을마시면 증상이 안 좋아진다는 것이다. 술이 원인인 것 같다고 얘기하면 다들 (너 술 마시기 싫어서 그렇지, 하면서) 비웃는데, 더욱이 의사들이 그렇게 얘기하면 더 서운하다.
의학 논문을 조금만 찾아봐도 알코올이 비만 세포(mast cell)를 활성화시켜서 천식을 유발시킬 수 있으며, 특히 술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첨가하는 보존제들이 중요한 유발 인자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호흡기내과, 알레르기내과 의사들 모두‘술 때문에 천식이 오는 환자를 상당히 많이 봤으며, 술이 유발 인자라고 생각된다면 당연히 마시면 안 된다’고 말한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의‘ 천식은 관리하는 병입니다’라는 공익광고에서 보듯이 천식은 평생 관리하는 병이다. 운동선수 박태환 또한 천식이 있기만 수영에서 금메달을 따듯이, 천식이 있다고 해도 조절만 잘 되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
나 역시, 트레드밀을 30분 넘겨 뛰어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천식이 있다 해도 관리만 잘 하면 흉부외과 의사 생활을 못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한 번은 수술 후 환자가 arrest(심장박동이 멈춘 상태)가 발생하여 심폐 소생술을 시행하는데 천식 발작이 와서 무척이나 힘들었던 적은 있지만 그런 경우는 몇 년에 한 번 발생하는 일이다). 오히려 흉부외과 의사로서 천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흉부외과에서 대상으로 하는 심장 질환이나 폐 질환 환자들은 여러 이유로 호흡곤란을 호소하게 되는데, 나는 천식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숨이 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증상이 나타난 이후부터는, 숨이 차다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힘든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이 병 때문에 담배는 절대 피우지 않고, 담배 피우는 사람 근처에는 잘 가지 않는다. 술을 마시지 않으며, 되도록 공기가 깨끗한 곳에 가려고 노력한다. 어느 교수는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다.
“수술실만큼 공기가 깨끗한 곳이 어디 있나? 평생 여기서 나가지 말라는 뜻이야.”우스개지만 이런 말이 있다.
‘자잘한 병을 달고 다니는 사람은 큰 병에 걸리지 않는다’내가 이 병을 평생 가지고 가야 한다면, 그리고 이것 때문에 평생관리를 해야 한다면 이로 인해 치명적인 병이 걸릴 만한 생활 습관은 적어도 미리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취약한 부분이 있고 병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어쨌든 병을 가지고 살고 또 일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건, 아주 치명적인 병이 아니라는
점에 스스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작성자 -박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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