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가 생각보다 장기화되고 있다. 이렇게까지 메르스가 창궐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한국에는 메르스의 숙주로 알려진 낙타도 없지 않은가! 일이 이렇게까지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그 중에서도 지난 13일 세계보건기구(WHO) 조사단이 지목한 세 가지 원인을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세계보건기구는 너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의료 쇼핑을 문제로 꼽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에 거주하더라도 스스로 위중한 병이라고 생각되면 언제든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서울의 대형병원을 방문해 메르스에 노출된 환자가 지방 곳곳에서 나왔다.

둘째, 다인실로 구성된 병실이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1인실이고 간혹 2인실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4인실, 6인실이 전체 병실의 절반이다. 저렴한 비용 때문에 환자들이 원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정부도 다인실 확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셋째, 가족 간병 문화다. 이를 마냥 나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감염 관리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다. 또 세계보건기구는 문병을 해야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관행도 메르스 감염 확산에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이미 의료계 종사자라면 알고 있던 문제들이다. 그 중에서도 의료공급체계의 부실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전원의뢰서’만 있으면 어떤 대형병원이라도 갈 수 있다. 사실 개원의들은 ‘전원의뢰서 도장찍어주는 사람’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 결과, 대형병원 응급실은 ‘입원 대기실’의 다른 이름이 됐다. 한 의료진은 응급실을 ‘시외버스 터미널’에 비유하기도 한다. 버스가 오면 떠나가는 승객과 병실이 비면 응급실을 떠나는 환자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침대와 의자를 보면 시골의 시외버스 터미널과 흡사하다.

이런 공간에 폐렴환자부터 골절환자까지 뒤엉켜 입원을 대기하고 있으니 자연히 메르스와 같은 감염질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잘못된 의료이용 관행이 메르스의 확산을 부추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와 의료계가 합심해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이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지금처럼 어디에 살든 원할 때 유명 대형병원을 바로 찾는 상황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문제를 바로 잡기 힘들다.

병원들도 이런 문제들을 풀기 위한 해법을 연구해야 한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등록된 보호자의 출입만 허용하는 것이다. 또 병원 방문객에 대한 완전한 통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상부상조와 품앗이에 익숙한 우리 문화를 고려할 때 환자와 가족들의 반발이 심할 수 있으나 환자 안전을 도모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려나가야 한다.

이번 메르스 파동은 정부와 의료계에 큰 숙제를 안겨줬다. 이번을 계기로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의료 수준을 근본적으로 높이려는 노력을 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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