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아파트, 반값 등록금, 반값 사교육비
 
비록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반값'이라는 말에 정책적으로 이용당하고 말았지만, 아직까지도 '반값'이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모를 설렘과 기대감이 생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반값'이란 단어에 아직까지 기대감이 있으시다면, '반값 약값'이라는 말은 어떻게 느끼시는지요?
 
지난 23일자 <조선일보>에는 '반값 약값'에 대한 전면광고가 게재되었습니다. 전국의사총연합(대표 노환규, 이하 전의총)이 게재한 이 전면광고는 비싼 약값에 고민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복제 약값, 선진국 수준으로 낮춰야
 
제약업계 "전의총 자료,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전의총은 이 광고에서 우리나라와 외국의 복제 약값을 비교하며 '외국의 복제약값은 오리지널 약값의 20~40%에 불과한데, 우리나라는 86%로 복제 약값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지적하며 복제 약값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출 것을 주장했습니다.
 
'복제약'은 오리지널 신약의 특허기간이 지나면 다른 제약사들이 동일성분으로 생산할 수 있는 약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복제약은 오리지널 신약에 비해 엄청난 투자비용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오리지널 약값에 비해 매우 저렴한 것이 정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경우, 복제 약값이 오리지널 약값의 16%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쌉니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A회사에서 만든 혈압약이 1알에 1000원을 받은 경우, 특허기간이 만료된 후에는 B, C, D 등 여러 제약회사에서 160원 정도 수준에서 같은 성분의 혈압약을 팝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같은 상황을 적용했을 때, 평균 860원 수준의 높은 복제 약값을 받고 있습니다.
 
노환규 전의총 대표는 "우리나라 정부가 복제 약값을 높게 측정한 이유는 바로 제약업계의 로비 때문"이라며 "복제 약값을 선진국 수준으로 내리게 되면 국내 제약사의 매출이 크게 떨어지게 되고 결국 많은 영세 제약업체들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약값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노 대표는 이렇게 높게 책정된 복제 약값은 고스란히 제약업계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되어왔다고 주장했습니다.
 
노 대표는 "상장사와 코스닥 회사 중 2000년 이후 생산실적이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비제약사의 단순평균 영업이익률이 0.4%인데 반해 제약사는 13.2%에 달하였다"면서, 이렇게 우리나라 제약사의 이윤이 다른 산업체에 비해 높은 이유에 대해 "정부가 국내 제약사를 보호할 목적으로 복제 약값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제약업계 "전의총 자료,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제약업계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국 제약 협회 한 관계자는 "전의총이 23일 게재한 <조선일보> 광고의 통계 자료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면서 "외국의 경우 오리지널 약과 복제 약의 시장 점유율 가중 자료를 사용하는데, 우리나라 자료는 시장 점유율 자료가 아니"라고 통계 비교가 잘못되었다고 반박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오리지널 약값의 가격 자체가 매우 높게 형성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오리지널 약값의 경우 미국의 오리지널 약값의 30%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즉, 미국에서 한 알에 1000원을 받는 오리지널 약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300원에 팔리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복제 약값이 미국보다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소리입니다.
 
두 단체의 주장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유보적입니다. 
 
백영하 보건복지가족부 보험약제과 사무관은 "우리나라 복제 약값 수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작년 7월부터 운영 중인 약가(藥價)관련 연구용역 결과가 4월 말 나오게 되면 복제 약값에 대한 객관적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약값, 낮출 수 있는 방법 또 있다
 
만약 4월 말 발표 예정인 약가관련 연구용역 결과가 제약 업계에 불리하게 나와 약값이 떨어진다 해도 약값이 정말로 "반값"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왜냐하면 환자들이 약국에서 약값을 계산할 때 순수하게 "약의 가격"만 지불하고 약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이크로짓(성분명 : hydrochlorothiazide)'이라는 약이 있습니다. 혈압약 중에 가장 고전적인 약 중 하나로 가장 많이 쓰이는 약 중 하나입니다. '다이크로짓' 한 알의 보험 약값은 10원. 그러나 병원에서 환자들이 30일치 처방전을 받은 뒤 약국에 지불해야 하는 순수 약값은 1200원입니다. 한 달 보험약값은 300원이지만, 환자들은 1200원을 지불해야 합니다.
 
노환규 전의총 대표는 이와 같은 모순된 현상이 약사들이 받는 과도한 조제료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이크로짓' 30일치를 처방 받을 때 약국의 조제료는 9380원인데, 이 금액은 보험공단에서 지불합니다.
 
노 대표는 "약값을 반값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약사들이 받는 조제료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약국에서 약을 처방 받는 경우, 약국은 약국 관리료(방문당)와 조제 기본료(방문당), 복약 지도료(방문당), 조제료, 의약품 관리료 등 다섯 가지 항목의 조제수가를 받는다"면서 "일본의 경우 1개월치 혈압약을 받더라도 우리나라와 같이 30일치 조제료를 받지 않고, 처방일수에 따라 산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의료보험을 실시하고 있는 나라 중 5가지 항목에 대한 조제 수가가 책정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한데, 약국 관리료와 의약품 관리료, 조제료와 조제 기본료의 경우 차이가 모호합니다. 또 조제료와 의약품 관리료를 91일까지 처방일수에 따라 산정하는 것도 다른 나라와 비교해 과도한 비용을 약국에 지불하는 것이란 게 일각의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김마리아 대한약사회 약정팀 차장은 "일본과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체계와 수가체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일본과 단순비교를 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어 김 차장은 "병원과 의원 등의 의료기관에서도 입원일수에 따라 행위료를 받는다"며 조제료와 의약품 관리료 등은 정부에서 고시한 정책의 틀 안에서 합법적으로 따르고 있기 때문에 91일까지 처방일수에 따라 산정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당뇨 500만, 고혈압 700만... 매일 약 먹어야 하는 이들
 

한편 노 대표는 "의약분업 시행 이전에는 국민이 전혀 부담하지 않았던 조제료의 증가가, 현재는 의료보험 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제료는 지난 2008년의 경우 2조 3701억 원이나 지출돼 건강보험 총 진료비의 6.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노 대표는 "올해 건강보험재정 적자가 1조8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건강보험료 대폭 인상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조제료를 일본 수준으로 낮춘다면 보험 재정 부담이 한결 가벼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 차장은 "의약분업 이전과 의약분업 10년이 지난 현재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면서 "약사들의 조제료는 보건복지가족부의 고시로 법에 명시가 되어있고, 약사법에 근거한 보험공단과의 계약 체결에 의해 정당한 수가를 받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국내 당뇨병 환자 수는 500만 명을 돌파한 상태며, 국내 고혈압 환자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성인 인구 3명 중 1명꼴인 700만 명 정도로 추정될 정도로 매일 약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약값 인하로 혜택을 받게 되는 국민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의료계 내부에서 촉발된 '반값 약값'에 대한 논의. '반값'에 대한 논의의 출발이 선거철 정치권의 선거 공약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기대감을 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논의가 시발점이 되어 국민들의 약값을 낮추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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