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6일 미국의 질병관리센터(CDC)의 웹사이트가 갑자기 증가한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해 다운된 일이 있었습니다. "Preparedness 101: Zombie Apocalypse(좀비가 창궐할 때 준비해야 할 것들)"이라는 단 한편의 글 때문이었습니다. 제목만 보더라도 클릭하고 싶어지죠?
내용이 궁금하실 분들은 아래 간단하게 요약한 내용을 참고하세요. 번역에는 청년의사 해외특파원으로 활동 중이신
영화 속 좀비가 전염성을 가지고 확산되는 일종의 질병이라는 것에 아이디어를 얻었군요. 좀비를 앞세워 전염병이 창궐한 재난 상황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쉽게 풀어 쓴 글입니다. 그냥 재미있게 읽으면서 웃어 넘기고 잊어버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은 생각해 볼 것이 꽤 있습니다.
첫째, CDC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이용했다는 점입니다. CDC는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소셜미디어를 활용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오래 전부터 준비했습니다.미 정부 기관 중 가장 먼저 블로그를 운영한 곳도 CDC 입니다. 최근에는 트위터, 페이스 북 등 다양한 SNS도 활용하고 있는데요, 이런 SNS에서 좀비 이야기가 무한 리트윗 되면서 서버 다운이라는 사태를 맞은 것이죠.
정부나 기업들은 대중에게 알려야 하는 정보가 있을 때 광고나 보도자료를 이용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방법입니다만 과거에 비해 수많은 인터넷 미디어, 개인 미디어들이 등장하면서 이런 전통적인 방법의 효과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급속히 성장하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직접 소통에 나서겠다고 일찌감치 판단한 것이죠.
또 주목해야 할 것은 재미있는 이야기 형식이면서도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교과서처럼 나열된 정보와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만약 재난상황에 반드시 알아야 할 대피법이라는 제목으로 허리케인이나 질병이 창궐할 때 이런 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의 글이었다면 이렇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좀비라는 비현실적이지만 굉장히 관심을 끄는 주제를 CDC라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다뤘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죠.
정부기관에서 운영하는 블로그는 운영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정부기관이기 때문에 정보의 정확성, 전문성을 가져야 합니다. 무겁기 쉬운 주제를 재미있는 스토리로 바꾸는 일은 노력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CDC를 비롯해 전문적인 내용을 제공하는 블로그를 보면 실제 전문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례로 CDC의 첫 블로그였던 Health Marketing Musings 운영자는 헬스 마케팅 디렉터(Director, National Center for Health Marketing)였던 Dr. Jay M. Bernhardt가 직접 운영을 했습니다. 이번 좀비 관련 포스팅은 Assistant Surgeon General 인 Dr. Ali S. Khan가 쓴 것입니다.유명 학술지인 BMJ에서 운영하는 Journal Review Blog에서는 2006년부터 Lancet, JAMA, NEJM, BMJ 등 권위 있는 학술지에 실린 최신 논문을 소개해주고 있는데 (헬스로그의 RTS나 카타카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블로그 운영자는 Dr. Richard Lehman이라는 의사입니다. (BMJ Editorial에서 Dr. Richard 를 소개한 것을 보면 옥스퍼드 지역에 있는 GP로 논문 읽는 것을 좋아해서 몇몇 친구들을 위해 논문 정리하던 것을 BMJ와 함께 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전문가들의 소셜미디어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국내 정부 블로그들이 대부분 대학생 봉사자로 운영되다 보니 젊은이들의 톡톡 튀는 발랄함과 재미는 있는데 정부 기관의 전문성과 책임 있는 소통 공간이 되긴 어렵다는 점이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우리의 보건복지부는 따스아리라는 블로그를 2007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라는 도구는 누가 쓰느냐에 따라 활용도가 달라집니다. 음식을 만드는데 칼을 쓸 수도 있지만 사람을 살리는 데 칼을 쓸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죠. 미국 CDC의 좀비 사례는 보건의료 분야에서 소셜미디어 활용과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