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해운대경찰서는 8일 세계교회연합회(WCC) 부산총회를 방해하기 위해 폭발물 설치 허위신고를 한 혐의(공무집행방해)로 WCC 반대집회 참가자 강 모(29)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강씨 등은 지난 달 29일 오전 9시 30분께 부산 해운대구 중동 한 공중전화부스에서 총회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112에 전화를 해 “과격분자로 보이는 사람이 WCC 행사장인 벡스코에 폭발물을 설치한다고 말했다”며 허위신고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신고로 당시 경찰과 군인 64명이 벡스코에 출동해 수색작업을 벌였다. (11월 8일자 부산일보) 세계교회협의회(WCC,World Council of Churches) 제 10차 부산 총회가 지난 달 30일 개막해 이 달 8일까지 열흘 간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렸다. 기독교인은 물
수목드라마 메디컬 탑팀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굉음이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베란다로 나가보니 고가도로에 승용차가 앞 범퍼가 찌그려진 채 서 있었다. 즉시 112에 신고 전화를 걸었다. 사고 장소를 설명하고 나니 운전석 문이 열리더니 두사람이 천천히 나왔다. 한 사람은 다리를 저는 것 같았다. 안전벨트는 매었겠지. 많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서 경찰차와 119 앰뷸런스와 견인차가 와야 할텐데. 다행히 지나가던 차량이 멈추어 서더니 내려 다친 데는 없는지 확인을 하고는 도로에 흩어진 파편들을 한쪽으로 치운다. 교통 싸이카가 오니까 그제야 제 갈 길을 간다. 앞서 그냥 지나쳐버리는 차들도 있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같은 분이다. 이런 게 인간의 본성 아닐까. 휴대폰으로 다시 연락이 와서 사고현
“영화가 뭐라 생각해?”“움직이는 그림이잖아.”열여덟 번을 맞이했던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났다. 사람들은 흔히 ‘영화의 바다’에 빠졌다고 말한다. 10월3일 개막작인 를 시작으로 폐막작인 에 이르기까지 나름 열심히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영화의 바다’를 허우적거리며 돌아다녔다. 영화표를 날짜별로 정리해보니 모두 열여덟 편을 관람했다.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 올해부터 다시 공휴일이 된 한글날 덕분에 꽤 많은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가졌다. 평일은 근무관계로 저녁에 상영하는 한 편만을 볼 수밖에 없었고, 휴일엔 그야말로 메뚜기 꼴이 되었다. 내가 본 영화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10.4 (1) 애비 Twisted Daddy 한국 메가박스 해운대 Table M관10.5 (2) 화장실 블루스
어버이날이다. 유난히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이기도 하고, 홀로 되신 어머니가 안쓰러운 날이기도 하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이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이런 날을 통해 부모님의 은공을 생각하면서 전화라도 안부를 전하고 찾아뵙는 날이다. 교편을 잡고 있는 누나가 9교시 수업이 없는 날이라 하루 앞당겨 어제 저녁에 본가로 갔다. 누나는 퇴근길에 자갈치에서 도다리회를 사고, 누리는 소고기를 샀다. 미리 카네이션 바구니도 준비했다. 이모부가 어머니는 오래사시겠다고 하니까 ‘누구 욕보일 일 있나?’고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그래도 어머니가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오늘 병실 회진을 도는데 어르신들이 하나같이 왼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았다. 병원에서 달아드린 것이다. 대부분 누워 지내시는 분들이라 거울
쑥국이 나왔다. 점심 식단으로. 병원 직원 중 누가 어제 금정산에 가서 깨 온 것으로 국을 끓였다고 식당 아주머니가 말했다. 봄 향기가 물씬 배어났다. ‘바람 든 달’이라고 결혼도 하지 않는다는 음력 2월의 날씨는 일교차가 크다. 동장군과 세찬 북풍도 완연한 봄기운에는 속절없다. 계절의 변화에는 한 치의 어김도 없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건만 어기는 일이 다반사다. 계절 따라 누구에게나 슬픔의 기억들과 가슴앓이가 있게 마련이다. 나의 경우는 삼월, 사월과 오월이 그러하다. 마음보다도 몸이 먼저 알아낸다. 3.18 부미방 사건. 삼십년도 더 지났어도 고문당하던 그때의 기억이 오늘 일처럼 뚜렷하다. 제주 4.3이 그러하고, 5월 광주가 그러하다. 꼭 그 맘 때쯤이면 몸이 먼저 말을 한다.
한 달 전부터 입원해 있던 J씨가 상태가 좋지 않아 전에 입원했던 종합병원으로 구급차를 타고 갔다. 그는 만으로 68세다. 헌병 출신으로 뉴질랜드에 이민 간지가 오래되었다. 부산에 사는 동생을 만나러 왔다가 짧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자리에 눕고 만 것이다. 월남 참전으로 고엽제 환자인지라 보훈병원에 입원했다가 어찌어찌하여 내가 일하는 요양병원의 독실을 차지하게 되었다. 진료의뢰서에 적힌 그의 병명은 만성 신장질환, 상세 불명의 만성콩팥 기능상실, 기타 명시된 말초혈관 질환, 당뇨, 허리 디스크, 통풍관절염, 뇌졸중, 고혈압, 오른쪽 엄지발가락 괴사 등이다. 환자의 상태가 요양병원에서 보기엔 버거워 보였지만, 병원관계자와 면도 있고 외국 국적이라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문제도 있어 내가 보게 되었다. 환자
황민(생후 100일)은 베트남 이주노동자 부부의 아들이다. 저출산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됐다. 대학병원에서도 산과가 없는 경우도 있으니 그 심각성이 크다. 알로이시오 기념병원에도 산부인과가 없어졌다. 분만하는 건수가 해마다 줄어 적자를 보전하기가 더 이상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30년 동안 산부인과에서 일하시던 김상일 선생님이 남천동의 가족보건의원의 원장으로 가셨다. 그동안 이주노동자들이나 다문화가정에서 분만과 제왕절개수술을 옛 구호병원에서 무료로 받다가 산부인과가 없어지자 애로사항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연락을 해오면 분만인 경우는 김상일 선생님께 전화로 부탁을 드린다. 황민이도 그렇게 연결을 해서 나은 아기다. 부산 노동사목 상담실장인 막달레나가 전화를 했다. 황민이를 예방
석호는 올해 나이가 만으로 여섯 살입니다. 선천성 심장기형이 있어 심장수술을 받은 수술자국이 가슴 한 가운데에 있지요. 수녀님 손을 잡고 진료실에 왔을 때 벌써 눈물을 그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귀 뒤 목 부위에 생긴 고름집이 탱탱 부어올라 아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석호는 그동안 다섯 차례나 절개 배농술을 받았습니다. 고름을 빼내고 심지를 넣어 치료를 해도 반복해서 재발하고는 했습니다. 처음수술 때 너무 곪아 있었고, 고름의 위치가 안면신경이 나오는 뿌리부근에 있었습니다. 재발하자, 수녀님이 D대학병원에 가서 전신마취 하에 배농술을 시행했지요. 보름간 입원치료를 했으나 다시 재발하여 지난 해 3월에 수술을 했습니다. 약 열 달 만에 다시 재발을 했습니다
며칠 전 중년 남자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왔다. 추레한 차림새를 한 환자는 의자에 앉자 양말을 벗었다. 오른쪽 발등이 많이 부어 있었고, 숨을 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발가락이 썩는 냄새가 났다. 진단을 내릴 필요도 없다. 보니 당뇨발(DM Foot)이다. 먼저 발가락뼈의 손상이 없는지 엑스레이 사진부터 찍었다. 사진에는 새끼발가락이 이미 상해있었다. “아니, 이리되도록 병원에 한 번 안 가셨나요?” “저는 8년째 노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당뇨 합병증으로 발가락이 상하고 피부가 썩고, 염증이 발등까지 부어올랐으니 입원치료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혈당 재어보신 적이 언젭니까?” “6개월이 넘었어요. 당뇨약을 먹지는 않았고요. 하이(High, 혈당체크 불가)로 나왔어요.” “입원을 해 드릴
벌써 12월이다. 참 세월이 빠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한 무료진료소고 문을 연 지도 세 해가 넘었다. 일차진료를 보는 곳이라 수술이나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인 경우는 알로이시오 기념병원에 의뢰해 진료를 이어왔다.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었다. 처음 일을 벌일 때는 얼마나 가겠냐, 무리다,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재정도 안정되고 사업을 김해지역까지 확대하여 잘 진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격려와 도움으로 지금까지 왔다. 최근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그동안 이주노동자들이 가톨릭센터에서 영어미사를 마치고 같은 건물 6층에 있는 진료소를 찾았다. 접근성을 고려해서 가톨릭센터에 터를 잡았던 것이다. 가톨릭센터 소극장은 성당이 아니다. 그동안 이주노동자들이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로마황제들이 전쟁에 이겨 잔치를 베풀 때 전사한 적들의 시체를 잔치 마당에 늘어놓고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며 건배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렇게 살아서 잔치를 벌이지만, 언제 저 해골 꼴이 될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뜻으로 외쳤다고 한다.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며 경건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경구이리라. 벽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가 조금 못되었다. 생전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내게 간밤의 꿈자리가 뒤숭숭하여 뒤척이다 새벽녘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을 나서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의 차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쌩쌩 달리는 것이 아니라 숫제 보다 날아간다. 병실에 친한 친구의 장인이 누워있다. 산소를 흡입하고, 수액을 주렁주렁 달고
어제저녁,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 회원이며, 국경 없는 의사회(MSF) 일본지부 이사회 임원인 김나경 선생의 초청강연회가 생명의 전화에서 열려 다녀왔다. 2001년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이라크 어린이에게 폭탄이 아니라 의약품을” 이라크 의료지원, 인의협의 베트남 평화 의료연대와 함께 현지 사전답사 및 사업조사, 파키스탄 지진 피해 지역 의료지원을 했으며 2007년 이대 목동병원에서 가정의학과를 마치고 태국 마히돌 대학교 열대 의학 과정을 수료하고 2008년부터 국경 없는 의사회 활동을 했다. 예맨 내전 후 병원 복구사업, 에티오피아 영양실조 사업, 우간다 HIV/AIDS, 결핵 사업, 올해 4-6월 석 달 동안 말라위 홍역 전염병 관리 및 예방사업을 마치고 잠시 귀국한 틈을 타서 강연회를 갖게 되었다. 인
서울지역 : CGV 명동역, CGV 대학로, CGV 압구정, 아리랑씨네센터 경기지역 : CGV 동수원 인천지역 : 영화공간주안 대전지역 : CGV 대전 대구지역 : 동성아트홀 부산지역 : CGV 부산서면, 아트씨어터 CNC(가톨릭센터) 올 1월에 돌아가신 고 이태석 신부님의 남수단 톤즈 사랑에 대한 영화가 상영된다고 합니다. 지난 4월 11일 KBS 스페셜을 통해 방영되어 많은 분들께 깊은 감동을 주었던 '울지마 톤즈' 가 극장판(제작사 마운틴 픽쳐스)으로 제작되어 9월 9일 개봉을 한다고 합니다. KBS구수환 PD와 제작진(작가 윤정화님, 촬영 김성미님)은 방송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영화를 통하여 보여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준비하였으며, 아나운서 이금희 씨가 내레이션을 맡아 방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불안한 얼굴을 한 부시홍(38)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칠월 말이었다. 무더웠던 그날, 노동인권연대 운영위원인 곽동혁 노무사가 손수 차로 순천에서 환자를 데리고 왔다. 부시홍씨의 딱한 사정은 몇 달 전부터 곽 노무사에게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산재신청을 했는데 산재로 인정되지 않았고, 그는 밀린 병원비 1200만원 내지 못하여 쫓겨나듯이 순천의 병원에서 짐을 싸야만 했다. 결국 재심을 신청했고, 만약 이마저도 기각이 된다면 행정소송을 할 예정이다. 법률적 소송기간 동안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알로이시오 기념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국제신문 박수현 기자산업연수생으로 5년 전 한국에 온 부시홍씨는 경기도, 전라남도, 김해에서 용접공과 막노동꾼으로 일하며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수빈이는 지난 2월에 오산에서 다리가 마비되는 증상으로 제대로 걷지를 못해 진단결과 요추 4, 5번 전방전위증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4개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허리를 제대로 구부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빈이는 소년의 집 출신으로 그동안 수녀님들의 사랑으로 성인으로 자라 직장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당분간 알로이시오병원에서 물리치료도 받고 회복되기를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어느 날 수빈이가 발톱을 빼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양말을 벗기고 발톱을 보니 왼 엄지발가락이 두꺼우면서 굽어져 있었습니다. 손, 발톱 구만증(Onychogryphosis)였습니다. 이는 반복되는 외상이나 곰팡이 감염으로 잘 생깁니다. 다른 발톱도 많이 자라나 있었습니다. 허리를 구부리지 못하니 그동안 발톱이 많이 자랐는데도 깎지를 못했습니
어버이날 아침은 일찍 서둘러야했다. 병원에 들러 입원환자를 둘러보고는 가톨릭센터로 갔다. 오늘은 미리암(29)을 고향인 필리핀 세부(Cebu)로 보내는 날이기 때문이다. 미리암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것은 올 1월이었다. 지난해 12월 말에 언양의 모병원에서 분만 중에 의식이 반혼수 상태로 심장마비가 와서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수술을 했으나 아이만 살리고, 산모는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나야할 찰스는 엄마 얼굴도 한번 보지도 못하고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 남편인 제니(36)가 울산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런 딱한 경우가 있을까. 2010-2-28 가톨릭신문 [사랑은 나눌수록 커집니다] 출산 전에 딱 한번 가톨릭 노동상담소에서 와서 어느 병원에서 출
며칠 전 접수실 안젤라 수녀가 나를 불렀다. 초콜릿 두 상자를 내밀었다. 이번에 미국 카네기 홀에서 연주를 하고 돌아 온 합주부 학생들이 알로이시오 기념병원 식구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으로 보내왔단다. 부산 소년의 집 관현악단(BSO,·Boystown Symphony Orchestra)이 지난 2월 11일에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섰다. 재학생 40명과 졸업생 60명등 100여명이 연주를 했고, 지휘는 정명훈 씨 셋째 아들 정민 씨가 지휘를 맡아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는 보도를 접했다. 유럽에서 활동 중인 소프라노 이명주 씨와 테너 김재형 씨가 협연을 했고,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주요 아리아와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 마단조 작품64를 들려 주었다.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
‘오늘 5시 35분 선종하셨습니다.’ 지인에게서 연속으로 문자가 왔다. 어제는 (사)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기부금영수증도 보내오면서이태석 신부의 쾌유를 위하여 많은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소리람? 곧이어 장례미사에 일정에 대한 문자가 날아들었다.아,고통 중에 돌아가셨구나.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환자진료를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태석(1962-2010) 세례자 요한신부는 나와 동갑이다. 나는 지금껏 딱 한 번 그를 만났을 뿐이다. 같은 송도성당에 다니는 그의 맏형과 친하게 지냈다. 동생도의사라면서 군의관 생활을 마치고 1991년에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했으며, 로마 살레시오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사제서품을받았다고 했습니다. 송도성당 출신이라 사제가 되고 첫 미사를 성당에서 마치
주교님을 모시고 축복식을 가진 지가 엊그제 같은데 도로시의 집 무료진료소가 벌써 두 살이 되었다. 도로시의 집은 이주노동자센터 사업 중 의료팀이 꾸려가는 무료진료소다. 노동사목 의료팀의 이주노동자 진료는 2003년 11월 서면성당에서 의료상담의 형태로 시작되었고, 2004년에 가톨릭센터로 노동사목 사무실이 옮겨오면서 센터 5층 상담실 공간에 기초의약품과 진찰책상 하나 달랑 놓인 작은 규모였지만 무료진료소의 틀을 갖추게 되었다. 삼년 뒤 센터 6층에 의료팀을 꾸려 일반진료와 투약, 치과진료, 한방진료와 물리치료, 간단한 수술까지 할 수 있는 클리닉 수준까지 되었으며, 올 봄부터 김해 임호성당의 이주민지원센터에도 주일마다 의료진과 의약품 지원을 하고 있다. 도로시의 집이 두 살을 맞이한 것은 50명이 넘는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