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유전상담사로 일하면서 마음이 아픈 일들이 더러 생기곤 하는데, 그 중 하나는 내가 전에 만났던 환자분이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을 때다. 3년 전, 한 부부를 만났었다. 아내분이 췌장암 말기이셨고, 이 부부의 슬하에는 딸이 한 명 있었다. 임상 실험에 참여해 항암 치료를 받고 계셨지만, 이미 암이 온몸에 퍼진 상태라 완치의 희망은 하나도 남지 않았었고, 유전상담과 유전 검사는 딸을 위해 진행을 하고 싶다고 하셨었다. 상담이 끝난 후, 다음 항암 치료 때 혈액 샘플을 채취하는 것으로 정하고 돌아가셨는데,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시
지난 시간에 CA19-9라는 혈액검사에 대해 설명드렸어요. 이 수치는 췌담도암 환자에서 상승되는 경우가 많아서 독자분들이 흔히 받으시는 건강검진에도 종양표지자라는 이름으로 대부분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 검사의 '양성예측률(이상수치를 보였을 때 실제 질환이 있을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너무 신뢰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수치가 상승한 검진자들만 다 모아서 찾아보면 결과적으로 실제 췌담도암은 1% 남짓이라는 것이라는 연구결과와 함께요. 그래서 췌담도암이 진단된 환자의 추적관찰용으로 의미가 있는 수치이지(췌담도암 수술 후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국내 통계에 따르면 1970년대초 100만명이던 신생아 수는 2021년 1/4토막 난 26만명이다. 지난 40~50년간 신생아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다.하지만 이런 상황이 개선될 조짐이 전혀 없다. 오히려 15~49세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마저 매년 감소하여 올해는 0.7명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수년간 OECD국가 중 가장 낮은 합계출산율이다.더욱이 이에 영민한(?)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에 지
UCLA 소아 유전학과에서 유전상담사로 일할 당시 근육병 증상이 있어서 근육병 관련 유전자 패널 검사부터 시작해서 전장엑솜시퀀싱(Whole Exome Sequencing; WES)까지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했던 환자가 있다. 남자 환자였고, 20대 초반이었는데, 내가 이 환자를 맡게 될 당시에는 이미 혼자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심각해져서 시설에 들어가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 환자는 증상이 발현되기 불과 1년 전까지 아주 건강한 청년이었다. 부모님은 모두 멕시코에 계시고 혼자 미국에 와 있는 상황이었다.이 환자가 누군가의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가 집계한 2019년 국가암등록통계 참고자료에 따르면 유방암은 2016년 연간 신규 발생 환자수가 2만명을 넘어서며 2019년 기준 국내 여성 암 1위를 차지하고 있다(2007년 이후 4.3% 증가율).다행히 유방암의 5년 상대생존율(2015년~2019년 발생 암환자 기준)과 10년 상대생존율(2010년~2014년 발생 암환자 기준)은 각각 93.6%, 88.6%로, 다른 주요 암에 비해 높아 긍정적인 예후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암 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되어 병기상 4기로 분류하는 전이성 유방암의 5
작은 키를 주소로 내원하는 환자의 범위는 넓다.10여년 전만하더라도 성장 클리닉은 키가 같은 나이와 성별을 기준으로 해서 앞에서 3번째 이내에 해당하는 키(3백분위수)를 가진 환자들을 대상으로, 성장호르몬 자극검사를 실시하여 성장호르몬 결핍의 유무를 검사 하는 것이 주된 진료였다. 물론 이때에도 질환이 아닌 단순히 키가 작은 환자들이 성장호르몬 투여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지금은 아마도 후자에 해당하는 환자 비율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키 성장과 관련된 진단과 치료 개념이 성형적인 성격을 띠는 셈이다.저신장
위암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고 위험한 암이다. 한해 약 25만명의 새로운 암환자가 발생하는데, 그 중 3만건 정도(약 12%)가 위암이며, 남성암 중 1위, 여성암 중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보통 60대 중반에서 가장 흔하지만 최근에는 70대 이후의 고령환자나 40대의 젊은 위암환자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위암은 내시경 의사가 위의 점막조직 일부를 떼어내고 이를 병리의사에게 보내 현미경 검사를 하여 진단된다. 과거 조영제를 마시고 찍는 엑스선 검사는 비정상적인 영상 소견을 통해 위암을 의심하는 방법이지만 결국 내시경을 해야만
선천성 희귀질환으로 투병하는 두 명의 아이가 있다. 두 아이 모두 혼자서 걷는다. 그런데 걷다가 낮은 턱 하나를 만나게 되더라도 이 아이들은 넘지 못하고, 그 턱에 걸려 넘어지곤 한다. 넘어야 한다는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기능적으로 ‘걷는 행위’ 자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걷다가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장애물을 인지하고 이에 대처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이 스스로 걷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이 장애판정을 받게 된다면 어떤 유형을 받게 될까?동일한 희귀질환, 유사한
2017년 2월 28일, 희귀질환의 날을 맞아 의회 연설을 진행 중이던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메건 크라울리와 그녀의 아버지 존 크라울리 부녀를 소개 했다.메건 크라울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유전적 이상으로 폼페병( Pompe disease)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던 환자였다. 그녀의 아버지 존 크라울리는 메건과 메건의 남동생 패트릭까지 두명의 자녀가 폼페병 환자로 진단되어 2살을 넘게 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자 직접 폼페병 치료체를 개발하는 신약개발 기업을 창업해 치료제 개발에 전력을 다했다.존의 노력으로 결국 폼페병 치료제가
희귀질환은 말 그대로 드물다는 의미일 것이다. 영어로는 ‘Orphan disease’라고 한다.‘Orphan’은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단순히 부모를 잃은 고아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원래 그리스어 ‘Orphanos’에서 유래했고 부모가 없는 아이 또는 아이가 없는 부모를 의미했다. 그러나 세월을 거치며 이 단어는 여러 은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예를 들면 가난, 자유를 박탈당하 작업장의 노예, 양념이 되지 않은 음식, 더 이상 차모델이 생산되지 않는 차종 등등. 즉, ‘Orphan disease’는 드물다는 의미도 있지만 무시되고
린치 증후군(Lynch Syndrome)은 클리닉에서 유전 유방 난소암 증후군(Hereditary Breast and Ovarian Cancer Syndrome) 다음으로 자주 환자분과의 대화에서 거론되는 질환이다. 유전성 대장암과 관련된 유전 질환 중 제일 흔하게 발견되는 증후군인데, 1900년도 초반에 미시간 주립대의 한 병리학자에 의해서 처음 형용이 되었고 관련된 유전자는 1990년도 초반부터 하나씩 발견이 됐다. 몇 년 전 진행된 연구에 의하면 미국에서 진단되는 대장암 중 2~4%의 환자들이 린치 증후군을 가졌다고 한다. 이
외래에 한 환자분이 들어와 물어보십니다. “얼마전에 친구가 췌장암으로 진단받고 2달만에 죽었어요. 너무 걱정이 돼서 저도 췌장검사를 받아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저는 말씀드립니다. “걱정이 많이 되시죠? 그런 검사를 췌장암의 선별검사라고 하는데, 여러가지 방법이 있으나 저는 보통 혈액검사와 영상의학적 검사, 그러니까 쉬운 말로 피검사와 췌장 사진을 한번 찍어보는 검사를 권유드립니다.” 거의 매일같이 외래에서 반복되는 대화. 오늘은 이 췌장암의 선별검사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선별검사(screening test)라는
미국에 있는 대학병원에는 다학제 클리닉들이 많다. 22q 클리닉, 두개안면(craniofacial) 클리닉, 다운증후군 클리닉, 자폐 클리닉, 발달장애 클리닉, 엘러스 단로스 증후군 클리닉, 말판 증후군 클리닉, 치매 클리닉, 간질 클리닉, 리소좀축적병 클리닉, 대사질환 클리닉 등 이름만 대면 웬만한 클리닉들은 다 있다. 다학제 클리닉은 각 질환 혹은 증상에 따라 필요한 과의 뜻이 맞는 의료진들이 함께 운영해 나간다.예전에 UCLA에서 일할 때 22q11.2 결실증후군이 있는 환자들을 위한 22q 클리닉을 운영한 적이 있다. 이 클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 성장호르몬과 갑상선 호르몬으로 대표되는 내분비계의 역할 못지않게, 정상적인 신장 기능은 특히 영·유아기 시기의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만성 신부전으로 인한 저신장증은 성장호르몬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며, 의료 보험 적응증의 대상 질환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실시하는 신장질환 screening 진단 프로그램은 신장질환의 초기 증상·징후인 혈뇨, 단백뇨, 고혈압, eGFR 감소 등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어서 사구체 질환으로 인한 소아 연령에서의 만성 신부전의 발생 빈도를 현저하게 감소시켰다. 만성신부전 환자에게
요즘 들어 개인 의뢰 유전자 검사 서비스(Direct to Consumer Testing, DTC)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는 ‘23andMe’라는 회사를 비롯해 Ancestry.com, MyHeritage 등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나의 혈통에 대해 그리고 건강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회사들이 여럿 있다. 23andMe는 2006년에 설립된 회사로 미국 DTC 시장에서 인지도가 제일 높은 회사 중 하나다. 하지만 23andMe는 2013년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로부터 광고한 내용대로
지난 시간에 급성췌장염에 대해 설명을 드렸어요. 다시 짧게 정리해보면 우리가 먹은 음식을 소화해야 할 소화액이 여러 이유로 인해 췌장 밖으로 터져 나와서 주변장기를 녹여버리는 것이었죠.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하지요.급성췌장염이 발생하는 원인은 굉장히 여러 가지가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진료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급성췌장염 원인의 대부분은 술과 담석입니다. 술이 소화액을 모아두고 있던 췌장의 벽을 파괴해서 그 안에 담긴 소화액을 흘러내리게 하고 그리고 담관으로 내려온 담석이 인접한 췌관을 막아서 소화액이 췌관을 역류하여 벽을
나는 이비인후과 의사다. 이비인후과 중에서도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을 주로 보는 이비인후-두경부외과 전문의다. 앞으로 ‘이명철의 갑상선-두경부암 이야기’를 통해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해 독자들이 궁금해할 이야기들을 전달할 예정이다. 첫 시간인 만큼 이비인후-두경부외과를 찾을 때 도움이 될 배경지식을 조금 알려드리고자 한다.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본 사람들이라면 ‘어느 과를 가야하지?’라고 한번쯤 고민해본 사람들 많을 것이다. 정말로 요즘은 몸이 불편할 때 어느 과를 찾아가야 하는지 헷갈릴 정도로 과가 많다. 많을뿐더러
Sex와 gender라는 단어 모두 우리나라 말로는 ‘성별’로 번역된다. 하지만 성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요즘 시대에는 성별과 관련된 용어들이 더 디테일해지고 있다. Sex라는 단어는 생물학적인 성, 즉 가지고 태어나는 성을 의미하고, gender는 한 사람이 자신이 속한 사회와 문화 속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사회적인 의미의 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엔 여기에 더해 gender expression, gender identity, LGBTQIA2S+, nonbinary, variations of sex
오전 진료가 없는 어느 날 아침.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향기와 함께 눈앞에 불쑥 나타난 오륙도가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오륙도는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말이다.교수 시절을 되돌아보면, 새로움과 나아감의 무한 되풀이라는 표현이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의과대학의 경우 전공 분야에서 본인의 연구 업적과 임상적 경험들을 객관적으로 평가 받는 확실한 방법은 주로 관련 논문의 출판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며, 그 중에서도 Impact factor가 높은 SCI급 의학저널에 발표될 경우 더욱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불과 몇 년 전만
국가신약개발사업단 ‘2022년 상반기 FDA 승인 현황’ 리포트에 따르면 이 기간에 FDA 승인된 신약은 총 16건이며, 이 중 절반인 8건이 희귀질환 치료제다. 2016년 4개에 불과하던 희귀질환 치료제들은 해를 거듭하며 FDA 승인 건수를 늘려왔고, 2019년에는 항암제 승인 건수의 2배가 넘는 치료제가 시판 허가되는 등 현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많은 제약사가 희귀질환 치료제 시장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어쨌든 희귀질환 중 단 5%만이 치료제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전세계 희귀질환 치료제 시장이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