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자신이 받아본 유전 검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다시 검사해달라던 환자분을 만났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엄마가 메이오 클리닉 (Mayo Clinic)에서 심장 관련된 임상 실험에 참여 하셨는데 어쩌다 보니 BRCA2 유전자 검사를 받으셨다는 거다. 그런데 웬걸, 병적 변이가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아슈케나지 유대인도 아닌데 아슈케나지 유대인에게서 발견되는 변이로. 그 후에 환자도 주치의의 도움을 받아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이 나와 유전 상담을 받으러 오신 거 였다.처음엔 웃으며 가볍게 대화를 시작했지만 이런 사정을 얘기해
"가족 중에 암에 걸리셨던 분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어떤 암이었나요? 몇 세에 발병하셨나요? 어떤 치료를 받으셨는지 혹시 기억하세요?"유전상담을 위해 내원한 환자분께 내가 기본적으로 물어보는 질문들이다. 암 유전 상담의 핵심이라 볼 수 있는 유전적 암 증후군 위험 평가는 개인 병력도 큰 역할을 하지만, 가족력도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 가족력 청취를 할 때는 기본적으로 3대에 걸쳐 환자, 환자의 형제, 자매, 사촌들, 부모님과 부모님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조부모님의 병력 조사를 하게 된다. 환자들이 내원해 주기
“저희 딸은 괜찮을까요?” 유방암, 자궁내막암, 난소암 등등 여성암에 걸렸거나 가족력이 있어 유전상담클리닉을 방문해 준 분이 자주 묻는 질문이다. 혹여나 본인의 암 병력, 가족 암 병력이 딸에게 피해를 끼칠까 노심초사하고, 또 어떤 분들은 눈물을 보이곤 한다. 딸을 가진 엄마로서는 내 딸은 이런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너무나 당연한 마음이리라. 자식이 없는 나로서는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겠지만, 최대한 헤아려보려 하며 그 부분에 대해 상담을 드린 후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근데, 아드님도 있으시죠~” 하고. 그
미국에서는 9월이 난소암 인식의 달이다. 며칠 전 만났던 여동생이 난소암으로 돌아가셨다는 환자분께서 난소암 인식의 달을 맞아 청록색으로 매니큐어를 칠해봤다며 보여주셨다(난소암 상징으로 청록색 리본을 쓴다). 유전 상담이라는 직업을 택하기 전까지는, 암 유전상담에 대한 교육을 받을 때까지는 난소암이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었다. 지금은 난소암이라는 단어를 듣기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미국 국립 암 연구소 (National Cancer Institute)에서 제공하는 SEER(Surveillance, Epidemiology, a
“선생님, 저는 제일 큰 검사로 해주세요!” 많은 환자분들이 검사에 대해 상담해드릴 때 하는 말이다.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너무나 이해가 가지만 과연 제일 큰 검사가 이 환자분한테 제일 좋은 검사일까? 최근 들어 유전적 암 위험도와 관련된 연구가 많이 진행되면서 시험소에서 제공하는 검사 가능한 유전자의 개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2012년도 즈음 만 해도 유방암 관련 유전 검사라고는 대부분 BRCA1, BRCA2 유전자에 대한 검사가 전부였는데, 지금은 적어도 12개의 유전자가 포함된 검사를 권장해 드린다. 또 Th
가만히 있다가도 심장이 갑자기 100미터 전력 질주를 한 것처럼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식은땀이 흐르고, 갑자기 이러다가 죽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이 떠오르며 참을 수 없이 괴롭다. 몇 달 전 고혈압 진단을 받고부터 간혹가다 이런 짧지만 지옥 같은 시간들이 찾아온다. 상담도 받기 시작했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간간이 즐거운 일들도 하며 잘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기어이 공황장애가 오고 만 것이다.여기까지만 보면 누가 봐도 이 환자는 일에 관련된 스트레스로 인해 공황장애에 걸린 환자로 보인다.
며칠 전, 유방암 클리닉에서 젊은 환자분을 만났다. 33살에 많이 어린 나이인데다가 1살배기 딸이 있으시다고 했다. 처음 인사말을 나눌 때에는 밝은 얼굴로 인사를 나누어서 암 진단을 받으셨는데도 굉장히 씩씩하시구나 생각했는데,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시고, 눈물까지 보이시는 거다. 그럼 그렇지, 어린 나이에 13개월짜리 딸이 있는데 암 진단을 받으면 당연히 막막하시겠지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얘기를 하다 보니, 자녀를 적어도 한 명은 더 낳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항암 치료를 시작하기 전 인공 수정을 위해 생산력 보존 치료(Fertili
“변이가 발견되었습니다.” 유전 검사를 진행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안 좋은 결과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 것 같다. 그렇지만 유전 변이라는 것이 언제나 안 좋은 건 아니다.사람들은 각각 30억 개의 염기쌍 (base pairs)을 가지고 있는데, 두 명의 다른 사람들의 유전자를 비교했을 때 1000 base pair에 1개꼴로 서열이 다르다고 한다. 이런 유전적 변이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각각의 개성을 가진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2003년에 Human Genome Project를 통해서 사람의 유전자 지도를 만들었다고는 하
최근 들어 유전 검사 가이드라인이 확장되고, 검사 비용이 저렴해지면서 한 번에 여러 개의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는 패널 테스팅 오더가 증가하고 있다. 계속해서 유전 암과 관련된 새로운 유전자들이 발견되는 것 또한 물론 이 트렌드에 기인한 것이다. NGS(Next Generation Sequencing)가 개발되고, multi gene panel (여러 개의 유전자를 한꺼번에 검사하는 패널)이 자주 이용되기 시작한 건 2012~2013년쯤으로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전에 비교적 한정된 검사를 진행했을 때에는 -BRCA1, BRC
처음 유전상담사로 일을 하게 되면서 했던 고민은, 어떻게 해야 다른 의료진들과 협력하여 더 많은 환자들이 암 유전상담 서비스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였다. 요즘 들어 내가 더 자주 하게 되는 고민은, 환자들이 유전 암 증후군 진단을 받으신 후의 일들에 대한 것이다. 유전 암 증후군을 가진 환자들을 진단하는 것도 환자의 치료와 검진을 위해 매우 중요하지만, 진단 후 케어는 더더욱 중요하다.유전상담 클리닉에 따라 유전상담사가 환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가질 수도 있고, 단발적인 관계를 가질 수도 있는데, 우리 클리닉은 주로 단발적인 관계가
유전 질병의 요인이 되는 유전자의 검사가 시작된 초반에는 질병의 증상이 심한 환자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한 유전자에 병적 변이가 있을 때 질병과의 연관성이 뚜렷하거나 질병의 위험률이 매우 높은 유전자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유전적 암과 관련된 유전자 중에서의 대표적인 예가 BRCA1과 BRCA2이다. 이 유전자들은 고위험군 유전자들로 분류되며, BRCA1이나 BRCA2 유전자에 병적 변이를 가지고 있는 환자들은 대중들보다 유방암, 난소암, 전립선암 등 여러 종류의 암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유전자 검
암 유전상담사로 일하면서 마음이 아픈 일들이 더러 생기곤 하는데, 그 중 하나는 내가 전에 만났던 환자분이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을 때다. 3년 전, 한 부부를 만났었다. 아내분이 췌장암 말기이셨고, 이 부부의 슬하에는 딸이 한 명 있었다. 임상 실험에 참여해 항암 치료를 받고 계셨지만, 이미 암이 온몸에 퍼진 상태라 완치의 희망은 하나도 남지 않았었고, 유전상담과 유전 검사는 딸을 위해 진행을 하고 싶다고 하셨었다. 상담이 끝난 후, 다음 항암 치료 때 혈액 샘플을 채취하는 것으로 정하고 돌아가셨는데,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시
린치 증후군(Lynch Syndrome)은 클리닉에서 유전 유방 난소암 증후군(Hereditary Breast and Ovarian Cancer Syndrome) 다음으로 자주 환자분과의 대화에서 거론되는 질환이다. 유전성 대장암과 관련된 유전 질환 중 제일 흔하게 발견되는 증후군인데, 1900년도 초반에 미시간 주립대의 한 병리학자에 의해서 처음 형용이 되었고 관련된 유전자는 1990년도 초반부터 하나씩 발견이 됐다. 몇 년 전 진행된 연구에 의하면 미국에서 진단되는 대장암 중 2~4%의 환자들이 린치 증후군을 가졌다고 한다. 이
요즘 들어 개인 의뢰 유전자 검사 서비스(Direct to Consumer Testing, DTC)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는 ‘23andMe’라는 회사를 비롯해 Ancestry.com, MyHeritage 등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나의 혈통에 대해 그리고 건강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회사들이 여럿 있다. 23andMe는 2006년에 설립된 회사로 미국 DTC 시장에서 인지도가 제일 높은 회사 중 하나다. 하지만 23andMe는 2013년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로부터 광고한 내용대로
우리 팀 내에서 자주 농담 삼아 말하는 문장이 있다. “It’s always the dad” (분명 아빠일 거야). 우리는 의심스러운 가족력을 가지지 않은 환자인데, 어린 나이에 유방암에 걸려서 유전 상담 클리닉에 찾아오시거나, 유전성 유방 증후군이 발견되는 환자들을 많이 만나고 나서 이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이런 환자분들의 가족력을 들여다보면, 금방 쓱 봐서는 유전적인 요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하곤 한다. 유방암이나 특정한 유전성 유방 증후군과 관련돼 있는 암 가족력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자주 간과되는
“어떻게 오셨어요?” 클리닉에 방문해 주시는 환자분들께 내가 자주 묻는 질문이다. 간단한 질문이지만, 이를 통해서 어떤 걱정, 생각을 가지고 오셨는지 알아내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상담을 해드릴 때 어느 부분을 강조해서 진행하면 되는지 파악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어떤 분들은 본인의 개인병력이나 가족력 때문에 혹시 자녀들이 암이 발병할 확률이 높아졌을까 걱정스러워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어떤 분들은 본인의 건강이 걱정되어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또 어떤 분들은 주치의, 산부인과의사, 또는 종양학의사가 권장해서
유전상담이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가 기억이 난다. Genetic Counselor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이거다! 난 유전상담사가 돼야겠다!"라고 그 순간 결정했던 것 같다. 그때까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본 적이 없었다. 해보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이것도 재밌을 것 같고, 저것도 재밌을 것 같고, 갈팡 질팡. 다른 사람들은 목표를 정하고 착실히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데, 나 혼자 물 위에 둥둥 떠서 정해진 목적지 없이 부유하는 느낌이었다. 그랬던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