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쓴 "생명 - 누군가의 권리, 누군가의 의무" 의 원래의 취지는 Bruce H. Campbell 교수의 기고문에서 느낄 수 있듯, 환자의 신념과 의사로써의 의무 또는 소신이
상충할 때 법률적인 해석 차원을 떠나 어떻게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였습니다.


어찌 보면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환자의 뜻과 마찬가지로 눈 앞에서 죽어가는 환자는 볼 수 없다는 의사로써의 소신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에서 쓴 글이였는데 댓글에서 너무 감정적인 이야기가 오고 간 것 같습니다.


제 개인 블로그에서 밝혔듯, 수혈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 수 있는 다양한 수술 기법과 대체 수액이 나왔으나 여전히 수혈을 완벽히 대체할 수 없고, 만약을 위해 수혈 준비를 해야하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공식 홈페이지(http://www.watchtower.org/ko/)에 수혈에 대한 많은 글들이 있었으나 다분히 의도적으로 무수혈의 가능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만 언급되있어 우려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댓글에서 수혈 없이 수술해야 실력있는 의사이고, 선진국에서는 이렇다 어떻다라는 댓글들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알고 계시기 때문에 썼을 수도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합리화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종교적 신념과 삶에 대한 욕구, 모두 중요합니다. 특수 상황에서 그 두가지가 상충한다고 그것을 의사나 병원에 투사하는 것은 숭고한 종교적 신념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만,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밝히신 세츠나님의 댓글은 제가 토론했으면 하는 방향으로 고민을 진솔하게 써주셨습니다. 상당히 장문의 댓글을 써주셨는데 많은 분들께서 보시지 못했을 것 같아 따로 이렇게 옮겨 봅니다.


무수혈 원칙을 지키라고하는 교리와 무수혈 수술의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는 홈페이지의 글들을 보며 그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였습니다만, 그로인해서인지 댓글을 보면 의사의 입장과 또 의학적 사실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 너무 감정적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안타깝습니다. 본인도 여호와의 증인이지만 의사와 여호와의 증인인 환자는, 서로 걱정해주어야 할 관계지요.



여호와의 증인 분들이 무수혈 치료에 대해서 너무 확신을 가지고 계시는데, 이 분야는 아직 완전히 확립된 분야도 아니고 모든
수술에 시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만약 '현재 발전해나가고 있어서 언젠가는 모든 수술을 무수혈로 해낼 것이 기대된다' 고
말한다면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그건 아마 나노기술로 수술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이 발전한 이후가 될겁니다.



중요한 것은 신념입니다. '이걸로 죽어도 좋다'...저 역시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무슨 수혈 거부로 죽으면 대단히 억울한
것처럼 말씀을 하시는데, 예를 들어 종교에 대한 신념이나 충성심이 국가에 대한 신념이나 충성심보다 못한 것입니까? 국가는 대단히
훌륭하기 때문에 목숨을 바쳐도 괜찮고, 종교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면 안됩니까?



도저히 목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수혈을 하게 된 신도라고 해도 여호와의 증인에서 무슨 완전히 퇴출시킨다거나 증인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 기간 조직에 연합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자식이나 부모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고, 자기 목숨이 아깝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해를 다
해줍니다. 몇몇 사람은 그래도 욕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이해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 이라고요. '광신도'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만 '사람들이 이해해줄거야', 그 쉬운 생각으로 [도망가지 않는 것] 뿐입니다.



국가를 위해서는 도시락 폭탄을 던지고 총탄을 날려도 애국입니까? 열사입니까?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오. 무수혈 수술이 중요한게 아니고 신념이 중요한겁니다. 무수혈로 수술해야되는 의사의 입장도
증인들은 이해해줄줄 알아야합니다. 어렵고 실패율이 올라가거든요. 의사들도 '사람'입니다. 사람을 구하고 살리고 싶습니다.
어떻게든 살려야한다는 것이 역시 그들의 '신념'입니다. 그 신념을 꺾으려들면 곤란하죠. 왜 사람 살리겠다는 의사와 싸웁니까? 내
신념을 주장하려면 남의 신념도 인정해야됩니다. 모든 의사에게 무수혈 수술을 강요해야 한다고 말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안해준다고
잘못하는게 아닙니다.



반대로 나라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간 인물들을 위해 애도해줄줄 아는 민주시민이라면, 종교적 신념을 위해 죽을 수 있다는
신념에 대해서도 이해를 해주십시오. 그것을 못한다면 그 사람은 민주주의에 적응을 못할 사람입니다. 종교가 '주의'나 '국가'보다
하위개념입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비종교인의 한계이고, 만약 자신도 종교인이면서 그렇게 생각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겁니다.
종교를 너무 어설프게 믿고있습니다.



PS/

약간 위의 분. 발치를 못한다구요? 장난치시는지? 설명한다고 이해를 해줄 생각이 없으면서 매우 잘 아는 듯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저급한 시비걸기일 뿐입니다. 당연히 그 정도 피는 삼켜도 괜찮습니다. 종교가 장난입니까? 아니면 당신 인생 사는
방식이 장난에 가까운 것인지?



PS2/

에스힐드님의 감정은 이해를 합니다. 아마 한국이 일제치하일 때 국가를 위해 투쟁하다 죽은 아비 어미의 자식들에게도 그런 생각을
가진 분이 계셨겠죠. 왜 애매하게 나서서 죽느냐? 남은 자식들만 불쌍하지 않느냐? 맞는 얘깁니다. 하지만 그걸 신경쓰면 애국을
못하고...선택의 순간이 오는거죠. 어느 쪽을 선택한 사람도 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아니, 어느 쪽을 선택하건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쪽이 옳을까요?

저는 종교인이기 때문에, 겨우 국가 따위에 충성하려고 자식을 버리느냐, 차라리 애국을 하지 말라고 말하겠죠. 하지만 종교가
걸리면 입장이 반대가 되죠. 이런 것이 아닐까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국가를 위해서는 간첩행위, 스파이행위를 하면 안되지만
종교는 배신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동일한 가치인데요. 일본의 유명 정치인의 정치인생을 살리기위해 자살하며
죄를 뒤집어쓴 비서나, 회사의 비리를 혼자 덮어쓰고 자살한 중역의 자식들은 어떨까요? 그 경우에는 많은 돈이나마 남겠지만, 남은
사람들이 느낄 안타까움은 똑같겠죠.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미칠 것 같은 순간, 그리고 후회가 인생에는 있기 마련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군요.

실제 일어난 그 케이스의 경우는...저도 겪은 것이기 때문에 그 감정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인 아는 누나가 죽으면서
자식을 남겼어요. 그래서 다만 공감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해답은 제시할 수 없군요. 다만, "그 종교가 나쁜 것이다!" 라고는
생각하지 마시길 바랄 뿐입니다. 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죽은 선열들의 자식들까지 슬퍼지는 일이니까요.


짧은 혹은 긴 이야기 : 당신이 한국의 첩보원이라고 합시다. 제이슨 본이나 제임스 본드, 뭐 그런 대단한 인물은 아닐지라도
어쨌건 기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국에 잡혔어요. 고문을 받습니다. 이제 다 죽어가요. 치료를 받지 않으면 죽어요. 그런데
기밀을 불어야 치료를 해준대요. 의사는 기다리고 있어요. 이 의사는 인도적인 사람이라서 당장이라도 치료를 해주고 싶지만, 적국
군인이 막고있어요. 기밀을 불기전에 치료를 시도하면 의사쪽을 사살해버리겠다고 합니다. 어쩌시겠어요? 의사는 이렇게 소리를 칩니다.



"생명이 더 중요합니다! 빨리 기밀을 이야기하고 치료를 받으시오!"



의사하고 짜고 하는 당근과 채찍이 아닌가도 싶지만, 아무래도 의사는 단지 진심으로 당신을 살리고 싶을 뿐인 것 같습니다.



"살아서 돌아가야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부인과 자식을 다시 보고싶지 않습니까?"



당연히 보고싶지요. 하지만 국가를 배신할 수 없습니다. 기밀을 이야기하면 국가가 피해를 입습니다. 아...하지만 그렇다고 나라가
망할 정도의 대단한 기밀도 아닙니다. 어쩌죠? 말해야 하나요? 아니면...선별해서 아주 조금만 말하는 것은 어떨까요? 조금만
타협해서...



인간이 약해지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래요. 어떤 선택을 하겠지요.



그 선택이 어떤 것이었건, '누군가는' 손가락질을 할 겁니다. 삶과 가족을 선택했다면 누군가는 좋아하겠죠. 하지만 누군가는 욕을
할 것이고, 추방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롯한 자신의 선택입니다. 자신이 책임질 일이에요. 죽음과 순결함을 택했다면 가족은
슬퍼할 겁니다. 그 선택을 이해해주는 가족과, 원망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가족으로 분열될 수도 있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의 선택입니다. 후회하지 않으시죠? 이미 죽었을테니 후회할 수도 없겠지만, 죽는 순간 마음이 편했기를 빕니다.



국가는 칭찬을 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예 죽어간 당신의 존재를 알지도 못할 것입니다. 괜찮아요, 말이 좋은 '순국선열'들
처럼 유명해지려고 죽음을 선택한게 아니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당신의 신념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가족보다도 소중한 것이지요.
가족이 지상 가치인 어떤 사람은 도저히 이해해주지 못하겠지만,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가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런 손가락질은,
그냥 견디는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다른 분들을 설득하려고 쓴 이야기 같나요? 아닙니다. 여호와의 증인 여러분에게 더 중요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당신들, 아니 우리들의 신념을 모릅니다. 수혈을 하건, 하지 않건, 누군가는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것은
견디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해시킬 수 있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알아들을만한 사람들은 이미
알아들었으니까요. 다만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 있을 뿐이지.



알지도 못하고 비꼬는 인간들은 신경쓰지 마세요. 아예 알려고 시도조차 않는 사람들이 굳이 대화하는 척하는 것은 그냥
자시현시욕입니다. 잘난척이니까 신경끄세요. 서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선이 있습니다. 그 선을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남을 억지로 끌어당길 필요도 없습니다. 서로 그 선 앞에서 마주보고 서로의 얼굴을 읽고, 다만 나는 여기있고 너는 거기 있을 뿐
서로 닮은 '인간'들이구나...그렇게 생각하면 그 뿐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떤 가치, 그것이 무엇이냐가 다를 뿐이지 우리는 다 닮았습니다.



생명요? 가족요? 당신은 나와 '그 자리에 놓은 것이 다를 뿐' 입니다. 그럼 이렇게 이야기해 봅시다. 그 '생명'과 '가족'
중에는 또 뭐가 소중합니까? 나를 희생해서 가족을 살릴 수 있다면? 혹은 딸을 희생해서 어머니를, 아버지를 희생해서 아들을 살릴
수 있을 때는 어쩔 겁니까? 어느 것을 선택해도 슬프고 괴롭고 한스럽고 안타까운,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세상에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 달콤한 인생을 살아왔기에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겁니까?



그러니까, 왜 '그렇게까지 극한 상황을 일부러 만드느냐' 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그건 일부러가 아닙니다. 우리에겐 '그것이 바로
극한 상황'인 겁니다. 그 뿐입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국가기밀이 들어오고 그걸 불지 않으면 죽는 상황이 온다면 그냥 술술
불겁니다. 저에게 그건 하나도 극한 상황이 아닙니다. 제가 성격이 좀 더 비틀리고 악의적인 인간이라면 위에 언급된 첩보원을
비웃겠죠. 왜 화를 자초하냐고. 일단 내가 살고봐야지, 내 가족을 다시 봐야지...왜 일부러 죽느냐고.



하지만 저는 도저히 비웃을 수가 없어요. 저에게도 소중한 것이 있으니까요.



당신도 '소중한 것'을 가진 인간이라면. 이해는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영원한 평행선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비웃지는 마십시오.

- 세츠나 -


* 좋은 댓글 남겨주신 세츠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살리려는 사람과 죽음을 각오한 사람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간격은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 이해를 높인다고 해서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있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갈등이 없어지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조금은 진지한 고민을 해볼 시간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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