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기 전에 먼저 먹어본다.
내과 의사니까 약에 대해서 잘 알려면 내가 먼저 먹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
내가 먹어보고 부작용을 겪으면
환자에게 설명하기도 좋고 꼭 필요한 적응증을 찾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증상이 없어도 먹어보기도 한다.
주사 이뇨제를 한번 맞아보고 귀찮아서 죽을 뻔 했다. 2시간 동안 1000ml가 넘는 소변을 봤는데
화장실 왔다 갔다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밤 9시가 넘으면 입원하신 환자분들께 주사 이뇨제는 절대 안주기로 결심했다.
알레르기가 심하기 때문에 스테로이드와 안티히스타민도 종종 복용한다.
덱사를 슈팅으로 한꺼번에 맞으면 좀 어지럽다. 특히 안티히스타민과 같이 주면 매우 어지럽다.
술 먹고 속 쓰리면 여러 종류의 제산제를 먹어보고 위장관 보호제를 주사로 맞아보기도 한다. 어떤 종류의 약이 좋은지...

변비약 설사약 위통약 두통약 소화제 등등 나에게 어떤 증상이 생기면 다양한 종류로 약을 먹어본다.
종합영양제도 맞아봤는데 입에서 뭔가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별로였다.
나는 등치가 좋아서 약에 그다지 예민하지는 않는데
몸무게가 얼마 안 나가는 환자들은 약의 부작용으로 고생을 많이 한다.

유방암 재발방지를 위해 항호르몬제를 복용하는 환자들은
현재 몸에 암이 없는데도,
항암치료도 끝났는데도,
방사선치료도 다 끝났는데도
몸 컨디션이 너무 안 좋다면서 외래에서 하소연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치료가 다 끝났으니 좋아져야 한다는 기대심리 때문도 있겠지만
사실 항호르몬제를 먹으면 관절염, 골다공증, 우울증, 부종 등의 부작용이 올 수 있고
약으로 인한 폐경기 증후군을 심하게 경험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약간의 불안정성이 있다.

외국의 유방암은 폐경기 후 여성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젊은 유방암 환자들이 항암 및 항호르몬 치료로 인해 에스트로젠 농도가 떨어질 때 어떤 불편함과 괴로움이 있는지 잘 연구되어 있지 않다.
몇 가지 약을 시도해 볼 수 있다고 되어 있어서 어제 그 약을 한번 먹었다가 완전히 고생하고 있다. 너무 졸리고 속도 울렁거리고 멍하다. 이 약은 안 되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어제 오늘 몸 컨디션이 너무 안 좋다. 빨리 약이 몸에서 다 빠져나갔으면 좋겠다.
(참고로 마약은 맞아보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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