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7.2 목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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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범환자 1호



오늘 처음 뵙는 환자분.
68세니까 그리 젊지 않다.
그리 늙었다고 보기도 뭐하다. 그렇지만 이제 할머니가 막 되어가는 것이 느껴지는 외모
처음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 3기 그래서 항암치료 하고 수술하셨다.
지금은 방사선치료를 마치고 허셉틴만 맞고 계신다.
연수가시는 손주혁 선생님께 치료받다가 이제 내가 진료하게 되었다.

"허셉틴 맞는 건 힘들지 않으시죠?"
"그럼요 괜찮지. 이제 살 것 같아."
"뭐 다른 거 어려운 점은 없으세요?"
"(림프부종 때문에 재활의학과에서 운동교육을 받으셨나보다) 꼭 이거 30번만 해야 하나? 내가 좀 더해보니까 좋던데. 해보니까 연습할수록 팔이 점점 더 많이 펴지고 잘 올라가."
"더 하셔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어차피 다 스트레칭이고 운동되는 거 아닐까요? 더 하셔요."
"난 물리치료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그대로, 책자에 나온 그대로 펴 놓고 똑 같이 반복하고 있어.
근데 하면 할수록 몸이 유연해지고 좋은 거 같아."


내가 보기에 그 책자는 설명이 잘 이해되지 않고 그림도 잘 모르겠고
그 책보고 나보러 따라해 보라고 하면 어렵고 금방 귀찮아질 것 같은 타입의 안내책자였다.
환자는 매일 그 책자를 펴 놓고 그림을 보면서 그대로 따라서 운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씩 운동시간을 늘려서 더 해보는데
할수록 몸이 유연하다고 하시면서 내 앞에서 시범을 보이신다.
몸놀림이 날렵하다.

가만히 들어보니
의사가 하는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 스타일이다.
음식 드시는 거, 생활하는 거, 마음가짐...한순간에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이 환자분을 모범환자 1호로 등재시키기로 했다.
(모범환자는 내 수첩에 빨간 별을 달아 기록해 둔다)
그동안 치료받은 이야기도 간간히 경청해 볼 생각이다.
환자들에게도 다른 -더 잘나가는- 환자의 이야기를 해주면 자극과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가글 횟수도 잘 지키고
고기도 열심히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검사 외래 다 열심히 오고
그리고
진료실을 들어설 때 환하게 웃으면서 들어오는 환자.
그런 환자분들을 나의 모범환자 리스트에 올릴 예정이다.

지금 머릿속에 여러 분들이 떠오른다. 참 대단하신 분들 많다.
치료기간이 정해진 수술전후 치료가 아니라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인데도 그런 분들이 많다. 나는 그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잘 모을 생각이다.

석 달 전
내 탈모를 걱정해 탈모속도를 늦추고 영양을 공급한다는 에센스를 선물해주신 환자분이 있었다. 그 분은 탁솔 치료를 마치고 표적치료제만 맞고 있는데, 그러면서 머리카락이 다시 나기 시작한다. 자기도 에센스로 관리하는데 참 좋다고, 나보고 왜 안 쓰냐고 성화시다. 그러고 보니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짧게 난 머리가 어느 새 많이 길었다. 그분이 오늘 외래에서 갸* 라는 과자를 주고 가셨다. 자기가 먹어봤는데 이렇게 맛있는 과자 처음 먹어봤다고, 나도 먹어보라고. 한 달에 한두 번 의료낙후지역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개안수술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진료활동을 하고 계신다.   

전이되고 진행되어도 절대 울지 않는 환자.
설명을 잘 못하고 내가 쩔쩔 매고 있으면 '선생님 괜찮아요. 저 다 알아요. 그래도 열심히 치료받을 거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먼저 말하는 쿨한 환자가 있다. 나를 다시 하느님께 기도하게 만든 환자이다. 나는 나보다도 젊은 이 환자 때문에 항암제를 앞에 놓고 하느님께 기도하게 되었다. 평균 효과를 넘어선 효과가 이 환자에게 나타나게 해 주소서. 난 기도할 때 너무 죄가 많으면 안 될 거 같아서 1년 반 만에 고백성사를 보았다. 힘들어도 내색 안한다. 그저 '좀 힘드네요. 이번 약은' 이 정도 표현.

7월 들어
나의 슈퍼맨 환자들, 나의 모범환자 리스트를 채우기 위해 수첩을 하나 샀다.
내 수첩이 그들의 삶에 대한 사랑과 용기로 가득 채워질 것 같다.

이수현  socmed@bravomybrea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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